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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헤더 구덴커프
칼리
칼리는 천천히 방문을 열고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무 인기척도 들리지 않자, 조심스럽게 방을 나선 뒤 천천히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곳의 공기는 방안의 공기보다 더 탁하고 무겁게 느껴졌다. 오빠인 벤의 방은 칼리의 방과 서로 마주보는 곳에 있었는데, 그 방 창문을 열면 뒷마당과 윌로우 크릭 숲까지 내다보였다. 벤의 방과 부모님 방은 굳게 닫혀 있었다. 칼리는 맨 위 계단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는 아버지가 아래층에 아직도 계신 건 아닌지 귀를 기울여 보았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낚시하러 떠나고 없는 모양이었다. 칼리의 마음은 기쁨으로 들뜨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친구인 로저 아저씨와 함께 마을 동쪽에 자리 잡은 미시시피 강으로 떠난다고 했었다. 집에서 대략 80마일이나 떨어진 곳이다. 아침에 로저 아저씨가 아버지를 태우러 와서 같이 떠나면 적어도 3일 동안은 아버지를 보지 않아도 된다. 칼리는 아버지가 멀리 떠나신다고 하니 그보다 행복한 일이 없었다. 이런 일에 기쁨을 느낀다는 사실에 조금은 죄책감도 들었지만, 세 식구만 있을 때가 훨씬 평화로운 것이 사실이기에 칼리도 어쩔 수 없었다. --- p.13 마틴 나는 페트라가 방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별로 놀랄 것은 아니다. 페트라는 가끔 불면증에 시달릴 때 아래층에 내려가 혼자서 TV를 보곤 한다. 나는 페트라를 찾으러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TV는 꺼져 있다. 집안 전체가 조용했고 아이의 목소리나 웃음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즉시 이방 저방을 열고 불을 켜 아이가 있는지 확인해보지만 아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부엌이고, 화장실이고, 내 서재고 아무 곳에도 없다. 부엌을 지나 지하실까지 가보았으나 여전히 아이는 보이지 않는다. 난 즉시 2층으로 올라가 필다를 흔들어 깨운다. “페트라가 사라졌어.” 숨이 가빠 헐떡이며 내가 말한다. 필다는 깜짝 놀라 침대에서 일어나 함께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찾아보지만, 여전히 페트라의 모습은 없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집 주위를 세 번이나 돌아보지만 마찬가지다. 필다와 나는 부엌에서 다시 마주친다. 이 사태를 어째야 할까. 필다는 한 손으로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막으면서 경찰서에 전화를 건다. 루이스 부보안관이 곧 올 것이므로 우리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는다. 필다는 계속 이방 저방을 기웃거리며 페트라를 찾다가 이렇게 말한다. “칼리네 집에 갔을지도 몰라요.” “이 새벽에?” 내가 묻는다. “도대체 거기까지 무슨 이유로? 너무 더워서 밖에 나갔다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는 걸지도 몰라. --- p.28 안토니아 그리프가 아이들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진다. 걱정 되서 집으로 돌아올까? 아니면 그저 나 홀로 이 상황을 겪게 내버려 둘까? 한때는 그를 정말 사랑했었다. 지금도 어떤 면에서 보면 그 애정이 남아있는 것도 같다. 처음에는 우리도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깊이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어느 새 술이 그의 마음을 앗아가 버렸다. “벤과 같이 경찰서로 오라고?” 잠시 딴 생각을 하던 나는 다시 루이스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나와 함께 자라왔던 오랜 친구다. 내가 결혼했어야 하는 사람도 바로 그였었다. 하지만 그랬다면 벤도 없었을 것이고, 칼리도 태어나지 못했겠지. --- p.98 칼리 칼리는 어느 쪽으로 도망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뒤로 가자니 그쪽은 높은 절벽이었고, 앞으로 가자니 그리프가 길을 막고 있었다. “칼리.” 그가 다시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어서 말하라니까!” 그는 칼리의 어깨를 거칠게 잡고 흔들었다. 그러나 갑자기 덤불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칼리를 내려놓았다. 그는 몸을 숙이고 갈기갈기 찢기고 더러워진 하얀 바탕에 노란 꽃무늬가 있는 천 조각을 집어 올렸다. “맙소사…….” 그가 다시 페트라를 보며 말했다. 페트라는 전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파란 잠옷 윗도리는 흙에 더럽혀져 있었으며, 드러난 두 다리에는 멍이 들고 피로 얼룩져 있었다. “맙소사, 어떻게 이런 일이….” 그리프는 갑자기 뒤로 돌아 노란 물을 토해내었다. 그리고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더니 다시 웩웩거렸으나 더 이상 입 밖으로 토사물이 나오진 않았다. 그가 배를 부여잡고 몸을 구부리고 있는 모습을 보자, 칼리는 이때가 기회다 싶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칼리.” 그리프가 숨을 헉헉거리며 칼리를 불렀다. “칼리, 도대체 이게 누구 짓이냐? 누가 이랬는지 아니?”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들고 있던 노란 꽃무늬 천조각에 손을 쓰윽 문질렀다. --- p.252 벤 너무 피곤해서 졸음이 몰려온다. 눈은 퉁퉁 부어 거의 감긴 상태고 머리는 누가 계속 때리는 것처럼 매우 아파온다. 아빠도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보여, 나는 다소 안심한다. 반쯤 감긴 눈틈으로 페트라의 움직임이 보인다. 아주 약한 미동이다. 너무 다행이다. 죽진 않았구나. 나는 나무에 기대어 슬슬 몸을 일으킨다. 어지럽고 너무나도 피곤하다. 지금 내가 바라는 건 정말로 차가운 물 한 잔을 마시고 며칠간 그대로 뻗어 있는 것뿐이다. 나는 페트라쪽으로 다가간다. 페트라는 두 팔로 얼굴을 가리운 채 공처럼 몸을 구부리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그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죽도록 얻어맞은 페트라의 얼굴을 가까이서 볼 자신이 없다. 속이 울렁거린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들어야 한다. 아빠가 자는 동안 알아내야만 한다. “페트라” 내가 작은 소리로 이름을 불렀으나 대답이 없자, “페트라!” 하고 좀 더 큰 소리로 불러본다. 그리고는 그 옆에 꿇어 앉아 어깨에 손을 올린다. 내 손가락에서 흐르던 피가 잔뜩 굳어 있다. 아무리 바지에 닦아 봐야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페트라는 몸을 더 움츠린다. “페트라, 나 벤이야. 제발 좀 일어나봐. 할 말이 있어.” 페트라는 내 목소리를 듣고는 작게 신음소리를 냈다. --- pp.285-286 안토니아 벌들이 드나들며 꿀을 모으는 벌집이 있는 나무에서 달콤하고 강한 향이 풍기고 있어. 이제 이 냄새를 맡을 때마다 오늘 일을 기억하게 되겠지? 너는 나무들 사이에서 어젯밤 잘 때 입었던 분홍색 치마잠옷을 휘날리며 달려오는구나. 순간 나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안도의 기쁨으로 온몸이 떨린다. 네 긁힌 두 다리나 진흙이 묻은 발, 혹은 네 손에 매달린 목걸이 따위는 지금 내 눈에 보이지도 않아. 나는 어서 너를 품에 안고 땀에 젖은 네 머리를 뺨에 대고 싶구나. 다시는 네게 입을 열라고, 말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을게. 이젠 네가 돌아왔으니 그걸로 충분하단다. 두 팔을 활짝 펴고 네게 달려가 보지만, 넌 내 옆을 지나 루이스의 옆에 서는구나. 내 쪽은 바라보지도 않아. 아, 루이스의 경찰복을 보고 달려갔구나. 잘했어! 당연히 그래야지. 루이스가 허리를 숙여 네 얼굴을 바라보는구나. 내 눈은 네 얼굴을 향해 있어. 그때 네가 입술을 오무린다. 그래, 그래, 정말 장하다. 네 입에서 아주 쉽게, 물 흐르듯이 그렇게 한 마디가 나왔구나. 칼리, 너는 그 동안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전혀 거리낌 없이 자신 있고 명확한 목소리로 그 한 마디를 말한 거야. 3년 만에 네 목소리를 처음 듣는구나. 그 순간 내 품에 너를 안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감사와 기쁨, 안도와 슬픔 등의 모든 감정이 혼재되어 눈물이 되어 흘러내리고 있어. 페트라의 아버지도 같이 흐느끼기 시작했어. 네 입에서 나온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는 상관없단다. 네가 드디어 입을 열고 말을 했잖니. --- pp.297-298 안토니아 그가 총에 맞아 내 쪽으로 쓰러져 오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안심했다. 또한 그때 총을 맞은 것이 내가 아니었다는 것, 더 이상 그가 술에 취해 나를 괴롭히지 못할 것이라는 것, 내 아이들 역시 괴롭히지 못할 것이라는 것에 나는 정말 마음이 놓였다. 난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 좋은 엄마라면 남편이 자기에게 다 마신 맥주캔을 집어던질 때 벌써 애들과 짐을 쌌어야 했다. 아기가 오렌지 주스를 흘린다고 세게 때렸을 때, 또는 자기 아이가 “저 먼저 일어날게요.”라는 말을 안 한다고, 아니 못 한다고 식탁에 3시간이나 앉혀놓을 때, 그때 이미 애들과 함께 집을 떠났어야 했다. 좋은 엄마라면 이런 일을 묵인해선 안 되는 거였다. 하지만 난, 아까도 말했듯이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다시 새롭게 출발할 기회를 얻었다. 좋은 엄마, 아이들을 보호할 줄 아는 엄마,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내어줄 줄 아는 엄마가 될 기회를 얻은 것이다. 루이스는 내가 이미 그런 엄마라고, 항상 그래왔다고 하지만 난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제 새로운 기회가 내 앞에 놓여 있다. 나는 우리 어머니와는 충분한 시간을 얻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 내 아이들과는 정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싶다. --- p.440 |
주요 등장인물
칼리
주인공, 일곱 살의 여자아이. 네 살 이후 말을 잃었다. 술 마시고 들어오는 아버지가 무섭기만 하다. 벤 칼리의 오빠,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칼리를 보호하기위해 애쓴다. 안토니아 칼리와 벤의 어머니, 말을 잃은 딸과 폭력적인 남편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한다. 그리프 칼리와 벤의 아버지, 알코올 중독자이며 의처증 증세가 심하다. 언제나 가족에게 폭력을 일삼는다. 페트라 칼리의 친구, 칼리에 헌신적이다. 학교에서나 어디에서든지 칼리의 목소리를 대신 해준다. 마틴 페트라의 아버지, 대학교수이며, 칼리 가족의 이웃이다. 필다 페트라의 어머니 루이스 부보안관, 안토니아의 소꿉친구이며 첫사랑이다. 안토니아의 남편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애틋한 마음으로 안토니아를 지켜준다. |
세상의 모든 딸들과 부모들에게
가족의 의미와 책임을 일깨워주는 미스터리 가족소설 일곱 살 단짝친구 여자아이 둘이 어느 날 새벽 흔적도 없이 숲속으로 사라졌다. 잠옷을 입은 채 신발도 없이…. 누가, 왜, 이 아이들을 데려갔는가? 혼돈과 절망 속에 점점 모습을 드러내는 숨겨졌던 가족사의 비밀, 그날 윌로우 크릭 숲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8월의 어느 날 조용한 아침에 일어난 일이다. 새벽에 희미하게 반짝이던 불빛이 습한 아이오와의 대기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단짝 친구인 일곱 살 소녀 두 명이 갑자기 사라졌다. 두 가족이 이 소녀들을 찾아 나서면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일곱 살의 칼리 클라크는 선택적 함묵증으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상냥하고 예의바르며 똑똑한 학생이다. 선택적 함묵증(특정한 장소 또는 상황에서 말을 하지 못하는 병)은 칼리가 네 살 때, 만삭의 어머니와 술에 취한 아버지가 심하게 다투다가 칼리의 동생이 사산되었던 그날 저녁부터 시작 되었다. 칼리의 아버지는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을 뿐 아니라 알코올 중독자에 폭력적인 남편이다. 어머니 안토니아가 그런 남편과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이유는 칼리와 그의 자상한 오빠 벤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딸이 실종된 것에 남편이 연관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애써 부인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결혼생활을 유지한 대가로 딸의 목소리를 잃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페트라는 칼리의 가장 친한 친구이다. 칼리의 소울 메이트이고 칼리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친구이기도 하다. 페트라의 아버지 마틴 그레고리는 잃어버린 딸을 필사적으로 찾아 나선다. 마틴은 딸을 찾아 헤매면서 그 동안 자기가 얼마나 무심한 남편이었고, 이기적이고 한심한 아빠였는지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아동 성폭행과 가정에서의 자녀 학대를 다룬 미스터리 가족 소설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두 소녀를 찾기 시작하면서 전개되는 이 소설은 서서히 숨겨졌던 가족사의 비밀이 서서히 밝혀지면서 숨 막히는 반전과 반전을 거듭한다. 가족의 소중함, 부모의 책임과 의무를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2009년 데뷔작 중 최고의 소설로 평가 받은 책이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이며, 2009년 에드가 상 최종후보작에 올랐던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