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적인 재산이나 관계는 행복에 필요하긴 하지만 행복의 본질은 우리의 내부, 즉 원숙한 지식과 맑은 정신에 있다.
--- p.90
그러나 세계의 계몽을 위해 이처럼 큰 공헌을 한 사상가가 또 있었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후세의 모든 시대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존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어깨에 올라타 진리를 보려고 한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다채롭고 호화로운 문화는 그에게 학문적 암시를 발견케 했다. 그의 《오르가논》은 중세의 미개한 정신을 자라게 하여 견실한 사고로 훈련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p.104
확실히 《에세이》는 잘 씹어 소화시킬 가치가 있는 소수의 책 중의 하나로 손꼽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많은 고기가 이렇게 훌륭히 조리되어 이같이 작은 접시에 가득 담겨진 것은 보기 어렵다. 베이컨은 문장을 길게 늘이기 위한 말이나 쓸데없는 말을 경멸한다. 그는 짧은 글 속에 무한한 보배를 담고, 논문에서도 한 두 장마다 인생의 주요 문제에 관한 달인들의 명민한 지혜의 정수를 실었다. 그 내용과 문체 중 어느 쪽이 더 우수한가를 말하기는 곤란하다. 셰익스피어의 언어가 운문의 최고봉이듯이 그의 언어는 산문의 최고봉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꽉 짜인 타키투스의 문체처럼 간결하고 아주 세련된 문체이다. 그 문체의 간결은 라틴어의 숙어나 표현법을 교묘히 응용한 데서 비롯되고, 은유를 많이 사용한 것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특색을 나타내고 있으며 르네상스의 흘러넘치는 생기(生氣)를 반영하는 것이다.
--- p.121
철학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백지로 돌아가 깨끗하게 새로이 출발해야 한다. 그러므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지성을 바로잡는 일이다. 우리는 편견과 선입관을 씻어 버리고, 이즘(主義)과 추상을 전혀 모르는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마음의 우상을 파괴해야 한다.
--- p.136
진리를 추구하는 동안 철학자의 생활양식은 어떠해야 하는가? 스피노자는 어떤 단순한 규칙을 정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그는 현실적인 행동도 거기에 일치시켰다. “1. 민중에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말하고 우리의 목적 달성을 방해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민중을 위해 행할 것……2. 다만 건강 보전에 필요한
쾌락을 누릴 것. 3. 우리의 생활과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금전을 구하여, 우리의 목적과 상반되지 않는 습관에 따를 것.”
--- p.172-173
철학과 역사의 관계는 이성과 욕망의 관계와 같아서 어느 경우라도 하부의 무의식적 과정이 상부의 의식적 사고를 결정하는 것이다.
--- p.207
‘책은 세계를 지배한다’고 볼테르는 이렇게 썼다. ‘적어도 글로 쓸 수 있는 말을 가진 국민을 지배한다. 그 밖의 국민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 ‘교육만큼 사람을 해방시키는 것은 없다.’―그리고 그는 프랑스 해방에 착수했다. ‘어떤 국민이 일단 생각하기 시작하면 이미 그것을 멈출 수는 없다.’ 그리하여 볼테르와 함께 프랑스는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 p.207
그는 떠돌아다니는 나그네와도 같이 민족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애국심이 거의 없었다. 애국심이란 일반적으로―하고 그는 말하고 있다 ―자기 나라 이외의 모든 나라를 싫어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나라의 번영을 바라지만, 절대로 남의 나라의 희생을 바라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이성적 애국자임과 동시에 세계 시민이다. ‘선한 유럽인’으로서 그는 프랑스가 영국과 프러시아와 교전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문학과 프러시아의 왕을 찬양했다. 모든 국민이 전쟁을 상습적으로 하는 한―하고 그는 말한다―어떤 국민이나 대개 비슷하다.
--- p.249
쇼펜하우어는 《순수이성비판》을 ‘독일어로 쓴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라 하여 누구나 칸트를 이해하기 전까지는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하다고 했다. 스피노자에 대하여 언급한 헤겔의 말을 인용해 보면 한 사람의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칸트 학도여야 한다는 것이다.
--- p.258
의무를 다하라는 이 절대적 명령은 결국 우리 의지의 자유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자신을 자유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대체 어떻게 의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겠는가. 이 자유는 이론이성으로는 증명할 수 없다.
--- p.282
그러므로 칸트는, 능력의 평등이 아닌 계급의 특권을 전부 부인하고, 세습적 특권을 모두 과거의 폭력으로 얻은 것이라고 규정지었다. 반계몽주의와 반동과 혁명을 진압하려는 유럽의 전군주국 연합의 한복판에서 그는 70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질서로, 곳곳에 민주주의와 자유를 확립할 것을 주장했다. 노인이 젊은이의 음성으로 이토록 용감하게 발언한 일은 이전에는 없었다.
--- p.289
의지로부터 해방된 지성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천재는 우리에게 맑은 거울을 보여주지만 그 거울 속에는 모든 본질적인 것이나 의의 있는 것이 한데 뭉쳐져서 지극히 밝은 빛에 비치므로 우연적인 것이나 이질적인 것은 제외되어 있다.’ 사고는 햇빛이 구름을 통하듯 격정을 뚫고서 사물의 핵심을 비쳐 준다. 그것은 개별적인 것이나 특수한 것 속에 ‘플라톤적인 이데아’ 또는 그것을 형상화시키는 보편적 본질을 포착한다. 마치 화가가 자기가 그린 인물에서 단순히 개인적인 성격이나 얼굴의 특징을 볼 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보편적인 성질이나 개체를 단순히 자기표현의 상징이나 방법으로 하는 데 불과한 영원한 실재를 보는 것처럼, 즉 천재의 비밀은 객관적인 것, 본질적인 것, 보편적인 것을 똑똑히 공평하게 가려내는 데 있다.
--- p.336
생애의 대부분을 하숙집에서 지낸 사람이 어떻게 염세에서 헤어날 수 있었을까. 단 하나의 자식을 어둠 속에 사생아로 매장한 사람이? 쇼펜하우어의 불행의 가장 깊은 이유는 정상적인 생활의 거부, 여자와 결혼과 자식의 거부였다. 그는 어버이가 된다는 것은 모든 악 중 최대의 악으로 보았다. 건전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인생 최대의 만족을 의미하는데, 그는 연애가 사람의 눈을 피하는 것은 종족을 보존하는 일 자체가 부끄럽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니, 그런 유아독존격인 부조리가 또 어디 있겠는가.
--- p.348
니체에게는 세상에서 많은 악과 잔혹을 발견하는 것이 위안이다. 그는 잔인함이 태고의 인간에게 최대의 즐거움과 쾌락이었다고 잔혹의 범위를 사디즘적으로 넓혀 상상하는 것을 즐겼고, 비극과 어떤 숭고한 것에서 느끼는 기쁨은 세련된 잔혹의 대용품이라고 믿었다. ‘인간은 가장 잔혹한 동물이다’라고 차라투스트라는 말한다. ‘비극, 투우, 책형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때 인간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행복을 느꼈다. ……그래서 지옥을 발명했을 때 지상에서 지옥은 인간의 천국이었다.’ 비로소 그는 압제자들이 저승에서 받는 영원한 형벌을 생각하고 고통을 참을 수 있었던 것이다.
--- p.417
니체는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고지(告知)하고 계시한다. 논리보다도 상상력으로 우리를 설복하여 우리에게 단순히 철학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고, 시를 제시하는 것도 아닌 새로운 신앙, 새로운 희망, 새로운 종교를 제시한다.
--- p.431-432
베르그송은 일찍이 그 인기를 넓혔지만, 그것은 그가 인간의 가슴속에 영원히 솟아나오는 희망을 변호했기 때문이다. 철학을 존경하면서 영생과 신성을 믿을 수 있다고 알았을 때, 사람들은 기뻐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 p.458
이 반역의 배후에는 피비린내 나는 투쟁 그 자체에 대한 단순한 혐오가 잠재하고 있다. 육체를 탈피하여 정신적이 되려고 노력한 버트런드 러셀은 실은 감정의 형성물이었으며, 제국의 이해관계 같은 것은, 죽기 위하여 자랑스럽게 자기 눈앞에 진군해 나간 젊은이들의 생명 값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 p.4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