첫째로 대웅전 정면으로 오르는 돌계단의 소맷돌 측면의 살짝 공그른 곡선의 아름다움이다. 마치 옷깃의 선 맛을 낸 것도 같고, 소매 끝의 곡선 같기도한데 그 날카로운 듯 부드러운 아름다움엔 더할 수 없는 기쁨이 일고, 그런 미세한 아름다움을 구사한 옛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면 놀라움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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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만하게 굴곡진 먼 들판의 모습은 자연과 가장 잘 어울린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예술품,바로 그것이다...어디도 모나지 않은 논배미는 순한 농군의 심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그 논은 절대로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우리 선인들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 흐름에 따라 물결 같은 논두렁을 그리면서 중심 바닥만은 공평을 잃지 않는 것이다. 나는 들녘을 바라보면서 생존의 고단함을 무심히 달랬고 거기 넘실대는 나락을 보면서 생의 의지를 돋우얶을 농민을 생각해본다.....
피아골의 계단식 논, 그것은 우리의 위대한 문화유산이자 우리 조상들이 장기간의 세월 속에 이룩한 집체창작이며, 삶과 예술이 분리되지 않고 자연과 예술이 하나됨을 보여주는 달인의 명작인 것이다. 계단식 논이 살아 있는 한 피아골은 살아있고, 그것이 살아 있을 때 피아골은 살아 있다...
--- p.48-50
독자들과 약속한대로, 또 나의 희망대로 세번째 책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애초의 계획보다 많이 늦어졌지만 결국 책이 나온다는 안도감 때문에 늦어진 것에 대한 미안함을 모 느끼고 있다. 그만큼 나는 이책을 쓰면서 고군분투하였다.
--- p.5
더없이 평온한 내포 땅의 들판길 집을 떠나 서울에서 천안을 거쳐 예산으로 들어가는 데 물경 일곱 시간이 걸렸지만 오랜만에 한 공간에 앉아 형제간에 동서간에 얘기꽃을 피우느라고 지루한 줄 몰랐다. 우리가 이렇게 긴 시간 한자리에 함께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윽고 우리가 달리는 45번 국도가 훤하게 뚫렸을 때 비로소 우리는 답사 기분을 낼 수 있었다.
내포 땅을 가면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들판을 바라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기쁨이다. 이 길을 지나면서 잠을 잔다거나 한밤중에 이 길을 간다는 것은 거의 비극이라 할만하다. 창 밖에 스치는 풍광이라고 해봤자 낮은 산과 넓은 들을 지나는 평범한 들판길이다.
--- p.14
각설하고 언젠가 나는 답사엔 초급, 중급, 고급이 있다고 했는데 불국사는 당연히 초급 코스에 속한다. 그렇다고 해서 초급자가 초급 코스를, 중급자가 중급 코스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초급자가 오히려 중급 코스를 더 가고 싶어하고, 중급자는 고급 코스에서 더 큰 매력을 느낀다. 그런데 고급자가 되어야 비로소 초급 코스의 진가를 알고 거기를 즐겨 찾게 된다. 그런 진보와 순환의 과정이 인생유전의 한 법칙이고 묘미인지도 모른다. 결국 불국사는 답사의 시작이자 마지막인 것이다.
--- p.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