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추리닝 차림으로 집을 뛰쳐나왔을 때 나는 서른다섯 살이었다.”
--- 첫 문장
“인류는 딸들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남자를 선택하지 않고 어버이를 잊고 딸들끼리 인간이 되어보자고 결심하는 첫 세상이다.”
--- p.199, 「딸들끼리 인간이 되어보자」 중에서
“가족이 하는 말을 곧이듣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나를 겁주는 사람들을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나는 혼자서도 충분히 강하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오랜 세월을 불안에 떨지 않고 보낼 수 있었을까. 그 얘기를 딸들에게 하고 싶다. 원가족을 벗어나 김장철에 김치 얻을 데가 없고 명절에 전화할 데가 없어도 큰일 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 종류의 외로움은 골백번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나에게 책임이 있는 이들에게 책임을 요구하라. 책임의 이행을 요구하라. 사랑을 구걸하지 말라.”
--- p.16, 「들어가며」 중에서
“결혼에 대한 열망도 결혼하지 않을 각오도 없었다. 정착하기도 싫었고 떠날 곳을 몰랐다.”
--- p.39, 「서른다섯 살 홈리스」 중에서
“모든 끈이 떨어져 홀로된 여자에게 고객이자 친구가 되어주는 여자들이 생긴다는 것은 내 개인의 역사를 다시 쓰는 일이었다. 세상이 넓다지만 내가 진짜로 넓혀볼 만한 세상에 그때에야 초대된 셈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없이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내 얘기를 들어주고 나를 신뢰하는 사람들을 새로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나의 밥줄에서부터 나는 여자들에게 너무 큰 빚을 지고 있다.”
--- p.51, 「난 선생인데」 중에서
“나는 혼자 살기 전까지만 끊임없이 연애를 했다. 나의 안전이 온전히 나의 책임이라는 것을 실감한 후에는 남자와의 연애를 그만두었다. 지축을 뒤흔드는 로맨스의 기억들이 전생의 것이라는 듯이 나는 연애를 끊었다.”
--- p.61, 「상처」 중에서
“나는 아들들이 한국의 가정에서 받아들여지는 방식으로, 그렇게 똑같이 집안의 다른 아들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야생으로 보이고도 사랑받은 딸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씻지 않고 더러워도, 먹고 난 자리를 치우지 않아도, 나설 자리 안 나설 자리를 가리지 못해도, 일반적으로 합의되는 윤리의 기준을 아무렇지 않게 위반해도, 받은 만큼 돌려주지 않아도, 고맙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아도 그저 살아 있는 것으로 벅차게 충분한 존재가 되는 딸을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다.”
--- p.78, 「딸이라는 불완전한 인간」 중에서
“그러나 마침내 나는 이 진화하는 듯 조금도 진화하지 않는 로맨스의 변주를 더 이상 주워섬기지 않기로 했다. 여전히 섹시댄스를 여자의 전투로 해석하는 로맨스 문법이 편안하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에 이제껏 기여해왔음을, 나의 피 묻은 손을 고백하고 손절하는 바다.”
--- p.131, 「로맨스를 손절한다」 중에서
“아, 그놈의 마동석. 혼자 사는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집에 구비하고 싶었을, 휴대가 간편하고 접어서 보관할 수 있는 만구천구백 원짜리 마동석.”
--- p.148, 「골목 끝에 혼자 사는 미친 여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중에서
“환상이 깨지고 로맨스가 도려내어진 그 지점에서, 허울 좋은 낭만과 일시 정지한 젊음이 그 한계를 보인 바로 그 영토에서 나는 지금을 살아가자고 마음먹었다.”
--- p.169, 「일주일짜리 향수병」 중에서
“오로지 화를 내고 슬퍼하기만 하다가 생을 끝내기는 싫었다”
--- p.182, 「유난스러운 여자의 생존」 중에서
“지금부터 우리는 함께 살아 남아 죽은 여자들과 산 여자들에게 증인이 될 것이다. 나는 그 어떤 정의로운 남자도 이 싸움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안다.”
--- p.193, 「비명으로 시작되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