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관 위로 굴러 떨어지던 핏빛 같은 흙, 그 속에 섞이던 나무 뿌리의 허연 살, 또 사람들, 목소리, 어느 카페 앞에서 기다리던 일, 끊임없이 도는 엔진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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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선의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러한 턱없는 확실성을 받아들일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어쨌든 그 확실성에 근거를 제공한 판결과, 판결의 언도가 내린 순간부터의 가차없는 전개과정과의 사이에는 어처구니없는 불균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판결문은 열일곱 시가 아니라 스무 시에 낭독되었다는 사실, 그 판결문이 전혀 다를 수도 있었으리라는 사실, 그것이 속옷을 갈아입는 인간들에 의하여 결정되었다는 사실, 그것이 프랑스 국민(혹은 독일 국민, 중국 국민)의 이름으로라는 지극히 모호한 관념에 의거하여 언도되었다는 사실, 그러한 모든 것은 그같은 결정에서 그 진지성을 많이 깎아내는 것이라고 내게는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선고가 내려진 순간부터 그 결과는, 내가 몸뚱이를 비벼대고 있던 그 벽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확실하고 준엄하게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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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창문을 닫았고, 방안으로 돌아오다가 거울속에 알코올램프와 빵조각이 나란히 놓여있는 테이블 한 끝이 비쳐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나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어머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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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 흥분했다. 나는 어러 달 전부터 그 벽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세상에서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그 누구에 대해서도 나는 그보다 더 잘 알지는 못할 정도였다. 오래 전에 나는 거기에서 하나의 얼굴을 찾아보려 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얼굴은 태양의 빛과 욕정의 불꽃을 담은 것이었다. 그것은 마리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찾으려 했었으나 헛일이었다. 이제는 그것도 지나간 일이다. 어쨌든 나는 그 땀어린 돌로부터 솟아나는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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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온몸이 긴장하여 손으로 피스톨을 힘있게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나는 권총 자루의 매끈한 배를 만졌다.그리하여 짤막하고도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 버렸다. 나는 한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던 바닷가의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그 굳어진 몸뚱이에 다시 네방을 쏘았다. 총탄은 깊이, 보이지도 않게 들어 박혔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번의 짧은 노크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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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주고 희망을 가시게 해 준 것처럼,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세계가 나와 닮아 마침내는 형제 같음을 느끼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기 위해서,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암, 내가 사형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써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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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루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그날과 똑같이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핏대가 한꺼번의 피부 밑에서 지끈거렸다. 그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옮겨본댔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걸음, 다만 한걸음 앞으로 나섰던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 사람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고 단도를 뽑아서 태양빛을 비추며 나에게로 겨누었다. 비칭 강철 위에서 반사하자, 번쩍거리는 길쭉한 칼날이 되어 나의 이마를 쑤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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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거기에는 다만 햇볕과 침묵, 그리고 졸졸 흐르는 샘물소리와, 파리의 세 가지 음정뿐이었다. 이윽고 레몽이 포켓의 피스톨에 손을 대었으나 상대편은 움직이지 않았고, 둘은 여전히 서로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피리를 불고 있는 녀석의 발가락들 사이가 몹시 벌어진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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