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자대학교 불문과를 나와, 서울대학교 불문과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한국외국어대학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번역한 책으로는 『여우와 아이』『돈이 머니? 화폐 이야기』『대안은 없다』 등이 있다.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이코노미 인사이트」 번역에도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매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은 아닌 숫자들, 그 숫자들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수학자들이 마치 보물단지라도 발견한 것처럼 기쁨의 탄성을 내지르며 찾아낸 그 유명한 정리들은 또 대체 어디서 기원한 것일까? - p12
아득히 먼 옛날, 우주가 막 탄생하던 0의 순간에 우주는 물질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체 그때 우주를 구성하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과학자들이 흔히 말하는 ‘정보information’였다. 무의 한복판에 자리한 순수 사유. 수학적 사유. 그러니 어쩌면 아인슈타인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각종 법칙과 거대한 상수들로 이뤄진 ‘신의 생각’을 찾아낼 수 있는 곳은 이 빅뱅이 일어나기 전 우주가 막 탄생하던 0의 시점인지 모른다. - p16
우주는 137억 5천만 년 전 느닷없이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갓 태어났을 때만 해도 우주는 손바닥 위에 얹어놓을 수 있을 만큼 몹시 작았다! 그렇다면 빅뱅의 순간에는 어떠했을까? 그때 우주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아주 미세했다. 먼지 한 톨보다 수십억 배나 더 작았다. 그러니 그런 작은 우주가 탄생하고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하기까지 이 태초의 미세한 입자 속에 오늘날의 우주를 구성하는 수십억 개의 별과 은하계를 세밀하게 계획한 어떤 ‘설계도’ 같은 것이 들어 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대체 어떻게 건축가가 설계도도 없이 20층짜리 빌딩을 무작정 지어 올린단 말인가? - p23
1992년 미국의 두 천체물리학자 조지 스무트George Smoot와 존 매더John Mather는 ‘코비COBE’ 위성의 도움을 받아, 빅뱅 38만 년 뒤 우주가 내뿜었던 태초의 빛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그 공로로 두 학자는 2006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태초의 빛이 찍힌 사진을 처음 본 조지 스무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이렇게 외쳤다. “흡사 신의 얼굴을 보는 것만 같군!” - p24
물리적 현실계는 수학적 현실계와는 결코 별개로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해두고 싶다. 다시 말해 수는 물질에 선행한다. 물리적인 조건에 영향을 받지 않는 수학이 물리법칙들을 형성하였고, 극도로 정밀한 계획에 따라 물질이 출현하고 진화함으로써 갓 탄생한 현실세계에 크기와 형태와 방향을 부여하도록 만들었다. 그 때문에 우리는 π외에도, 오일러 상수, 르장드르 상수, 피타고라스 상수 등 수학적 세계에 속하는 모든 거대상수들을 빅뱅의 순간에서 발견할 수 있으리라 추정한다. 말하자면 태초에 수가 있었던 것이다. -p34
π는 우연을 ‘모방’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연에 무릎을 꿇는 법은 없다. 이 수십억 개의 숫자들의 존재이유는 우리의 인식능력을 벗어난다. 논리학자 그레고리 카이틴도 자기 컴퓨터로 직접 π값을 계산하다가 이런 기막힌 사실을 깨닫고 몹시 당황했다. 그는 모든 우주에서 벌어지는 우연이 “π의 소수점 이하의 수들이 그런 것처럼 실제로는 ‘유사 우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π는 우주의 모습이 반영된 일종의 거울인 셈이다. -p99
어찌하여 모든 양성자, 전자 등은 이토록이나 완벽하게 ‘동일’한 것일까?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는 완벽하게 똑같은 행성, 별, 구름, 물방울, 눈꽃송이, 밀 이삭, 장미나무 가시의 짝은 절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자연은 완전히 똑같은 양성자, 전자, 광자 등을 ‘제조’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동일성’의 오묘한 신비를 풀 열쇠는 대체 소립자계 그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 p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