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트렁크에 가득 싣고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으로 달렸다. 계속되는 여행으로 파리에서 결국 슬럼프에 빠지고 말았다. 여행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버린 상황, 여행이 길어지면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닥치니 매우 극복하기 어려운 시련이었다.
여행 경비로 300달려를 환전하고 420달러를 차 렌트비로 주었다. 주어진 돈으로 여행을 계속하려면 많이 힘들 것이다. 개선문을 지나 에펠탑, 샹젤리제 거리…… 파리를 떠나 프랑스 남부 해안가를 돌 예정이다.
아, 곧 비가 올 거 같다. 제발 비는 안 왔음 한다. 기분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안 되니까. 광기에 휩씨일 것만 같은 나날들이다. 진저리치는 분위기. 말하기가 싫다. 누구도 만나기 싫다.
파리의 한국인 민박집에 놓여져 있던『인도에 두고 온 눈물』이라는 여행 책을 읽었다. 솔직히 그 책의 작가라는 사람은 사이코 땡중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싸구려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적어도 이 사람이 솔직하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나 같은 건 절대 흉내도 못 내게 솔직했다.
비가 퍼붓는 프랑스의 하늘. 비옷을 사야 하나? 아니면 우산? 아, 졸리다. 뭘까 이런 감정의 정체는. 혼자 있고 싶다. 내 안에 못 말릴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지금 내 모습을 거울로 보면 정말 가관이다. 부서지는 머리, 색깔도 천차만별에 피부는 얼룩덜룩하고……. 내 자신이 혐오스럽다. 이런 내 자신을 남들 앞에 보이기 싫은데, 난 지금 매우 노출되어 있다.
유스호스텔은 참 차갑다. 벽도 침대도 다 차갑다. 여행은 정말 점점 내게 지옥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목에 알 수 없는 피부병까지 났다. 자꾸 가렵고 빨갛게 올라오고. 이런 몰골로 파리를 본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개선문,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돋 7월 14일 파리혁명 기념일이 다가온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정말 갈 데까지 갔다. 세계여행 6개월 만에 말로만 듣던 여행 매너리즘에 빠지고 말았다. 남들이 들으면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하겠지만 정말 당시엔 심각했었다. 집에 가고 싶고, 한국이 그리워 한국 사람만 봐도 반가와 눈물이 나고, 게스트하우스에 처박혀 유일한 한국 책인 영어사전을 읽었다. 여행 전엔 내가 유럽에서 이렇게 되리라곤, 정말 상상도 해본 적이 없고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얻은 한 가지 교훈은 있다. 낯선 장소와 낯선 사람들로 인해 생긴 병은 결국 또 그들밖에 치료해 줄 수 없다는 거. 여행으로 얻은 우울증은 결국 여행으로 다시 치유가 되었다.
여행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것이다. 그래서 참 인생과 닮았다.
--- pp.310~311
인도를 세계 3대 최악의 도시 중 하나로 뽑는다는 말을 실감하는 하루다. 이집트의 카이로, 이란의 테헤란, 인도의 캘터타(이것을 4대 최악의 도시로 바꾸면 방글라데시의 다카도 포함됨). 여행을 많이 한 사람들의 일반적인견해인데 우리도 부정하지 않는다.
인도 차 '타타'를 몰고 잘 정비된 도로 위에서 차선도 지키지 않고 경적을 있는대로 울려가며 먼지와 가스를 내뿜으면서 차선은 무시되고 질서라곤 하나도 없는 길을 용케 빠져나가는 걸 보면 인도 택시 운전기사들은 전직이 서커스 단원 혹은 카레이서가 아니었난 싶다. 단 1분이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어, 옆에 차들이 지나갈 때면 몸은 자연스레 움츠러들게 되고 감탄사가 연발이 되어 나온다.
“아! 와! 엄마야!”
잘 달리다 갑자기 시동이 꺼졌는데 운전기사는 긴 막대기를 발 밑에서 꺼내더니 딱 멈추게 하고 앞으로 가 본네트를 '탁' 열더니 줄을 당겨 시동을 걸었다. 운전석으로 막 달려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사이드 미러도 없는 차로 잘도 달렸다. 시동을 켤 때마다 이런 식이다. 살아남는 게 다행이라고 할까? 참 재주도 좋다.
“그만 따라오세요”
인도의 도시에서는 사람들을 벗어나 조용히 명상하기란 꽤 어렵다. 어딜 가나 외국인은 관심의 대상이 된다. 캘커타에서 1m를 가는 동안 만나는 사람들은 수십 명은 족히 된다. 길거리를 꽉 들어찬 사람들과 따라오는 사람들, 멍하니 있는 사람들, 장사꾼들. 인도인들은 참으로 특이한 민족이다. 한번은 너무 화가 나 “꺼져!” 이렇게 심한 말을 해도 들은 척 만 척 아무 이유 없이 따라온다. 이런 인도인들의 질서 속 무질서를 지키는 혼란함이 우리가 인도를 좋아하는 첫 번째 이유다.
방콕에서 일본 친구가 인도 여행에 대비해 초코바처럼 생긴 과자를 준 적이 있다. 자기는 인도 여행 중에 몸무게가 5kg이나 빠졌다며 맛없는 인도 음식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도대체 그 맛었는 인도 음식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인도를 여행하면서 거부할 수 없는 인도 음식 때문에 매일 과식으로 우린 몸무게가 많이 늘었다. 지금도 어느 나라 음식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하면 중국은 특이한 음식으로, 인도는 맛있는 음식으로 꼽는다. 누가 인도 음식이 맛없다고 했는지 그 사람의 식성이 특이한 건지 우리가 특이한 건지.
특히 수데르 거리의 노점상이 파는 야채말이 롤은 하루 3끼가 아쉬울 정도로 맛있었다. 탄도리에 구운 닭고기인 탄도리 치킨, 난에 마살라를 찍어 먹는 탈리,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마셨던 변비에 좋다는 새콤달콤한 맛의 라시, 갖가지 콩이나 팥과 향을 섞어 끓여낸 달등. 카레말고도 너무나 맛있는 음식들이 즐비하다.
인도는 소를 숭배하는 힌두교의 영향으로 닭을 이용한 요리가 발달돼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도식 화덕인 탄도리를 이용한 탄도리 치킨으로 무굴제국 음식이다. 다 먹은 후 남은 양념에 짜파티를 먹으면 그 어떤 닭 요리보다 맛있다. 그들이 육식류 중 닭고기와 양고기를 먹는 종교적인 이유는 흰색은 순결의 의미기에 흰 고기만 먹는다고 한다. 골수 브라만들은 뿌리채소와 우유도 취하지 않는데, 채식주의자들은 동물이 죽으면 땅이 오염이 되므로 악령이 몸 안으로 들어온다고 행각하기 때문이다.
(…)
--- pp.218~219
우리는 대륙간 이동에 있어 무조건 육로를 고집하지 않고 제일 자연스럽고 편한 방법을 택했다.
아시아에서 터키까지는 육로로 이동했고, 유럽은 유로 라인(버스)과 렌터카로 이동했다. 넓은 아프리가와 중남미 대륙은 비행기와 버스로, 그리고 바다 위에 혼자 뚝 떨어진 오세아니아 대륙은 비행기로 간단하게 넘었으며, 러시아와 몽고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 이동했다.
이때 대륙 간을 손쉽게 연결해 주는 꿈의 티켓이 바로 원월드티켓(Oneworld ticket)이다. 세계 일주 항공권이라고도 불리는 이 티켓은 엄청난 항공료 분제와 대륙별 이동 문제를 한번에 해결해 준다. 한국에서 남미를 여행하려고 하면 항공료만 200만원이다. 그런데 이 원월드티켓은 250만원에 전 세계의 대륙들을 도시별로 구석구석 연결해 준다.
--- p.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