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매우 어려운 수술이 될 것이고, 시간은 최소 12시간이라고 했다. 수술의 방향은 혀뿌리에 있는 암을 제거해 허벅지에 있는 조직을 떼어 혀에 이식한다고 했다. 단 수술이 잘 끝나도 당분간은 말을 하지 못할 것이며, 목소리도 100%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암울한 말만 듣고 그렇게 수술 날을 잡는다.
엄마의 소식을 접한 나는 망치로 머리통을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늘이 노랗다. 형과 나는 주말에 시간을 맞춰 부모님의 가게로 향했다. 즐거워야 할 가족 모임인데도 알 수 없는 적막함 속에 식사를 했다. 고기, 회, 각종 반찬. 늘 먹던 음식들이 엄마가 마지막으로 맛있게 먹은 음식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 아픔 기쁨 아픔
---「아픔 기쁨 아픔」중에서
“우선 심장, 폐, 복부에 암이 전이됐어요. 암이 희귀 암이라 약이 맞는 것도 찾기 힘들어요.”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 재차 물었다.
“네? 잘못 들었어요. 다시 설명해 주실래요?”
그러자 의사는 나에게 본인이 판단할 거냐고 묻는다. ‘이런 씨. 무슨 판단을 하라는 말이냐. 도대체 무슨 판단이길래 나에게 할 거냐 말 거냐 묻는 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물이 앞을 가렸다.
“제가 이렇게 설명해도 어차피 아버지에게 다시 설명을 해 드려야 되니 아버지에게 전달할게요.”
의사는 감정이 없는 그저 딱딱한 로봇 같았다. (의사도 보호자의 감정에 동요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거나, 매번 아쉬운 말을 해야 되는 의사 입장에선 어려운 말도 아니겠지.) (...)
“아들아, 아들이 그렇게 엄마 앞에서 울면 엄마 마음은 찢어진단다. 울지 마라.”
12월 30일 새해가 보고 싶다던 엄마는 눈을 감으셨다.
---「아픔 기쁨 아픔」중에서
매일 하루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똑같은 시간이다. 오늘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지 않는다면 내일은 반드시 미련과 후회가 남는다. 나태함이란 놈은 편안함으로 예쁘게 포장한 선물을 건네주고, 시간이 지나면서 선물은 수북이 쌓인다. 선물이 쌓이고 쌓여 예쁜 포장지의 선물들을 열어 볼 땐, 기대와는 달리 우울, 절망, 아쉬움, 후회라는 내용물이 가득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난,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알아차렸다. 모든 걸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되돌릴 수 있다면」중에서
“서울 아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대.”
병원에서 긴 시간을 보낸 엄마. 환자들이 가족들과 통화하는 걸 유심히 들었나 보다. 통화 마지막엔 항상 사랑해 사랑한다. 라는 말을 한다고 했다. 사랑한다는 말이 내심 부러웠던 것 같다. (...)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뜨거움을 느꼈다. 다급한 마음, 집에 오자마자 책을 펼쳤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엄마와의 좋은 추억은 생생히 떠올랐지만, 정작 엄마는 뭘 좋아하는지, 뭘 좋아했는지 잘 몰랐다. 가족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을 거라는 착각이 부끄러웠다. 펜을 잡긴 잡았는데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이 가슴을 적신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훔치며 두서없이 글을 써 내려갔다.
---「사랑한다는 흔한 말」중에서
저 멀리 서울에서부터 이곳 고향에 엄마가 도착했다. 흰 천에 꽁꽁 싸 메여 있다. 몸은 불편해 보였는데, 얼굴은 편하게 주무시고 있는 것 같다. 고운 얼굴, 고생 한가득 두툼한 손, 자그마한 몸, 어루만지며 꼭 안아본다. 아직까지 따듯한 온기가 돈다. 이제 느낄 수 없는 마지막 엄마의 온기, 하염없이 눈물만 흐른다. (...) 눈 깜박할 사이에 마지막 날이 왔다. 맑은 하늘, 따스한 햇볕과 찬 바람이 볼을 스친다. 관에 편히 주무시고 있는 엄마를 화장터로 모셨다. 크디큰 몸이 한 줌에 재가 되어 버렸다. 유골함을 건네받았다. 마치 엄마의 온기같이 따뜻해 품에 꼭 안았다. 살아생전 평장 묘에 묻어 달라는 엄마의 바람대로 양지바른 평장 묘에 모셨다.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또 한 번 가슴이 조여 온다.
‘엄마. 안녕.’
---「마지막 온기」중에서
“저의 꿈은 아빠입니다.”
선생님과 친구들은 그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아빠 되는 게 무슨 꿈이냐며 껄껄 웃어댔다. 그 친구는 웃어대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보며 머쓱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 선생님은 아이에게 답을 내린다.
“A야, 너가 말한 건 꿈이 아니야. 아빠는 누구나 될 수 있는 꿈이란다. 다시 적어보렴.”
그렇게 친구는 자신의 장래를 접어두고 선생님의 말대로 다시 장래희망을 고쳐 쓴다.
선생님이니까. 선생님의 말은 언제나 정답이 되었던 그 시절 이야기다. 아빠 혹은 엄마가 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현시대엔 ‘아빠’도 장래희망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본다.
---「장래희망은 아빠입니다」중에서
그날 오후 여자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순간 직감했다. 그리고 여자 친구는 당황해한다.
“니 혹시 임신했나?”
“임신한 거 어떻게 알았노?”
(...) 서로의 부모님에게 이실직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듯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반대에 가까웠다. 몇 날 며칠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엄마에게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던 내가 처음으로 버럭 화를 냈다.
“아니 엄마! 이때까지 내가 엄마 말 안 들은 적 있나? 엄마가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다 했잖아! 이거 하나 못 들어주나! 내가 책임진다고!”
많이 당황하고 속상하겠지만, 이번일 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이제 막 둥지를 벗어나 세상이 아름다울 거 같은 환상에 젖어있던 터라 아무런 정보도 없이 집이나 가전 등 저축해둔 돈으로 알아서 해결하겠다며 자신 있게 말했다. 나의 완강함에 엄마도 기어이 결혼을 허락했다. 서둘러 집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여러 부동산을 다니며 집을 보러 다니는데, ‘현타’(헛된 꿈이나 망상 따위에 빠져 있다가 자기가 처한 실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시간)가 제대로 와버렸다. 1년 동안 저축해둔 돈은 1천만 원, 정말 많이 모았다고 자부했지만, 이 정도의 돈으로 신혼집을 구하기에는 너무나 작고 귀여운 돈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새로운 내 가족」중에서
우리는 부모님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부모님의 안위보다 주변 지인과 연인을 더 걱정하고 있진 않은지, 물론 사회 관계망에 있어 인간관계만큼 중요한 게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부모님의 희생은 안중에도 없고 당연히 여긴다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즐거울 땐 보통 부모님을 찾지 않지만, 반대로 고난과 역경에 부딪힐 때, 애석하게도 누구보다 먼저 내 편이 되어주는 부모님을 찾는다. 부모님은 언제나 해결사 역할을 하고 때론 자식의 투정과 아집을 받아주는 감정 쓰레기통 역할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의 아픔과 힘듦이 자기 탓인 마냥 미안해하고 걱정하는 것이 부모다. 물론 자식을 호되게 내칠 때도 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단지 교육 차원에서의 훈계일 뿐이다.
좋은 집을 하나 장만해 드릴까, 자동차를 한 대 사드릴까, 여행을 보내드릴까, 맛있는 저녁을 사드릴까. 물론 다 해드릴 역량이 된다면 이것 또한 좋은 효도방법이다. 하지만 개인마다 차이가 있듯, 물질적 효도방법은 좋을 수 있으나 부모님의 재력으로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것들이라면, 기쁨은 순간이다. 그렇다면 뭐가 있을까, 부모님 감동을 줄 만한 그것은 바로 편지다. 글만큼 정성스러운 것은 없다. 글은 쓸수록 내면에, 그때의 감정이 차올라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감정이 서로 공유된다.
---「마법 같은 글의 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