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관에 거구를 쓰러뜨리고 모래판에서 포효하던 강호동을 본 것이 상당히 오래 전의 일인 것 같다, 그때 몇 번 “호동, 호동!” 하며 호동이를 응원하는 말을 듣고 우리 아이가 “아빠, 포동 왕자가 씨름해?” 라고 물어서 한바탕 웃은 일이 있다. 우리 아이는 당시 ‘ㅎ’과 ‘ㅍ’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호동이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귀가 따갑게 써 가면서 사람을 웃기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놀라서 “아니 저 호동이가 그 호동이야?” 라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것이다.
강호동이 씨름을 배워서 씨름판에 있으면 씨름 선수 강호동이고, 우스개를 잘해서 방송에 나와 여러 사람을 즐겁게 하면 연예인 강호동이다. 요즘 강호동을 씨름 선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씨름하던 강호동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만 방송인으로서 방송 활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파생법의 원리가 바로 이와 같다, 한 낱말이 새롭게 모자를 쓰거나 옷을 입거나 신발을 신으면 과거의 낱말과는 다른 일을 하게 된다. 의미나 용도가 달라진다는 말이다. 이렇게 달라진 낱말을 파생어라고 하고, 낱말이 달라지게 만드는 기능을 하는 모자, 옷, 신발을 접사라고 한다. 낱말이 접사와 결합하여 의미나 용도가 달라지더라도 원래 그 낱말이 가지고 있던 뜻은 그대로 유지된다. 그런 점에서 낱말을 변형시키는 기능을 할 뿐이다. 합성어로 결합하는 두 실질 형태소가 병렬 합성이든 주종 합성이든 융합 합성이든 형태소끼리 의미를 공유하는 것과 달리, 파생어에서는 어근의 의미만 살리고 접사는 그 의미를 조금 바꾸는 기능밖에 하지 않는다.
--- 9일_호동이는 씨름을 하나, 방송을 하나?
고스톱이라는 오락을 해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오락을 하려면 먼저 족보를 읊어야(?)한다. 3.4.5로 날 것인지, 3.5.7로 날 것인지 결정해야 하고, 먹고 쌌을(?) 때에 어떻게 할 것인지, 광박.피박의 조건, 열 끝짜리로 3점을 났을 때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판에 있는 화투짝을 모조리 슬어버렸을 때와 자기가 방금 낸 것을 다시 쓸어 왔을 때의 처리, 흔들었을 때에 몇 배로 점수를 계산할 것인지 등등 아주 많은 규칙이 이 족보를 읊으면서 결정되고 그에 따라서 판이 시작되는 것이다. 판을 벌일 때마다 족보를 읊는 이유는 규칙이나 지역이나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족보라는 것이 이런 오락에 쓰이는 낱말이 아닌데 하필 오락을 하면서 족보라는 말을 거기에 붙였는지 궁금하다. 어쩌면 오락에 참여하는 사람을 모두 일가로 보고 모두 우러러 받들어야 할 족보와 오락의 규칙을 동렬에 놓은 결과일 것이다.
말을 만드는 데 참여하는 낱말에도 족보가 있다. 그 낱말이 어느 무리에 속하는지, 같은 무리 중에서도 어떤 파에 속하는지, 다른 낱말과 친인척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 등등을 분간할 수 있는 내용을 적은 족보가 있고, 그것이 어떤 규칙에 따라서 말을 만들어 내는지 말해주는 족보가 있다. 전자의 족보를 품사라고 하고 후자의 족보를 문법이라고 한다. 이제부터는 이제까지 배운 낱말을 품사 족보와 문법 족보에 따라서 말로 엮어 나가는 방법을 배워 보자.
--- 제13.14일_낱말에도 족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