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한국사"가 통사 형식임에도 시대구분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은 것은 특정한 역사발전 법칙을 채택할 경우 전문적인 분석과 설명을 필요로 하므로 지나치게 학문적일 수 있으리라는 판단때문이었다. 전체적인 편집방침과 조화하기 어려운 면도 함께 고려했다.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는 위리 역사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책이다. 내용 중 설명이 더 필요하거나, 정리가 필요한 경우를 위해 '보충설명'을 두었고 꼭지마다 '쉬어가기'를 배치하여 본문에서 미처 취급하지 못한 부분을 흥미있게 담고자 했다. 또한 여백 사이사이에 한 컷짜리 만화를 넣었는데, 전체적으로 지루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하거나 이해하기 다소 어려운 대목을 만화로 형상화해서 읽는 이의 빠른 이해를 돕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 pp. 머리글 중에서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가 통사 형식임에도 시대구분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은 것은 특정한 역사발전 법칙을 채택할 경우 전문적인 분석과 설명을 필요로 하므로 지나치게 학문적일 수 있으리라는 판단때문이었다. 전체적인 편집방침과 조화하기 어려운 면도 함께 고려했다.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는 위리 역사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책이다. 내용 중 설명이 더 필요하거나, 정리가 필요한 경우를 위해 '보충설명'을 두었고 꼭지마다 '쉬어가기'를 배치하여 본문에서 미처 취급하지 못한 부분을 흥미있게 담고자 했다. 또한 여백 사이사이에 한 컷짜리 만화를 넣었는데, 전체적으로 지루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하거나 이해하기 다소 어려운 대목을 만화로 형상화해서 읽는 이의 빠른 이해를 돕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 pp. 머리글 중에서
- 우륵과 가야금 -
우륵과 가야금에 대한 내용은 「삼국사기」에 단편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가야의 가실왕은 열두 달을 음률로 상징하는 12현금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어찌 당나라의 노래만 부를 수 있느냐.'며 악사인 우륵에게 명령해 12곡을 창작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가야가 혼란스러워지자 우륵은 악기를 가지고 신라 진흥왕에게 귀순했다. 이후 그 악기의 이름을 가야에서 가지고 왔다고 하여 가야금이라 했다. 진흥왕은 우륵을 지금의 충주에 정착시키고 계고, 법지, 만덕 세 사람으로 하여금 우륵에게서 음악을 배우도록 했다. 우륵은 그들의 재능을 참작하여 계고에게는 가야금을, 법지에게는 노래를, 그리고 만덕에게는 춤을 가르쳤다.
세 사람이 배우고 나서 우륵이 만든 12곡을 줄여 다섯 곡으로 만들었다. 진흥왕이 그 곡을 듣고 크게 기뻐해 이를 신라의 궁중 음악으로 삼았다고 한다. 결국 우륵은 조국인 가야가 혼란할 때 적대국인 신라에 귀순했으니 조국을 배신한 셈이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신라의 궁중 음악으로 채택되었으니 오히려 예술적으로는 신라를 정복했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우륵이 귀순 후 정착했던 충주에는 그가 가야금을 연주했다는 데서 유래한 탄금대가 있고, 탄금대에는 그를 추모하는 비가 세워져 있다. 또한 그가 배신했던 조국, 즉 대가야의 중심지였던 고령에도 가야금 모양으로 만든 우륵을 기념하는 탑이 세워져 있다.
--- p.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