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를 싫어하던 내가 바퀴벌레 연구를 시작하고, 35년 만에 일본산 바퀴벌레 신종을 발표하기까지의 여정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들의 진면목을 추적해가는 과정을 담았다. 사람들에게 미운털이 박힌 바퀴벌레지만, 그 참모습을 알게 되면 바라보는 시선도 확연히 달라진다. 사랑스러운 느낌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체 모를 두려움은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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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곤충관 관람객의 이 질문에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 뜸을 들였다. 바퀴벌레 강연회나 전시 때도 그렇고 바퀴벌레 취재에 응할 때도 많이 물어오는 질문인데 그날은 유달리 고민스러웠다. 만약 바퀴벌레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람이 ‘이토록 근사한 생물을 왜 다들 싫어하는 거죠?’라고 물었다면 ‘그러게요, 왜 그럴까요’라고 동의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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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는 생태계에서 ‘분해자’ 역할을 맡고 있다. 잡식성이라 다양하게 섭취하고 분해한다. 낙엽, 과일, 동물의 배설물, 균류 등등. ‘오오바퀴’라는 종은 썩은 나무를 먹고 생활함으로써 나무가 흙으로 돌아가는 데 일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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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를 설명할 때 “바퀴벌레는 곤충인가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바퀴벌레가 이래저래 공포의 대상이자 정체 모를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진실을 밝히자면 사슴벌레, 나비, 개미, 무당벌레 등과 다를 바 없는 곤충이다. 몸은 머리·가슴·배 세 부위로 구성되고 다리가 6개, 날개는 4장이다. 다리는 모두 가슴에서 뻗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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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곤충이 좋았어요?”
곤충관에 근무한다고 하면 대다수 사람이 이렇게 되묻는다. 솔직히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겠다. 철들 무렵부터 생물이 좋아 곤충 채집에만 매달렸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쉬는 시간만 되면 교정에 우르르 몰려나가 장지뱀, 사마귀, 메뚜기 등 여러 생물을 잡아다 관찰했다. 어린 내게 가장 즐거운 일이었다. 곤충 덕에 목숨을 건졌다든가 뭐 그런 결정적인 계기가 있던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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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바퀴벌레가 무진장 싫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바퀴벌레가 어떤 생물인지도 모르고, 궁금해하지도 않고, 알려고 찾아보지도 않고 거부감만 가지고 있었다.
‘바퀴벌레 = 불쾌한 존재!’
이 공식에 함몰돼 무조건 반사적으로 싫어했다. 그러나 곤충관에서 먹바퀴가 귀엽게 보인 순간, 굳건했던 내 고정관념이 깨졌다. 먹이를 주면 허겁지겁 몰려오는 모습은 사랑스럽다. 더듬이를 갸웃거리며 애교도 부린다. 찬찬히 보고 있으면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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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는 종별로 냄새도 상이하다. 이질바퀴는 좋은 술 냄새가 나면서 코를 찌르는 짐승 냄새도 난다. 먹바퀴는 기름 냄새처럼 스멀스멀 올라오는 냄새가 난다. 집 안의 특정 구역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면 바퀴벌레가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방어 목적 외에도 냄새를 뿜는다. 배설물에서도 독특한 냄새가 나는데, 사육하다 보면 이 냄새를 분간할 능력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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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가스카르바퀴는 매일 꾸준히 만지면 소리를 내지 않는다. 손길에 익숙해진 건지, 소리를 내봤자 의미 없다고 느낀 건지 아니면 포기한 건지도 모른다. 이유가 뭐든 바퀴벌레가 연약해지므로 지나치게 자주 만져서는 안 된다. 울음소리가 궁금해도 과도한 접촉에 주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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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구니섬에서 수수께끼 루리바퀴를 발견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2년 반. 이렇게 벅차오를 일이 또 있을까. 다사다난했지만 포기하지 않아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그날은 늦은 밤까지 신종 바퀴벌레의 사진을 안주 삼아 축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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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은 원래 매력덩어리지만 그래도 의식하지 않으면 시선이 가지 않는다. 곤충의 흥미로운 생태, 아름다운 생김새, 인간 사회와의 깊은 연결. 이 모든 걸 알리는 오작교 역할을 곤충관 직원이 한다. 생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쌓아온 지식을 활용해 곤충의 매력을 관람객들에게 전할 기회이다.
“생물은 대단한 거였네요, 재밌어요!”
관람객의 한 마디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보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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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묘한 인연으로 분류학 연구와 인연을 맺었다. 연구자가 되고 싶다는 목표도 없었고, 학구적인 지위에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바퀴벌레에 매료된 ‘바퀴벌레스트’로서 더 깊이 탐구하고 싶다. 바퀴벌레의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세상에 남기고 싶다. 이 일이 그들을 지키는 길로 이어진다면 보람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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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구글 지도를 켜놓고 미야코섬과 눈싸움하면서 ‘여기 숲이 있네’, ‘여기는 …없겠지’라며 상상하는 날들이 계속됐다. 덕분에 미야코섬의 숲 위치에 꽤 빠삭해졌다. 다음에 방문하면 둘러볼 지점에 표시해두었다. 채집에는 실패했지만 그렇다고 없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내가 장소를 잘못 짚었거나 애초에 서식하는 개체 수가 적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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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를 싫어했지만 이리오모테섬에서 바퀴벌레의 매력에 눈을 뜨고 전시를 기획했다. 더 나아가 연구를 시작하고 책 출간까지 이르렀다. 돌아보면 꽤 독특한 길을 걸었다. 어린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미래의 모습이 ‘바퀴벌레스트’라는 걸 알게 된다면 꽤나 놀라지 않을까?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