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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0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300g | 133*200*20mm
ISBN13 9788954675369
ISBN10 8954675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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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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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삼 년 남짓한 시간 동안 선배가 누구를 만났고 어떤 일을 겪었는지, 진아는 거의 알지 못했다. 다만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스무 살 무렵의 사람이 얼마나 유연한지,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구부러질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한나」중에서

가끔 안고 싶고 만지고 싶었는데 진아는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스스로에게도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좋아한다거나 혹은 욕망을 느꼈다거나, 어쨌든 그런 식으로 언어화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냥 한나가 곁에 있을 때, 한나의 살냄새를 맡을 때 그쪽으로 손을 뻗고 싶었다. 그건 한없이 말갛고 단순한 욕구였고, 그래서 때때로 마치 그냥 저질러버려도 아무 상관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진아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막아둔 둑으로 물이 차는 것처럼 천천히 감정은 차올랐다.
---「한나」중에서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진아는 생각했다. 한 사람에 대한 소문이 이렇게나 넉넉히 흘러다니는데 어떻게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을 수 있을까. 알아보려고만 하면, 손을 뻗으면 바로 거기에 모든 이야기가 있었다. 그와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와 한나와 또다른 여자애들이 살아가는 세계 사이에 단단한 막이 있어 그 두 세계는 좀처럼 뒤섞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나」중에서

다이빙에서 중요한 것은 평정이었다. 호흡에 신경을 집중하고 차분히 부력을 조절할 것. 맑은 물속에서 산소통의 공기를 빨아들이고 내쉬는 숨소리만이 선명했다.
---「리틀 선샤인」중에서

단절되고 나서야 거기 어떤 고리가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 그 고리가 무엇이었는지 골몰하게 되는 것. 한 시절이 끝났다는 예감은 이상하리만치 담담했고 그러나 동시에 단호했다.
---「알레르기」중에서

수주는 하루에도 몇 번씩 누군가 자신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것 같다고 느꼈다. 왜 그렇게 잘 걷고 있는 거야? 그녀를 걷어찬 발에 입이 있다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드러그스토어에 들어가 향수를 뿌려보다가도, 문득 볕이 좋다고 생각하다가도, 지하철역의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서다가도, 멍하니 광고판을 바라볼 때도. 수주는 재빨리 수치심을 삼키는 일에 점점 더 익숙해졌다.
---「알레르기」중에서

몸의 어떤 선들은 한 사람을 그 사람과 닮은 모든 사람과 구별하게 해주기도 한다. 예컨대 귓바퀴의 모양, 목선, 이마에서 구레나룻으로 이어지는 부분이라든지 어깨의 둥근 정도 같은 것들.
---「아일랜드 페스티벌」중에서

무엇도 내 세계를 바꿀 수 없어. 그 노랫말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믿었던 날들이 아득했다.
---「아일랜드 페스티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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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하고 이름을 불러본다. 호명은 한 세계로 향하는 출발이자 그 세계와 맞닿는 가장 뜨거운 행위이니, 정지향의 한나와 정지향의 정민, 정지향의 초를 나는 그렇게 만났다. 이 여덟 편의 소설 안에는 미처 언어화할 수 없었던 것들을 직시하고 기록하는 청년 여성 화자들의 목소리가 있다. 지금 쓸 수 있는 것을 지금의 자리에서 감각한다는 것, 우리가 이 고유한 결을 만날 수 있는 건 정지향이 그렇게 현재를 쌓아온, 쌓아가는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도 분류하고 도려낼 수 없는 세계, 정지향의 인물들과 만나는 일은 그 이름들이 계속 살아갈 2020년대를 함께 생각하는 일이다.
- 최은미 (소설가)
정지향의 소설은 젠더 폭력의 가해자를 고발하고 억압적인 구조를 드러내는 데서 머물지 않고 결국 자신의 삶을 향한다. 먼지 쌓인 과거를 꼼꼼히 되짚어보고, 작은 의심도 그냥 지나치거나 부정하지 않으면서 지나간 괴로움, 후회, 부끄러움과 일일이 악수한다. 그럼으로써 영영 내 것이 아닐 것만 같던, 이해할 수도 해명할 수도 없던 시간들을 비로소 자기의 것으로 만든다. (…) 지나간 모든 괴로움과 후회뿐만이 아니라 그것들과 뒤엉켜 있는 음악과 기억 역시 온전히 나의 것이 된다. 해명할 수 없던 밤은 이제 지나갔기 때문이다.
- 인아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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