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 이렇게 편지 쓰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아요. 갑자기 존댓말을 쓰니까 이상해져요. 아직도 철이 안 들었나 보죠.
--- p.17, 「소정의 편지」 중에서
너를 보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나 생사 간 소식 없는 자식, 생사 기로에 있는 자식 생각할 때, 엄마가 어찌 오열 없이 너를 대할 것이냐. 너 또한 목석이 아닌 이상 쓰린 가슴을 안고 몇 시간을 고통하리니, 첫째 너의 건강 해칠까 염려되고, 엄마도 근력 수습하기가 심히 괴롭구나.
--- p.37, 「할머니의 편지」 중에서
차창 사이로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까 옛날 우리 사 남매가 어리광을 부리던 생각이 났어요. 아버지, 자꾸만 보고 싶어요. 그래서 저는 틈나면 옛날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들을 많이 봅니다.
--- p.40, 「세민의 편지」 중에서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남에게 모멸이나 당하지 않는지. 자주 아프던 당신이기에 건강은 어떤지. 아무 할 일 없이 책이나 보고 옥방에 뒹굴고 있는 처지로, 언제나 당신의 안부가 첫째로 생각되오. 집에 있을 때도 이렇게 지냈다면 세상에 다시없을 애처가일 게 분명하오. 당신, 살기가 얼마나 고되오?
--- pp.43~44, 「아버지의 편지」 중에서
정말 부부란 무엇인지요. 50을 바라보면서 새삼스레 모나고 둥근 것을 다시 느낍니다. 나를 절벽에다 밀어 던진 당신에게 미운 마음이 들다가도 어느새 깨끗이 가시고, 오직 아이들과 당신을 위해 헌신하게 됩니다. 그러다 또 문득문득 인생이 무엇인가 하는 회의를 갖게도 됩니다. 나를 위해 헌신해 온 당신도 아닌데,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늘 먼저 하면서, 나를 괴롭게도 한 당신인데 말이지요.
--- p.53, 「엄마의 편지」 중에서
어머니 일을 잘 돕기를 당부한다. 콩나물, 두부 광주리를 가지고 다니는 심부름이라도 컸다고 남에게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고, 어머니를 돕는 것에 체면을 차리면 곤란. 남들은 그것을 볼 때 너의 사람됨을 우러러본단다.
--- p.80, 「아버지의 편지」 중에서
그저께 거의 반년이 되어 당신을 만나니 할 말이 태산처럼 많을 줄 알았으나,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가슴이 막혀 어려웠소. 또 소정이, 소영이, 영민이, 한시도 잊지 못하는 샛별처럼 영롱한 나의 자식들의 귀여운 눈동자를 보니 눈에 안개가 서리고 쏟아지려는 눈물을 감당하기 힘들었소.
--- p.85, 「아버지의 편지」 중에서
비록 아버지는 전주에 계시고 저희는 서울에 있지만, 언제나 서로서로 생각하니 떨어져 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우리는 항상 같이 있어요, 언제나. 그리고 이 편지가 아버지께 도착할 때쯤이 「그 이튿날 정도가 아버지의 생신날이 될 거예요. 이 글이 훌륭한 생신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 p.94, 「소영의 편지」 중에서
추운 겨울이더라도 희망찬 봄을 생각하며 살아야겠지요. 지금 저는 언제나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답니다. 그러니 아버지께서는 저희 걱정을 하지 마셔요. 저희는 추운 겨울 속에서도 소나무와 같이 잘 자라니까요.
--- pp.107~108, 「영민의 편지」 중에서
네 화분의 소생을 위하여 “아베 마리아” 세 번을 바친다.
--- p.144, 「아버지의 편」지 중에서
간혹 끝없이 늘어서 있는 가로수들을 떠올리며, 이런 생각을 해 보곤 합니다. ‘산다고 하는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가로수의 길’이 아닌가 하는. 열일곱 살의 겨울밤이지만 그동안 살아온 발자국들의 모양이 어떤지, 한번 뒤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밤입니다.
--- p.173, 「소영의 편지」 중에서
제 학은 잘 있는지요? 터미널에 내려서 오징어랑 초코볼 사고, 엄마가 공중전화 걸러 가신 사이에 초콜릿 껍질로 접은 것이랍니다. 천 마리를 접으면 바라는 일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제가 접은 것은 아주 큰 거니까, 그리고 특별한 거니까 천 마리의 값어치가 있을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바라는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꼭.
--- p.186, 「소영의 편지」 중에서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고 하는 말이, 이 영어 생활에서 더욱 실감이 난다. 한때는 세월이 지겨워서 고생이더니, 이제는 너무나 빠른 세월이 도리어 나의 뼈를 깎고 살을 저미는 아픔마저 느끼게 한다. 그중에서 가장 참기 힘든 게, 한창 자라는 너희들과 함께하는 재미를 앗기고 있는 것이란다. 정말 이것이 영어살이에서 오는 고통의 본질인가 보다.
--- p.224, 「아버지의 편지」 중에서
스무날 동안 세 학우의 심각한 부상, 그것을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없었습니다. 함께 공부할 수 없는 세 학우, 저희는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수업 거부’를 합니다
--- p.254, 「소영의 편지」 중에서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세월이 약이란 속담처럼, 참으로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제 약이 되기도 하는군요. 곳곳에서 ‘양심수 전원 석방’이란 구호가 하늘 높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젊은 청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 pp.278~279, 「엄마의 편지」 중에서
이제 이 영어살이도 정녕 얼마 남지 않은가 보오.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자들은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그럴수록 자신들의 멸망을 재촉할 뿐이오.
“그날은 갑자기 올 것이므로 항상 깨어 있으라.” 하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세상에 나가서 일할 때를 위하여 심신을 갖추고 있소. 그리 머지않은 날에 당신과 나의 사 남매에게 돌아갈 것이오.
--- p.301, 「아버지의 편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