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트 초콜릿 재단은 훌륭한 초콜릿 제조 기술을 유지, 발전시킨 스위스의 초콜릿 장인들을 지원하고 그들의 신제품 개발을 독려할 뿐만 아니라, 산업과 연계해 젊은 전문가를 길러 내는 일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 특히 재단의 많은 사업 중에서도 초콜릿 생산과 유통에 관련된 첨단 기술이 대학 및 학술 기관의 협력하에 개발되고 있는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최고의 시계를 만드는 정밀 공업의 발전이 초콜릿 산업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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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급 상점들 사이에서 초콜릿 가게를 발견하는 건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다. (중략) 레더라는 시즌별로 전 세계 매장 구성을 통일시키고 있는데, 6월에는 미니 무스(Mini Mousse)가 주력 상품이었다. 그러나 무스를 둘러싸고 있는 초콜릿이 너무 얇다 보니, 항공 운송 시 파손될 가능성이 있어 국내에는 들여오지 못하고 있다. 현지에서만 먹을 수 있다니! 초콜릿을 맛보러 20시간 비행길에 오른 여행자가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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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더라는 2020년 취리히에서 1시간쯤 운전해야 갈 수 있는 글라루스(Glarus) 주의 빌텐(Bilten)이라는 도시에 레더라 하우스를 개관했다. 이런 지방 도시에 레더라의 본사와 공장이 있고 박물관, 소비자 견학 센터,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매장을 아우르는 레더라 하우스가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중략) 레더라는 가장 최고의 맛은 ‘신선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신선하고 맛있는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 갓 수확한 열대 우림의 카카오와 알프스에 방목한 젖소에서 짜낸 우유를 사용하고,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Piemonte) 지역의 헤이즐넛 등 최상의 재료를 가져와 엄격한 품질 기준에 따라 스위스에서 제품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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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데플라츠에 있는 스프륑글리 매장은 1859년 개점한 이래 지금까지 취리히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이곳은 훌륭한 초콜릿과 과자, 케이크를 판매하는 취리히의 명소가 되었고, 스위스의 저명인사들이 매장의 단골이었다. 특히 『알프스의 소녀(Heidi)』의 저자인 요하나 슈퓌리(Johanna Spyri)는 여기에서 원고를 썼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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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에는 한 집 건너 한 집이 초콜릿 전문점일 정도로 그 수가 많다. 근처에 노이하우스(Neuhaus)의 간판이 보였다. (중략) 약사였던 노이하우스는 1857년 쓴 약에 얇은 초콜릿을 입혀 팔기 시작했고, 손자가 이것을 발전시켜 1912년 여러 가지 속 재료에 초콜릿을 입힌 지금의 프랄린을 개발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프랄린을 만들자 초콜릿을 넣어 주는 상자인 발로탱(ballotin)을 고안해 판매를 도왔다. 다양한 크기의 상자에 원하는 무게만큼 프랄린을 담아서 판매하는데, 요즘에도 많은 초콜릿 전문점에서 이 상자를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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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번쩍 뜨이게 만드는 알록달록한 색깔은 레몬, 유자, 패션 프루트(passion fruit) 등 100% 과일에서 가져왔다. 햇살에 눈이 부신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며 한 입 깨물고 싶은, 아니 보고 있기만 해도 삶이 달콤해지는 마법의 초콜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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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 덴더르는 『미슐랭 가이드(Guide Michelin)』와 더불어 권위 있는 레스토랑 가이드로 알려진 『고 에 미요(Gault et Millau)』에서 ‘2023년 브뤼셀 최고의 쇼콜라티에(Meilleur chocolatier de Bruxelles 2023)’로 선정되었다. 2023년도에 브뤼셀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판 덴더르의 초콜릿 전문점에 꼭 한번 들르라는 추천을 받은 것이다. 남들보다 1년 먼저 들른 셈이니, 멀리 브뤼셀까지 찾아간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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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빈 투 봉봉(bean to bonbon)을 표방, 카카오 빈을 직접 들여와 여러 과정을 거쳐 사각형의 봉봉 오 쇼콜라를 완성한다. 정사각형의 싱글 오리진 가나슈 초콜릿은 자바, 트리니다드, 마다가스카르, 베네수엘라, 페루 등 카카오 산지에 따른 차별화된 맛과 향을 간직하고 있다. 초콜릿 애호가라면 꼭 한번 도전해 볼 제품이다. (중략) 르 쇼콜라에서 주목할 또 다른 제품은 특정 지역의 특정 카카오 품종으로 만든 판형 초콜릿이다. (중략) 지역적 특성과 카카오 종의 특성까지 살펴볼 수 있는 오리진 바(Origin Bar) 초콜릿은 생소한 만큼 탐구심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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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예술성과 훌륭한 기술을 갖춘 파리의 많은 쇼콜라티에 중에서도 초콜릿 애호가들이 최고로 손꼽는 사람이 파트릭 로제(Patrick Roger)이다. 그는 초콜릿을 음식 재료뿐 아니라 자신의 예술 철학을 표현하는 재료로 삼은 쇼콜라티에이자 조각가로, (중략) 파리에 있는 7곳의 부티크는 각기 다른 독특하고 실험적인 내부 장식으로 꾸며져, 마치 갤러리를 연상시킨다. 부티크만 보아도 현대 미술의 진수를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마들렌에 있는 부티크는 ‘Patrick Roger’라는 상호가 없으면 결코 초콜릿 전문점이라 생각할 수 없는 독특한 외관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의 시그니처 색깔이라 할 수 있는 신비로운 민트그린색이 전면을 감싸고 있어, 마치 에메랄드빛 바다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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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 드보브 에 갈레도 외관이 초록색이나, 전날 가 봤던 파트릭 로제의 부티크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한 곳은 미래의 모습, 한 곳은 과거의 모습이랄까? 1817년부터 생페르(Saints-Peres) 거리를 지키고 있는 드보브 에 갈레는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초콜릿 전문점답게 2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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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투 바는 허쉬(Hershey’s), 키세스(Kisses), 엠앤엠즈(M&M’s) 등으로 대표되는 양산 초콜릿에 질린 젊은 요식업계 종사자들이 카카오 본연의 맛에 집중한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 미국에서 1990년대 후반 시작된 새로운 초콜릿 제조 방식이다. 카카오 원산지와 발효, 로스팅 온도와 시간 차이에 따라 천차만별의 맛을 나타내는 빈 투 바 초콜릿은 화학 처리를 하지 않고 코코아 함량이 70%에 육박하는 다크 초콜릿이 주된 상품이어서 건강에 좋은 초콜릿으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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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처음 초콜릿이 소개된 것은 고종 황제 재위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것은 한국전쟁 직후 미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하게 된 이후이다. 초콜릿은 군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간식거리였고, 이미 1, 2차 세계대전에서 그 가치를 여실히 증명했다. 미국의 제과업체에서 대량 생산된 판형 초콜릿은 미군의 필수 식량과도 같았다. 전후 폐허가 된 남한 땅에서 미군이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준 초콜릿은 ‘잘 사는 나라’의 상징과도 같았을 거라 추측된다. 그러나 생전 처음 먹어 본 초콜릿이 미국의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제품이었다는 것이 우리나라 초콜릿 산업의 고급화를 막는 주범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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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거듭할수록 크리스마스와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차별화된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우리나라 초콜릿 시장도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2000년대 후반에는 리샤, 레오니다스, 레더라 등 유럽의 초콜릿을 수입해 백화점 행사장에서 판매하던 업체들이 로드 숍이나 백화점에 전문 매장을 내고 국내 초콜릿 시장을 이끌게 되었다. (중략)
한편, 유럽 현지에서 초콜릿을 공부한 우리나라의 1세대 쇼콜라티에들이 2000년대 중후반에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부티크 또는 초콜릿 카페에서 정통 수제 초콜릿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후 초콜릿 시장의 가능성을 읽은 사람들이 유학길에 오르거나, 1세대 쇼콜라티에의 문하생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2010년대에 들어서자 2세대 쇼콜라티에들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부티크를 열며 수제 초콜릿 시장에 뛰어들었고, 이들은 매출에서는 유명 수입 브랜드에 훨씬 못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고객층을 확보하며 국내 프리미엄 초콜릿 시장의 일정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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