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다시 한번 진지한 말투로 또박또박 말했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만나게 해 주는 창구. 제가 바로 사자 츠나구입니다.”
주위의 모든 소리를, 눈앞의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마저 남김없이 차단하는 듯한 소년의 명징한 목소리를, 나는 멍하니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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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나구의 존재는 분명 일반적이지 않고 쉽게 믿기도 어렵다. 내가 고생 끝에 겨우 찾아낸 이 우연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행운일 것이다. 물론 그것이 나와 같은 일반인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겠지만. 그녀가 몸을 담고 있던 연예계나 정·재계에서 츠나구의 존재는 분명 유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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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날 생각이 있었다면 벌써 왔겠지. 히라짱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방금 말한 것처럼 내 주변에서는 츠나구에 관한 이야기가 꽤 유명했어. 츠나구의 연락처도 알고 있었고. 알고 있지만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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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 줄 모른다, 가지고 있어도 쓸모없는 돈이다, 그런 말을 듣고 상처를 받았지만 돈을 쓰는 방법은 더더욱 떠오르지 않았다. 화려한 옷과 명품, 유흥이나 여행도 모두 두려웠다. 뛰어들 수 없었다. 미래를 위해 저금한다고 생각하면 될지도 모르지만 그조차 그려지지 않았다. 내가 가정을 꾸리거나 일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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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츠나구를 통해 네 아버지와 만났단다. 츠나구가 얼마나 오래전부터 존재했는지는 나도 우연히 알게 되었고. 네 아버지를 다시 만났을 때 언제 이런 걸 찾아냈냐며 펄쩍 뛰었지. 본인이 모르는 곳에서 다른 가족이 마음대로 행동하는 걸 여전히 참을 수 없어 하더구나. 딱히 수상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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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눈감는 순간의 모습과 장례식을 치른 것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사무소와 집의 일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가족 모두가 어머니가 없는 새로운 환경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는데, 이렇게 만나 버리면 역시 어머니는 어딘가에서 몰래 살아계셨던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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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노의 육체가 사라지는 게 싫었고 타 버리는 걸 믿을 수 없었다. 그냥 그대로 두었으면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관 속의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주무시는 듯 두 눈을 감고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피부색이나 눈꺼풀의 주름이 살아있을 때와는 어딘가 달랐다. 할아버지가 너무 딱딱하고 차가워 깜짝 놀랐다. 그제야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 없다고 마음을 접을 수 있었다. 미소노는 아직 살아있는 것이 아닐까? 나를 체념하게 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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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끊임없이 사과하며 서서히 날이 밝아오는 호텔의 입구 쪽을 절망적으로 바라보았다. 겨울밤일지라도 태양은 고요하게, 어김없이 떠오른다. 차가운 공기를 녹이는 아침이 찾아온다. 눈물 젖은 눈이 빛으로 따가웠다. 미소노와의 이별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는 내가 한 짓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죄로 여기지 않았던 미소노가, 적어도 이제는 나를 잊고 편한 곳으로 갈 수 있도록 염치없이 빌고 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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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펼쳐진 사각형 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종이를 끌어안고 울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호텔 방에서 기라리와 헤어질 때보다, 이 방에서 기라리가 떠났을 때보다 지금 설명할 수 없는 상실감이 온몸으로 덮쳐왔다. 내 앞에서 사라진 존재의 무게가 그 여느 때보다 더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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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부터 아키야마 가문은 그런 집안이라고 듣고 자랐다. 할머니의 친정은 유서 깊은, 마을에서 영향력이 있는 가문으로 점술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오랜 세월 단골인 집안도 많고, 이름을 대면 깜짝 놀랄 만한 학자나 예술가, 연예인도 많다고 들었다. 그렇게 부를 축적한 유복한 가문은 부모님을 잃은 아유미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지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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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가 바로 사자 츠나구입니다. 츠나구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의뢰를 받습니다. 물리적으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세상을 떠나 버린 사람 누구와 만나고 싶은지 의뢰를 받고 돌아가 대상이 된 망자와 교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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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발견자는 할머니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몹시 우울해하는 아버지가 걱정돼, 할머니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아들네 집에 자주 방문했다. 그날도 나물 반찬을 많이 만들었다며 나눠 주러 왔다고 했다. 현관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런 응답이 없어서 그냥 돌아가려다가 무심결에 창문으로 거실을 보았단다. 그리고 거실에 포개져 쓰러져 있는 아들 부부를 본 할머니는 마당에 놓인 대나무 빗자루로 창문을 깼다. 할머니도 그 순간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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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으로 만날 약속을 잡은 두 건의 면회는 같은 만월의 날, 한꺼번에 하게 됐다. 서로 우연히라도 마주치지 않도록 면회하는 방의 층수와 약속 시간을 겹치지 않게 잡았다. 무엇보다 보름달이 뜨는 날은 한 달에 한 번뿐이니, 이렇게 겹치는 의뢰도 많다고 들었다. 할머니는 내게 처음이지만 익숙해지기 위해 두 건을 동시에 해 보는 것도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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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난 누군가와 만남으로써 인생을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마치 점술에 매달리듯 망자와의 만남을 통해 생활에 활력을 얻고 걱정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뻔뻔한 얼굴로 망자의 존재를 소비하고 경시하는 태도가 아닐까? 그런 사고방식은 정말 말도 안 되게 교만한 것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