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투자는 이미 세계적인 투자 방법의 일부가 됐다. 사실, 한국만 신경 안 쓰고 있었을 뿐, 영국과 미국은 물론 일본과 홍콩 같은 나라에서도 와인 투자는 일반인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와인 투자가 흥미로운 것은 취미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투자의 일종인 부동산이나 원자재를 취미로 즐기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와인은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래서 와인 투자는 즐기면서 하는 투자로 알려져 있다. 당신이 2백 병들이 와인 셀러를 10대 가지고 있다고 치자. 거기에 보르도, 부르고뉴, 이탈리아, 미국 제품까지 즐비하게 들어찬 와인들을 상상해 보라. 나는 와인을 소장할 만한 주제가 못 되지만, 상상만 해도 흥분되는 일이다. 10년 후에 개봉하기 위해 쟁여두는 와인이 값까지 뛰어 ‘이걸 딸까, 팔까’ 고민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이 어찌 기쁘지 않을쏘냐. 실제 와인 투자는 아마추어 애호가들에게 인기를 끌 소지가 다분하다. 그중 하나는 투자 실패의 부담이 적다는 점이다. 설사 가격이 떨어지거나 기대만큼 오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숙성시켜서 마시겠다는 ‘순수한 의지’를 관철하기 어렵지 않으니까 말이다.--- p. 71 「와인도 투자가 되나요?」
“어떤 와인도 스스로 빛나지 않습니다. 절세의 와인이라면 그에 어울리는 음식을 찾아보려는 노력도 각별해야겠죠. 어떤 와인이라도 결국은 마시기 위한 것 아닌가요?”
영국은 세계 최대의 와인 유통시장을 가지고 있고, 와인 경매 역시 거기 속한다. 또한 와인 저널리즘도 세계 최고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 왜 와인은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같은 대륙에서 생산하는데, 비평하고 경매하는 곳은 대부분 영국일까.
“글쎄요. 원래 영국이 유통과 금융 중심지였죠. 역사적으로 보르도 와인이 세계에 팔린 것도 런던을 통해서였고……. 한 가지 덧붙이면 영어를 쓰는 나라이니까 표준적인 거래를 중개하는 데 유리했겠죠.”--- p. 108 「로마네 꽁띠도 뱉어버리는 크리스티 경매사」
과잉 생산도 문제다. 보르도에서만 8억 병의 와인이 생산된다. 이중 다수는 팔리지 않고 에탄올이 되어 대체 연료로 쓰인다. 만약 생산하지 않았다면 와인에서 얻은 에탄올보다 수십 배의 에너지를 아낄 수 있었다. 또 와인 생산을 하면, 그만큼 탄소가 배출된다. 포도와 와인을 자연에서 그저 얻어지는 것으로 착각하지 말자. 포도 농사에도 엄청난 기름이 쓰이며, 와인을 제조하면 역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와인 1병에 약 3백 그램의 탄소가 배출된다고 한다. 일반 제조업의 60% 선이지만, 왠지 친환경 산업 같은 와인 생산에 그만큼의 탄소가 쓰인다고 하면 다들 놀란다.
와인도 이처럼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영국의 와인마스터 잰시스 로빈슨은 무거운 와인 병이 환경을 오염시킨다고 비난하고 있어서 와인 동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더 비싸 보이기 위해 점점 더 무거운 와인 병을 쓰는 업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유리병은 자기 무게의 몇 십 배에 달하는 산업 폐기물을 만들어내며, 유리를 얻기 위해 때는 연료도 엄청나다. 나는 이런 기사를 읽을 때마다 슬프다. 와인애호가나 평론가, 소믈리에 같은 일군의 와인 동네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제기하는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p. 124 「지구 온난화의 어두운 미래」
한국인이 이탈리아 요리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아주 작은 한 부분인 스파게티만을 국수 문화에 의해 좋아한다는 증거는 또 있다. 프랑스 식당이 맥을 못 추는 것이다. 이탈리아인이 그저 국수만 먹는 게 아니다. 파스타는 대체로 세 가지 코스로 짜인 요리의 한 부분일 뿐이다. 고급 프랑스식에는 이 ‘누들 문화’가 없는데, 이 부분만 빼면 이탈리아식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지중해를 낀 중남부 유럽의 정서가 반영되는 것이다. 현대 프랑스 요리가 이탈리아 요리에서 비롯되었다는 역사적 가설은 빼고도 말이다.
한국에서 프랑스 요리가 폼 잡는 고급요리여서가 절대 아니다. 국수 종류가 없으니, 자연스레 폼을 잡을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대중들의 외면을 받았다. 청담동에 다수의 고급 레스토랑들은 스파게티를 팔지 않는 정통 프렌치보다는 콘티넨탈, 즉 유럽식이라는 스타일로 애매모호하게 영업한다. 스파게티는 어찌 됐든 국수와 한 식구이기 때문에 한국인이 어렵지 않게 대한다. 그리고 그것은 한 양식당이 사느냐 죽느냐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p. 215 「스파게티의 다사다난한 한국생활기」
설사, 김치와 와인이 어울린다고 한들, 이러저러한 음식과 와인이 어울린다고 한들 한식과 와인은 참 냉정한 관계가 되곤 한다. 자, 와인을 현실에 적용해 보려면 모든 이론은 말짱 도루묵이다. 왜? 앞서 나의 생각처럼 김치 같은 향이 강하고 통각이 있는 반찬 문제 외에도 또 다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한국 상차림의 특징이다. 서양식은 코스로 음식이 나오니까 그 음식에만 맞는 와인을 매치시키면 된다. 그러나 모든 음식이 함께 나오는 한상차림을 기본으로 하는 한식은 어려움이 많다.
전혀 성격이 다른 요리가 한 상에 올라와 서로 다른 지독한 부조화와 맛의 격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단 10분 정도의 수저질로 배추김치-신김치-총각김치-파김치에다가 해물파전-김치찌개-김구이-명란젓-멸치볶음-미역국을 드나드는 혀에 어떻게 한 종류의 와인을 적용시킬 수 있는지 과연 신의 솜씨가 아니면 대책이 안 선다. 각각 향과 맛이 다 다른데다가 마늘과 향신료, 고추 때문에 혀를 마비시키는 통각도 있다. 그런데 앞서 일본인 만화 작가는 어떻게 어울리는 와인을 탁 꼬집어 말할 수 있는지 그 신공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소믈리에와 평론가들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 p. 220 「한식에 와인이 어울리지 않는 분명한 이유 몇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