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람을 대상으로 이런 찬란한 기분이 들 수 있는 걸까. 갓 구운 빵 냄새 같고, 햇살 좋은 날 흩날리는 비눗방울 같은, 빙그르르 돌아가는 선캐처에서 모래알처럼 부서져 나오는 빛의 색채들 같은, 그런 마음이 어떻게 나 같은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걸까.
---「Lovesome」중에서
신을 믿는 자의 기도는 일말의 희망을 늘 간직하고 있지만, 신을 생각하지 않는 이에게 기도는 기적을 바라는 일만 남았다는 사실에 대한 처절한 긍정과 다를 바 없다.
---「Lovesome」중에서
내 식견으로 어림할 수 있는 가장 초월적인 것이 사랑이기에, 신이라면 사랑이 아닐 수 없 다고, 사랑이 아닌 신은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고. 그러니 정말로 어디선가 신이 태어나는 중이라면 반드시 사랑이 되어 홀로 기도하는 이들에게 가길 바란다. 사랑은 응당 그래야 하니까.
---「Lovesome」중에서
안나는 나의 말을 인공지능 비서 '시리'처럼 늘 듣고 있다. 나와 동생에게 필요한 것을 빠뜨리지 않고, 늘 구비해 둔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내가 안나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 한다. 또 뭐가 맛있다고 하면 한 박스씩 살까 봐 동생과 나는 조용한 리액션을 하기로 암묵적인 약속을 한다. 나는 이 사랑이 가끔 아프다. 마음이 체하는 것처럼 찡하다.
---「delight」중에서
배 속에서 울렁거리는 느낌이 났다. 이상했다. 마사코를 다시는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정말로 이상했다. 분명 여기에 있었는데, 없어졌다. 죽음이라는 건 이상하다는 감각일까. 슬프다기보다는 너무 이상해서 나는 자꾸만 이 세계로부터 멀어졌다.
---「delight」중에서
“음...... 그러니까, 저는 함께 슬퍼지고 싶은데요.” 하나의 이미지를 보고 누군가는 기뻐하고 누군가는 슬퍼하고 누군가는 그립다고 느끼는 거 말고요. 이왕이면 우리 앞에 여러 개의 이미지가 놓여도 그걸 바라보는 우리가 같은 슬픔에 빠졌으면 좋겠어요.
---「sorrow」중에서
나는 꼭 우울한 표정 짓기 대회에 출전한 사람 같았고, 이곳은 병원이 아닌 넓은 잔디밭이거나 공터로 느껴졌다. 한자리에 모여, 똑같은 의자에 앉은 조건으로 시작되는, 가장 우울한 사람이 이기는 게임.
---「sorrow」중에서
사랑은 그 대상을 여타의 다른 대상으로부터 분리시켜 독보적인 것으로 만든다. 사랑은 스스로 의미 있는 존재가 되거나 그것을 만들어 내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solitude」중에서
도시의 주변에서, 이제는 나와, 불 꺼진 마루와, 마룻바닥에 잠든 노모가 있는, 먼 곳으로 떠나도, 다시 돌아올 것 같은, 오래된 기억 속의 그 집, 누군가 간다는 곳이 고작, 그곳이었냐고 물어 보면, 그래, 그곳뿐이었다 말한다.
---「solitude」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