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아이에게 좋은 장난감은 무엇일까? 만일 당신이 해변에서 노는 두 살배기를 주의 깊게 관찰한다면 아마도 아이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러니까 하루 종일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는 점을 알아차릴 것이다. 이유는 뭘까? 곳곳에 흥미로운 것이 넘치기 때문이다. 게가 주변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도 있고, 조개가 눈에 띌 수도 있고, 모래로 집을 짓거나 웅덩이를 만들 수도 있다. 그 밖에 많은 놀이를 할 수 있는 바닷물까지 있다.
두 살배기가 해변에서 노는 방법은 무한대에 가깝다. 장난감은 복잡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채로운지, 소리 나는지 여부도 중요하지 않다. 자극은 임의로 다양성을 부가하고 소리를 나게 하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극은 세계, 그러니까 무한한 것을 품은 세계 자체다. 가능한 모든 것들로 이루어진 세계다. 자갈이든 모래든 물이든 상관없다. 이 모든 것은 두 살배기에게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최상의 환경이다. 아이에게는 그런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세계가 필요하다.
---「제2장 세계를 선물하다_놀이와 학습 사이」중에서
내가 반복해서 받는 질문이 있다. 아이에게 두 번째 언어를 가르쳐도 될까? 아빠는 터키어를 쓰고 엄마는 독일어를 쓰면 어떡해야 될까? 두 가지 언어로 양육을 해도 될까? 이와 관련해서 부모로서 몇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세 살 아이는 다른 언어를 배울 능력이 충분하다. 배움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 거의 자동으로 가능하다. 실제로 두 언어 가정, 즉 엄마와 아빠가 각각 다른 말을 사용하는 가정에서도 아이는 문제없이 적응하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심지어 장점까지 있다. 세상엔 한 가지 언어가 아닌 여러 언어가 존재하고, 그로써 말하는 방식도 하나가 아니라 다양할 수 있음을 어릴 때부터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아이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고, 아이를 좀 더 유연한 인간으로 만든다. 거기다 아이의 주의력까지 높인다.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전환할 때는 주의력과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성장 환경에서 언어의 다양성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그것을 나는 인구 13만 명이 사는 스위스의 작은 도시 베른에서 수시로 경험한다. 이곳에는 나를 비롯해 150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산다. 그러다 보니 언어는 정말 다양하다. 이 다양성은 얼핏 혼란을 야기할 것처럼 보이지만 살아보면 그렇지 않다. 이곳의 누구도 따로 어학원에 다닐 필요가 없다. 그저 여러 언어를 듣고 체험할 기회만 있으면 된다. 특히 아이들은 그런 기회를 즐기고, 외국어 습득 능력도 탁월하다.
---「제3장 두 번째 언어를 배울 시점_모국어 단계」중에서
좋지 않은 기억이 하나 있다. 강을 따라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동물이 있고 아름다운 꽃이 있고 우람한 나무가 그림처럼 펼쳐진 멋진 동물원이었다. 네 살짜리 아이가 엄마와 함께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아이의 장난감 통엔 장난감이 가득 들 어 있었다. 세어보니 총 열네 개였다. 맙소사, 이 멋진 풍경 속으로 아이를 데리고 놀러 오면서 이렇게나 많은 장난감을 갖고 오 다니! 아마도 심심할까 봐 가지고 온 게 분명했다. 불쌍한 아이는 장난감에 정신이 팔려 안타깝게도 주변 환경에 거의 눈길을 주지 않았다.
아이에게 동화책을 많이 읽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그림책이 좋다. 부모와 무언가를 함께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같은 것을 보면서도 비슷하거나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음을 경험한다. 이것은 아이에게 정말 중요한 순간이다. 그 밖에 아이를 가정의 일상적인 일에 적극 참여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는 부모들에게 항상 이렇게 묻는다.
“오늘 아침 식탁을 차리는 데 누가 도와주었나요?” 세 살 아이도 충분히 식사 준비를 도울 수 있다. 심지어 아이들은 그것을 좋아한다. 단순히 부모를 모방하는 것을 넘어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너무 일을 시키지 않는다. 마치 아무 일도 못하는 사람처럼, 또는 시키면 오히려 사고를 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아이를 대할 때가 많다.
마지막으로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즐겨라. 아이는 배우기 좋아한다. 그런 아이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기적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 시기의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본보기가 부모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제2장 동물원과 장난감_본보기가 중요한 시기」중에서
내 친구 중에는 어린 아들에게 바이올린을 억지로 가르친 아버지가 있다. 싫은데도 바이올린을 배워야 했던 아이는 급기야 바이올린에 구토를 했다. 그제야 부모도 아들이 바이올린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후 아이는 바이올린 교습을 그만두었다. 우리집의 둘째 딸도 마찬가지로 바이올린을 배웠지만, 학습의 양상이 완전히 달랐다. 네 살 때로 기억하는데, 아이가 먼저 바이올린을 배우게 해달라고 떼를 썼다. 어찌나 끈질기게 조르던 지 결국 우리도 두 손을 들고 바이올린 교습을 받게 했다. 지금도 딸아이는 바이올린을 켜는데, 솜씨가 제법 그럴듯하다.
물론 부모로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야 한다면 반드시 아이들이 배우기를 원해야 한다는 것을 기준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원한다면 그것은 산을 옮길 수 있을 정도로 학습 효과가 크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하고 싶어한다면 이미 내적 동기가 충만하다는 뜻이다. 그러면 부모는 아이로부터 어떻게 동기를 불러일으킬지 고민하지 않 아도 된다. 사실 그런 고민 자체가 이미 원칙적으로 문제가 좀 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아이들은 따로 동기를 유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 속에는 자체적으로 생긴 내적 동기들이 충만하다. 아이들은 잠시도 지루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싶어한다. 다만 중요한 점은 그것이 적합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또한 아이가 내적 동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즉 아이가 하려고 하고, 할 수 있는 것을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면 아이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무언가를 배운다.
---「제4장 바이올린에 토를 하는 아이_행위의 내적 동기」중에서
현재의 초등학생이 훗날 직장에서 동료들과 잘 지내고 남에게 인정받으려면 뇌 속에 어떤 흔적이 만들어져야 할까? 올바른 감정적 반응에 대한 회로가 그것이다. 타인이 내게 호통을 치거나 남들 앞에서 모욕을 주면, 또는 내가 불쾌한 신체 접촉을 당하거나 사랑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한 내 사랑이 응답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모든 것은 오늘날뿐 아니라 이미 수천수만 년 전부터 만인에게 해당되는 문제였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배울 한 가지 가능성이 있다. 앞서 언급한 ‘연극 놀이’를 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이 놀이를 통해 살면서 부딪힐 수밖에 없고, 때로는 극단으로 흐르기도 하는 사회적 상황의 특정 행동을 연기해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작품이 이상적이다. 셰익스피어는 인간에 대한 면밀한 관찰을 토대로 인간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상세히 밝혀놓았다. 그래서 우리는 등장인물들을 비웃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과 함께 울기도 하면서 당시 관객들처럼 연극 내용에 감명을 받는다. 물론 작은 차이는 있다. 당시에는 연극 공연이 술집에서 이루어졌고, 모든 이가 귀 기울여 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제 아이들을 데리고 열심히 연극을 보러 다니라는 얘기가 아니다. 요점은 아이들에게 연극 놀이를 시키고, 그로써 아이들이 언젠가 사용하게 될 여러 흔적을 머릿속에 심어주라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남의 행동에 어떻게 반응할지, 특정 상황에서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지, 또는 사회적 전략을 어떻게 짤지 뇌 회로를 만들어주라는 뜻이다.
---「제4장 유치원을 닮은 초등학교_자세를 배운다는 것」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