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 적막 속에서 갑자기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린다. 전국 각지에서 된장, 청국장, 김치, 새우젓, 막걸리, 가자미식해, 식초 등 발효음식을 만드는 미생물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여기는 어디일까, 누가 왜 여기로 데려왔을까. 미생물 친구들은 궁금증을 해결할 만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각자 돌아가면서 자기가 이곳까지 오게 된 사연을 얘기하기로 한다. 미생물 친구들은 때로는 자기를 몰라준다며 투덜대며, 때로는 자기가 최고라고 으스대며 발효음식을 만든 얘기를 들려준다.
햇살 따스한 남도의 가을날, 자글자글 주름진 할머니가 들녘에 나오더니 볏짚을 한아름 안고 집으로 간다. 할머니는, “콩아 콩아, 노란 콩아. 어서 끓제 뭣 헌다냐. 몸 약헌 우리 손녀 너로 약 삼을란다.” 하고 흥얼거리며 콩을 삶아 소쿠리에 얇게 편 뒤 볏짚을 군데군데 꽂는다. 그러고는 콩이 담긴 그릇을 따뜻한 아랫목으로 옮기고 이불을 덮어준다. 이때 사흘 밤낮으로 열심히 콩을 발효시켜 청국장을 만든 게 바로 바실루스 써브틸리스다.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 냇물에 정히 씻어 함담을 맞게 하소.” 전주 시골 마을회관에 김치노래가 흥겹게 울려퍼진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김장을 담그는 중이다. 배추는 소금물에 담그고, 젓국에 버무린 고춧가루를 무채에 개어 넣고, 여기에 굴, 생새우, 새우젓, 곱게 다진 마늘, 생강으로 간한 양념을 배춧잎 사이에 골고루 넣어준다. 류코노스토크는 이 김치가 발효되어 시큼하고 깔끔한 맛을 내는 데 자기가 한몫 한다고 우쭐댄다.
강원도 아바이 마을에서 온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던 가자미식해를 발효시킨 스트렙토코쿠스, 강경 새우젓에서 뛰어놀던 페디오코쿠스, 경기도 포천에서 막걸리를 빚던 사카로미케스도 저마다 발효음식 하면 빠질 수 없는 미생물이라고 자기를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초두루미 안에서 식초를 만든 아세토박터의 이야기에서 발효미생물들이 여기 모이게 된 까닭을 어렴풋이 알아채는 순간, 갑자기 발소리가 나더니 불이 환하게 켜진다. 발소리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발효미생물들은 왜 한자리에 모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