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식의 좌충우돌 외서 기획자로 이룬 첫 성과는 책 《선한 사람이 실패하는 9가지 이유》에서 나왔다. 듀크 로빈슨이라는 작가였는데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제목만으로도 국내 독자들에게 공감을 줄 것 같았다.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는 예나 지금이나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왠지 착하면 손해만 보는 것 같고 뒤처진다고 느끼는 우리에게 이 책의 제목이 어필할 것 같았다. 다행히 내 기획 감각은 적중했고 판매도 괜찮았다. 감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 후 외서 기획의 또 다른 성과를 안겨주었던 책이 리처드 칼슨의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이다. 이 책이 소위 대박을 쳤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대화 중에 종종 ‘넌 사소한 것에 목숨 걸고 있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쓰는 것처럼 외서지만 제목만큼은 우리 정서에 맞게 지으려고 애썼다. 기획을 한 지 몇 개월 뒤 창업해서 정확한 판매 부수는 모르겠으나 몇십만 권은 나갔다고 들었다. 그 뒤 리처드 칼슨의 책이 국내에 20여 권 더 출간되었으니 대중적인 작가를 발굴한 셈이었다.
--- pp.36~37
푸른숲출판사에서 번역 의뢰가 들어왔다. 《모래땅의 사계》라는 번역서인데, 그때 푸른숲은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베스트셀러를 출간한 인지도가 높은 출판사였다. 그때 미팅을 하면서 번역자 이상원 씨를 추천했다. 그는 서울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했지만 영어가 더 익숙하고 자신 있다고 했다. 그의 프로필을 제공하니 푸른숲도 마음에 들어 했다. 단 초벌 번역만 맡기고 서울대학교 임학과 윤여창 교수가 손을 봐서 단독 번역자로 기재한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종종 있던 번역 관행이었다. 이에 나는 안 된다고 거절했다. 푸른숲과 일하고 싶기는 했으나 멀쩡한 번역자를 유령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몇 차례 출판사와 이견을 조율한 후 결국 공동 번역으로 책이 나왔다. 신생 회사였지만 돈보다 사람을 우선시했던 나는 그 후로도 10년 넘게 이상원 씨와 인연을 이어갔다. 이상원 씨도 그 뒤로 활발히 번역 활동을 하게 되었다. 훗날 이상원 씨는 영어와 러시아어를 번역하는 재능 있는 번역작가로 성장했고, 나중에는 모교인 서울대학교에서 교양 글쓰기 강의 인기 교수가 되었다. 나중에 우리 출판사에서 《하버드는 어떻게 글쓰기로 리더들을 단련시키는가》라는 글쓰기 책도 출간했다.
--- pp.76~78
이후 2011년 9월에 북오션에서 《장하준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라는 책을 출간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경제학 교수인 송원근 박사가 장하준의 전작을 조목조목 반박한 책이다.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것은 《한국경제신문》에서 장하준의 주장을 반박하는 논조의 기사를 읽게 되었고, 중도좌파인 내 정치적 관점에서 장하준의 논리를 비판하는 책을 내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기사에 나온 송원근 박사에게 연락해 당일 바로 찾아가 미팅을 진행했다. 그가 말하기를, 본래 한국경제연구원 논문으로 발표한 내용인데 《한국경제신문》에 기사가 난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논문의 내용을 좀 쉽게 풀어서 책으로 내자고 송원근 박사를 설득해 계약에 성공했고, 몇 개월 뒤 책 《장하준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송원근, 강성원 공저, 2011)를 출간하였다.
책 판매는 순조로웠고, 《주간조선》에 〈장하준은 틀렸다 여전히 시장이 정부보다 효율적이다〉라는 송원근 박사의 인터뷰 기사도 실렸다. 전경련이 주관하는 제23회 시장경제대상 출판부문 우수작으로도 선정되어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개최되는 시상식에 참석했다.
--- pp.201~204
한여름 8월 중순쯤이 어머니의 생신이다. 한여름에 나를 낳으시느라 고생하신 어머니. 어머니 생신 때 산소에 찾아뵙지는 않지만, 출근길에 아내에게 5만 원을 주고 아이들이랑 꼭 냉면을 먹으며 어머니를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살아생전에 어머니는 물냉면을 좋아하셨다. 나는 그때 아침을 안 먹고 다녔기에 점심에는 밥을 먹었다. 그러기에 면은 부담스러웠다. 그 당시에는 탄수화물 중독이란 말도 몰랐다. 면이나 밥이나 다 같은 건데. 냉면을 드시는 어머니에게 뭐가 맛있냐고 타박이나 했던 게 후회된다. 나도 같이 냉면을 맛나게 먹어볼걸. 자식과 함께 맛나게 먹는 추억을 못 드린 게 후회된다. 그때는 어머니가 영원히 계실 줄 알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7년째인데 어머니 생신 때마다 점심에는 뒤늦은 회한으로 물냉면을 먹는다.
어머니는 내 인생의 교과서였다. 어머니에게 나는 장남으로 남편의 빈자리를 메꾸어 주기도 했고, 인생의 친구이기도 했다. 나도 어머니를 보며 자랐다. 어머니가 40년 전에 강남에 아파트를 샀고, 군대 가기 전에도 집을 살까 하고 의정부에 데려간 일들이 나중에 내가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갖게 한 계기가 되었고, 투자 습관을 기르는 데 도움을 주었다.
--- pp.242~243
2021년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스토리마켓에 전건우 작가의 《죽지 못한 자들의 세상에서》가 스토리 부문에 선정되어 참가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동시에 열리는 스토리마켓은 콘텐츠 스토리를 거래하는 판권 세일즈 마켓이다. 선정된 IP 피칭뿐만 아니라 영상, 제작업체와의 비즈니스 미팅을 통해 거래를 진행한다. 우리와 같은 출판사뿐만 아니라 웹툰, 웹소설 업체도 참가했다. 영상, 제작업체로는 방송 3사를 비롯해 CJ ENM, 쇼박스, 메가박스, KT스튜디오지니, 메리크리스마스, 더타워픽쳐스 등 대거 참가해서 콘텐츠 제작에 맞는 작품을 찾고자 했다.
전건우 작가는 방송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피칭을 노련하게 잘했다. 4박 5일에 걸쳐서 작가와 함께 매일 비즈니스 미팅(각 30분)을 13개씩 진행했다. 피곤한 일정이었지만 다행히 두 달 만에 《죽지 못한 자들의 세상에서》에 실린 중편 〈콜드 블러드〉 영상 판권이 계약되었다. 고생한 작가에게 보상이 된 듯해서 나 역시 기뻤다. 2019년에 전건우 작가의 첫 책 《한밤중에 나 홀로》가 출간되고 꼭 4년 만이었다.
--- pp.287~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