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와 나는 이미 온갖 것에 관해 종종 이야기하곤 하였다; 매우 호감 가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을 조금도 손상하지 않고 최고의 무뢰한들과 어울리고 친할 수 있다. 우리가 중국인의 말을 들을 때, 우리는 그의 말을 쏼라쏼라하는 분절되지 않은 소리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어를 이해하는 사람은 그 소리 속에서 언어를 인식할 것이다. 그와 비슷하게, 나는 종종 인간 속에서 인간을 인식할 수 없다, 등등. 작업을 조금 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첫문장」중에서
내가 철학하는 방식은 나 자신에게는 여전히, 그리고 계속해서, 새롭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나는 그처럼 자주 반복해서 말해야 한다. 새로운 세대에게는 그 방식이 피와 살로 바뀌어 있을 것이며, 그들은 그 반복을 지루하게 느낄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 방식은 필연적이다.―이 방법은 본질적으로, 진리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뜻에 대한 물음으로의 이행이다.
--- p.28
우리가 세계의 미래에 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언제나 그것이 지금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계속 흘러갈 때 그것이 도달하게 될 지점을 생각한다; 그것이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흘러가고, 그 방향이 항상 변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 p.31
나의 사고는 실제로는 단지 재생산적일 뿐이라고 내가 생각할 때, 거기에는 진실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내가 하나의 사유 노선을 창안해 내었다고는 결코 믿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나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나는 다만 그것을 즉시 열정적으로 받아들여 명료화하는 작업을 했을 뿐이다. 그렇게 해서 볼츠만·헤르츠·쇼펜하우어·프레게·러셀·크라우스·로스·바이닝거·슈펭글러·스라파는 나에게 영향을 끼쳤다. 유태적 재생산성의 예로서 우리들은 브로이어와 프로이트를 끌어들일 수 있을까?―내가 창안하는 것은 새로운비 유들이다.
--- p.51
(철학자들은 종종, 연필을 가지고 종이 위에다 임의의 선을 그어대고 “이것은 뭐예요?” 하고 어른들에게 묻는 작은 어린아이들과 같다.―일은 이렇게 일어났다: 어른이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자주 그려 보이고는, “이것은 사람이야”, “이것은 집이야” 하는 따위를 말하였다. 그런데 이제 그 아이도 역시 선을 긋고는 묻는다 : 그럼 이것은 뭐예요?)
--- p.64
니체는 언젠가, 가장 훌륭한 시인과 사상가조차도 평범한 글과 조악한 글을 썼는데, 다만 그로부터 좋은 것을 분리해 냈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정원사의 정원에는 물론 장미들과 나란히 똥거름과 쓰레기와 짚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단지 그 좋고 나쁨에서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정원에서의 기능에서도 구별이 된다. 조악한 문장처럼 보이는 것이 좋은 문장의 씨앗일 수 있다.
--- p.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