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첫 시집을 내고 30년 뒤인 지난 2014년 둘째 시집을 냈다. 그러고 2019년이니 5년이란 햇수만 보면 시인으로서 이제 겨우 평균 궤도에 든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속사정은 그렇지 않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것저것에 얕게 간섭하는 습관이 시 쓰는 데도 그대로라는 게 확인되는 부끄러운 자리가 됐다. 편수는 되겠다 싶으나 막상 내놓으려니 ‘모양빠지는’ 것도 있어 여러 편을 버렸고, 발표하지 않은 날것 몇 편을 끼워보기도 했다. 그렇게 모은 60편을 나름대로 주제를 고려해 다섯 덩어리로 나누었다.
만나는 범위가 넓어진 만큼 고독은 깊어지지 않았다. 여유 없이 모나기만 하다가 혼자 지쳐버린 그런 표정은 될 수 없다고 우겨보는 나날이다.
2019년 11월 박덕규 씀
--- 「시인의 말」중에서
글 쓰는 사람 박덕규의 정체성은, 한마디로 말하면 ‘떠돌이’이다. 두 가지 차원에서 그러하다. 우선 현실 체제에서 박덕규는 이십여 년 전부터 세계 곳곳에서 자생하는 한국문학의 또 다른 현장들을 탐색해 왔다. 박덕규는 한국의 역사와 한국인의 삶이 확장되고 변주되는 그 다양성의 자리들에서 많은 한인 동포들과 외국인들을 만났고, 그들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성찰하고 재구성해 왔다. 한국에서 오래 문단 활동을 해온 현역 문인으로서, 또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다른 나라들에서 한국문학을 논하고 가르친 경험은 박덕규에게 한국의 현실과 문학에 대해 더 넓고 복합적인 시선을 갖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일찌감치 탈북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써온 것도, 분단문학의 역사적 소명감도 한 계기이겠지만, 북한을 떠나 한국에 정착하거나 중국 등을 떠돌아다니는 탈북자들의 삶에 대한 깊은 연민과 세계사적 차원의 시선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 체제에서도 박덕규는 떠돌이를 자처해 왔다. 그 행적은 다시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장르를 불문하는 전방위적 글쓰기를 해온 것이며, 다른 하나는 문학의 첨예한 전위에서부터 소탈한 대중성까지를 아우르고, 이른바 문단의 주류에서부터 비주류까지를 넘나들어 온 것이다. 박덕규는 시, 소설, 동시, 동화, 수필, 평론, 논문, 오페라 대본, 뮤지컬 대본, 시극, 문학/문화 콘텐츠 스토리텔링 등 문학과 관련된 글쓰기의 거의 모든 장르를 섭렵해 왔다.(최근 박덕규는 문학을 전파하는 유튜버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이 역시 문학의 형식과 매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의 떠돌이 기질이 발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덕규는 1980년대에 시의 미학이 현실의 전위적인 운동성이 될 수 있음을 피력한 동인지 『시운동』을 하재봉, 안재찬 등과 함께 창간했고, 그 창간호에 시를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현실 체제의 교란과 혁명을 추구하는 문학 체제가 구획해 놓은 내부의 경계들―‘문학의 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을 누구보다 부지런히 편력하고 가로질렀다.
_김수이(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 「해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