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공감, 그로 인한 깨달음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완성이 없는 과정이지만 그 과정을 지날수록 감사함이 더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후에는 아픔의 눈물이 감사의 눈물로 바뀌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둘은 처음부터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삶 전체를 쥐고 흔들 만한 아픔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티 나지 않게 크고 작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이 글을 쓰는 데 함께 했습니다.
---「머리말, 엄마와 함께한 글쓰기, 삶을 치유하다, 6쪽」중에서
엄마는 가족들, 그중에서도 특히 딸에게, 자기도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든 면모를 낱낱이 보여 준 노년의 어느 한때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혹독한 살풀이 같았던, 어쩌면 평생의 치부일지도 모를 시절을 엄마는 가위로 도려낸 듯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화산처럼 폭발하던 엄마의 그 강렬한 시절 중 어느 것 하나도 잊어버리지 못하는 나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엄마와의 마주침이 생경할 때가 많았다.
---「1장, 미열처럼 계속되는 분열, 16-17쪽」중에서
‘엄마, 우리 함께 다시 가보자.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엄마가 그토록 아파했는지. 그리고 왜 그것들을 다 잊어버리게 되었는지. 그곳에 무엇을 남겨 두고 왔는지. 직접 가서 확인해 보자. 가서 우리가 지나온 길의 여정을 잘 마무리하고 오자. 엄마.’
---「1장, 미열처럼 계속되는 분열, 22-23쪽」중에서
나이듦, 노화를 부정하려는 심리 근저에는 공포가 깔려 있다. 나이 들어 가는 나와, 아직은 괜찮은 나는 시시각각 공포와 안도를 오가며 흔들린다. (…) 어느 날 문득 거울 앞에서 발견한 주름진 낯선 얼굴이나, 서서히 떨어지는 시력, 색과 밀도가 점점 옅어지는 머리카락, 혹은 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주름진 얼굴 같은 것에 씁쓸해하면서 잊고 있던, 혹은 거부하고 있던 자신의 나이듦에 대한 인식을 가다듬는다.
---「2장, 엄마가 미친 것 같아, 47쪽」중에서
엄마가 사는 세계의 시간은 결코 단선적으로 이어져 있지 않았다. 과거, 현재, 미래가 기억 같은 걸로 이어져 있지 않았고, 개연성도 없었으며, 오직 순간순간만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부모 자식 같은 관계의 끈은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현재 엄마의 세계에서 자리잡은 최소한의 연계점 같았다. 관계라는 희미한 바탕 위에 사건들은 뒤죽박죽 얽혀 있었고, 사실과 허구는 불분명하게 이어져 있었으며 감정은 그 복잡한 얽힘 속에 인과성 없이 요동치는 듯했다.
---「3장,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엄마, 57-58쪽」중에서
마수미가 말한 ‘길을 잃은 상황’은 스스로 선택한 경로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외압에 의해 주어진 와해의 경험이다. 생전 처음 겪는, 혹은 이전에 겪었으나 여전히 생경한, 나침반 하나 없이 사막 한가운데 던져진 듯한 느낌으로 이제까지의 경험과 감각을 총동원해서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온갖 이정표와 안내자가 빼곡한 곳에서는 그것들만 좇아 목적지에 다다르면 되지만, 사막 한가운데에서는 오로지 자신이 판단의 지표가 되어야 한다. 고통스러울 수 있는 사유가 일어나고, 모든 감각이 서로를 감싸고 서로로부터 풀려나오며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지식, 상상력이 총동원되어 집중된다. ‘던져짐’ 혹은 ‘마주침’이라는 사건이 자기 발생적 주체를 생성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힘든 일을 겪고 나서 성숙해졌다’라는 말과 상통하는 바가 있다.
---「4장, 잃어버려야 찾을 수 있는 것들, 98-99쪽」중에서
세상 그 어떤 상대도 다 녹여 낼 듯한 눈빛은 제 자식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강렬했다. 순식간에 무언가에 압도당한 듯한, 그 압도당한 무언가를 위한, 물불 안 가리는 전사가 된 듯한 또 하나의 존재가 출현한 것 같았다. “날 죽이려는 거지, 다 날 죽일라고. 이런 나쁜…… 내가 모를 줄 알고!” 커다란 고함과 함께 엄마는 내 목에 둘러져 있던 긴 스카프를 어마어마한 힘으로 잡아당겼다.
---「5장, 나는 나를 모른다, 106쪽」중에서
그러한 영원성에 대한 희망에 불길한 전조를 드리우는 용의자로 지정되기 쉬운 것이 바로 변화이다. 변화를 소멸의 전조로 여기는 것이다. 시각의 변화, 사고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 신념의 변화, 외모의 변화 등이 성숙과 풍요로움의 원천이 되려면 자신을 포함한 주변부 모두의 유한성을 자각하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두려움 때문에 문 앞에서 서성거리다 돌아서버리면 영영 다른 길로 접어들어 더 이상 문을 찾지 않을 수도 있다.
---「6장, 가깝고도 오랜 외로움, 145쪽」중에서
세상에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이 이름밖에 없다는 듯한, 불안하게 흔들리면서도 절박한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요 며칠 귀에 인이 박이도록 들었던 ‘미영아’는 이름이 불리는 사람이 어떻든 전혀 상관없이 오로지 부르는 사람을 위한 부름이었다. 마치 나는 엄마 에게 부름을 받으려고 있는 존재 같았다. 궁금할 때, 답답할 때, 아플 때, 불안할 때마다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부를 수 있는 사람으로서 필요한 존재 같았다.
---「7장, 혹시 나 때문은 아닌지, 160쪽」중에서
현대 의학과 병원 시스템의 범주 바깥에 있는 환자와 보호자가 갈 곳은 없었다. 찬밥 신세 같은 병실살이로 하루를 더 흘려보내고 나니 어떤 오기 충만한 결심이 마음속에서 꼿꼿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나는 아침 회진을 온 정신과 담당 의사와 가족들 앞에서 엄마를 퇴원시키고 집으로 돌아가서 통원 치료를 받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때까지 무언가를 계속 혼자 중얼거리던 엄마마저 소리를 멈춘 채, 걱정 가득한 가족들의 눈빛만이 적막을 대신했다.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긍정의 침묵이 조금 더 흘렀다.
---「8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188쪽」중에서
어찌 보면 나이듦은 이러한 분리의 독단과 오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소중한 기회일 수 있다. (…) 유한성에 대한 임의적 직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짐으로써, 삶과 분리된 죽음으로 흐려진 시력을 회복하고 혜안을 찾아 모든 유한한 것은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체감하고 체현할 수 있는 단계이다. 느려진 생체 리듬과 둔해진 감각, 수분이 빠져나간 피부 조직은 어떻게든 되돌려 복원해야 할 현상이 아니라 속도에 맞게 수용해야 할 자연의 질서이다.
---「8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197-198쪽
가끔씩 자신의 삶에는 온전한 자기만의 선택이 없었다고 말했던 엄마가 진정으로 원한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해졌다. 만일 엄마가 스스로 선택하고 원하는 삶을 살았다면 지금처럼 무언가를 움켜쥐지도, 놓아 버리지도 못하는 갈라진 마음 때문에 힘들지 않을 수 있었을까.
---「9장, 엄마의 엄마가 되다, 211쪽」중에서
엄마는 오래 묵혀 둔 자신과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회복하려고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가난해서, 일하느라, 혹은 남들처럼 부대끼며 사느라 소외시키고 방치했던 자신을 이제야 아프도록 보듬어 안는 것 같았다. (…) “그래, 엄마. 괜찮아. 눈물이 다 마를 때까지 우셔요. 엄마가 다 울 때까지 내가 옆에 있을게.”
---「10장, 그에게서 내 모습을 보다, 234쪽」중에서
“엄마, 다 지나간 일이라 이제 괜찮아. 아프지 않은 엄마로 다시 돌아와 줘서 고마워 엄마.” 나는 소리 없이 눈물만 떨구는 엄마에게 조용히 말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엄마를 걱정했던 많은 사람이 엄마가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듯이 엄마도 그랬으면 했다. 이제는 아팠던 시절뿐 아니라 그 아픔을 만들어 낸 엄마의 모든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면 한다. 엄마가 혼자 지내왔다고 생각하는 길을 되짚어 보면서 그 안에 스며 있는 많은 존재와 의미들을 느낄 수 있게 되길 바랐다.
---「11장, 유한하고 소중한 삶, 257쪽」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