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의 미군 부대 관련 활동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박완서(朴婉緖, 1931-2011)와의 만남 때문이다. 전쟁으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 가족의 생계를 위해 PX 초상화부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점원이 된 박완서는, 훗날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나목』(1970)이라는 장편소설을 써서 소설가가 되었다. 박수근은 전업화가가 되기 전, 미군 부대 PX에서 초상화가로 일하면서 박완서를 만났다. 박완서는 ‘다른 환쟁이들과는 다른’ 박수근에게 관심을 가졌다. 전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북한에 고향을 두었고, 가족의 생계 때문에 도무지 자신들과 어울리지 않는 공간에 내몰렸다는 공통점이 두 사람을 가깝게 만들었을 것이다. 명동의 PX는 두 예술가의 생존을 지지하는 물적 토대가 되었을 뿐 아니라,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박완서가 훗날 박수근의 이야기로 소설가가 되고 불운한 화가였던 박수근이 소설을 통해 대중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는 특별한 인연을 만들어주었다.
--- p.15, 「기획의 글, 박수근과 나목」 김예진(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중에서
박수근이 밀레에게 영감을 받은 것은 양식적인 측면이 아니라 일상적인 가사노동을 다룬 주제적인 측면이었다. 19세기 중반의 프랑스 농가는 이미 기계를 사용하는 등 근대화되어가고 있었지만 밀레는 우유를 짜거나 씨를 뿌리거나 가축을 돌보는 등 수백 년 동안 변함없이 내려오던 농민들의 일상적 노동을 그렸다. 특히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땅을 향해 허리를 굽히고 일을 하거나 이삭을 줍는 자세는 허리를 펴고 살 수 없는 농민들의 숙명적인 노동을 상징한다. 밀레의 농민들은 근대화와 무관하며, 노동을 자연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종교적인 엄숙함에 싸여 있다.
--- p.66, 「박수근과 밀레」 김영나(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 중에서
《제10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출품했던 〈노인〉이 단독의 노인상이라면,
이 작품에서는 아이를 넣고 배경에 담소를 나누는 인물을 추가했다. 평화스런 리듬이 흐르는 일상 공간 속에 고독한 노인을 통해 심리적 긴장감을 부여하고 있다. 이 작품의 진가를 한눈에 알아본 사람은 동료 화가 김병기(金秉騏, 1916- )였다. 그는 『사상계』 12월호가 선정한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주목받지 못한 우수작으로 이 작품을 선정했는데 “가장 나이브하고 풍토적인 특성을 지닌 작품, 말하자면 작가 자신의 눈(眼)이 보인다”20고 했다.
--- p.135, 「박수근의 애린 정신: 주요 전람회와 출품작」 서성록(안동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중에서
박수근이 살아간 1950-1960년대의 창신동은 판잣집과 한옥, 골목과 시장, 작은 공장들과 창녀촌이 뒤섞인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였다. 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며칠이 멀다 하고 벌어지는 사건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결코 행복하다고만은 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박수근의 창신동 시대 그림들 속 인물들은 결코 어둠에 침닉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미래로부터 다가오는 빛을 기다리는 듯한 표정들을 하고 있다.
이런 창신동 시대의 명작들 가운데 필자의 시선을 특히 더 사로잡는 것은 이 도록에 실린 작품들 가운데 〈모자(母子)〉(1960년대 전반), 〈할아버지와 손자〉(1964), 〈시장의 여인들〉(1962), 〈앉아있는 여인〉(1961), 〈독서〉(1950년대 후반) 같은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창신동 시대로 상징되는 시대적 아픔 속에서도 질기면서도 따사로운 가족적 유대를 유지하며 삶의 생명스러움을 간직한 어머니와 아들, 할아버지와 손자 같은 인물들을 보여준다. 그들은 둘이면서도 하나인, 둥그스름한 원환적 형체를 이루며 어떤 외부의 시련이나 폭력 같은 것에 의해 침습되지 않는 공동체를 ‘끌어안고’ 있다.
--- p.209, 「박수근의 창신동 시대와 ‘성스러운’ 그림들」 방민호(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중에서
밀러 여사가 박수근의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은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던 『디자이너스 웨스트(Designers West)』에 기고한 글에 잘 나타나 있다. 박수근의 미국 개인전 준비를 위한 사전 홍보 목적으로 작성된 듯한 이 글에서 밀러 여사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이름과 달리 ‘분쟁과 재난의 나라’였던 굴곡진 역사 속에서도 불굴의 용기로 자신의 문화를 보존하려는 의지를 지닌 한국의 평온한 심리적 특성이 소박하고 절제된 화면 구성과 평범하게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인물들에 반영되어 있다고 설명한 뒤, 거친 창호지나 화강암 조각의 질감을 연상시키는 그의 작품에서 멕시코의 화가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와의 유사성을 함께 찾아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박수근의 작품에서 멕시코 벽화와의 유사성을 언급한 인물은 밀러 여사만이 아니다.
--- p.280, 「박수근, 반도화랑 그리고 아시아재단」 정무정(덕성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