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과거에 맡았던 거의 모든 냄새를 기억한다. 그리고 이런 능력은 음식에 대해 의사결정을 할 때 도움을 준다. 뇌에는 하나의 거대한 향기 도서관이 있어서 필요할 때면 언제든 정보를 꺼낼 수 있다. 냄새는 기억과 감정을 통해 처리되기 때문에, 감정(어릴 때 먹었던 음식, 사랑하는 사람의 향수)과 함께 저장되는 냄새는 좀 더 본능적으로 소환되곤 한다. 그러므로 맥주의 맛을 찾아내는 훈련을 할 때도 이런 방식을 사용해 의식적으로 향기 도서관에 입력해보는 건 어떨까.
---p.17 「맛의 작용 원리」 중에서
언젠가 술집에 갈 기회가 있다면 맥주가 가득 찬 잔이 아닌 비워진 잔을 한번 보자. 잔 내부의 거품이 마치 레이스 모양으로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당신의 선택은 탁월했다. 맥주의 양조 상태가 좋고 깨끗한 잔이라면 이런 모양의 거품이 남는다. 잔 속에 링 모양 거품이 몇 개 남느냐에 따라 마신 속도를 예측할 수도 있다. 링 모양이 적을수록 단숨에 들이켰다는 의미다.
---p.28 「맥주의 거품」 중에서
맥주에 담긴 풍미는 대체로 미묘하면서 휘발성이라 시간에 따라 맛이 변하곤 한다. 일단 포장 후 판매대에 오르면 이런 변화가 시작되기 전에 빨리 마시는 게 좋다. 특히 홉 향이 강한 맥주는 몇 주 내에 향이 사라지기 때문에 시간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맥주마다 신선도를 유지하는 기간이 다르며 스타일과 마시는 방식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캐스크 에일은 병에 담긴 벨지안 쿼드 루펠보다 빨리 마셔야 한다.
---p.72 「생맥주와 숙성맥주」 중에서
기름진 음식에는 높은 탄산과 신맛, 쓴맛을 내는 청량감이 있는 맥주가 어울린다. 가벼운 맥주인 필스너는 구운 돼지 뱃살과 잘 맞지만, 이 또한 함께 먹는 반찬이나 소스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가령 고기가 그레이비와 매시트포테이토가 아닌 밥과 샐러드와 함께 나온다면 필스너와 잘 어울릴 것이다.
---p.87 「맥주와 음식에 대한 색다른 접근법」 중에서
흔히들 하는 생각은, 라거가 단지 청량한 황금색 맥주라는 정도다. 하지만 사실 이 맥주는 라거 효모(에일 효모의 반대)만 써서 생산되는 하나의 독립적인 거대한 무리를 이끌고 있다. 라거라는 무리는 정말 다양한 풍미와 특징을 가진다. 종류만 해도 산뜻한 아메리칸 라거에서부터 진하고 독한 도펠보크까지, 쌉싸름한 저먼 필스너와 토스트의 풍미를 가진 엠버와 둥켈에서부터 로스팅 맛을 내는 슈바르츠비어와 축제에서 마시는 페스트비어까지 셀 수 없을 정도다. 또한 홉의 특징이 강해진 현대적인 스타일들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새로운 라거 열성 팬을 더 끌어들이고 있다.
---p.97 「라거」 중에서
현대의 맥주를 한 가지 특징으로만 정의하라고 한다면 감귤류, 핵과, 열대과일, 허브, 꽃, 향신료와 같은 홉의 향과 풍미일 것이다. 홉의 특징이 강한 스타일에는 청량한 세션 IPA, 주스 맛이 나는 헤이지 페일 에일, 쓴맛의 웨스트코스트 IPA, 강렬한 맛의 더블 IPA, 고전적인 잉글리시 IPA, 여름이 생각나는 퍼시픽 페일 에일 등이 있으며, 색으로 보면 블론드와 골든 에일에서부터 엠버, 레드, 블랙 IPA까지 다양하다. 이런 맥주들의 레시피는 모두 다르지만 홉에서 나오는 훌륭한 향과 풍미를 공유하고 있다.
---p.127 「페일 에일, IPA, 홉의 특징이 강한 에일」 중에서
토스트와 건포도 맛의 잉글리시 베스트 비터, 견과류 맛의 브라운 에일, 초콜릿 맛의 포터, 크림이나 로스팅 맛의 스타우트, 와인 맛의 발리 와인, 디저트 맛의 임페리얼 스타우트 등 어떤 맥주든지 모두 각기 다른 종류의 몰트에서 나오는 곡물의 풍미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 마치 베이커리나 카페에 온 듯한 맛을 내면서 일부는 우아한 맛과 저알코올을, 일부는 진한 몰트와 홉의 풍미를, 일부는 담백하면서도 강렬한 맛을 낸다. 그러나 이런 맥주들이 지닌 공통점은 곡물이 맥주에 선사하는 다양한 맛과 깊이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p.157 「몰트의 특징이 강한 에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