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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즐거워 견딜 수 없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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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즐거워 견딜 수 없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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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0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28*205*20mm
ISBN13 9788966551668
ISBN10 8966551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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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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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친구들과 늦도록 쏘다니다
슬며시 대문 열고 들어서면
안방 깊은 곳에서 들려오던
어머니의 목소리

얘야, 동생 안 들어왔다
잠그지 말고 지그려 놓아라

어머니의 그 목소리를
오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듣는다

반 아이들에게
어제 느낀 서운함을 오늘도 느낄 때
친구가 술기운에 못 이겨
되지도 않는 말로 몰아세웠을 때
불현듯 아내가 먼 사람처럼 느껴지고
세상이 지겹도록 미워졌을 때
그럴 때마다 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

얘야, 잠그지 말고 지그려 놓아라

내가 그럭저럭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해준
어머니의 목소리를
우리 집 아이들한테 똑같이 전해주고 싶다

얘들아, 잠그지 말고 지그려 놓아라

그나저나 그때의 젊은 어머니는
내가 들어오는 줄을 어떻게 아셨을까
---「지그린다는 것」중에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하면
앞으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위로도 오르지 못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지만

신호등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
도로가 평등하고
등대가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
바다가 순하며
북극성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
별자리가 아름답다


아내의 몸에 찾아온 병이 제자리를 잘 지키셔서
집안이 평화롭다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경의와 찬사를 보낸다
무엇보다도 그대들이 빛난다고
그대들이 있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어제 공을 칠 때
제자리를 잘 지켜 귀중한 포인트를 얻었다
내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제자리암」중에서

스무 해도 넘었던가
한글 해득도 못 하고 고등학교에 온
애들 서넛을 불러 한글을 가르쳤다
글자를 익히는 것도 때가 있는 것인지
도무지 진전이라고는 없어
전날 배운 가나다라를
다음날 또 읽지 못했다 그중
멀쑥하니 키 크고 사람 좋게 웃던 익환이
평소 차비 계산은 틀리지 않았고
집으로 가는 옥산행 시내버스를 잘만 타고 다녔다
옥산을 어찌 읽고 타느냐 물었더니
그냥 모양으로 알아요 한다

세월이 한참 지나
지금은 마흔쯤 됐을 익환이
여전히 멀쑥하니 키 크고
사람 좋게 웃을 것인데
이제 모양으로 읽는 실력은 도가 터
그의 눈에 모양으로 읽히지 않는 것들은
세상에 하나도 없을 것이다
돈 계산도 잘할 것이고 살림도 잘할 것이고
특히 글만 잘 쓰는 사람 보란 듯이
잘살고 있을 것이다
비웃어도 되는 세상을 비웃지도 않으며
잘만 살고 있을 것이다
---「익환이」중에서

부소산길은 다 예쁘다

그중 우리 학교로 내려오는 길은
부소산이 종아리를 뻗은 듯 희고 보드랍다

쌀쌀한 가을날
단풍이 수북이 쌓여 그 길을
이불처럼 덮어주었다

단풍을 밟으면 사각사각
풀 먹인 이불 홑청 소리가 났다

날씨는 더 추워졌고
누군가 단풍을 말끔히 쓸어냈다

길은 종아리가 이불 밖으로 나온 듯
추워 보였다

가문 여름내 꽃물 주느라
도대체 앉아 있지를 못했던
우리 학교 비정규직 성 주사님

길이야 어떻든 아랑곳하지 않고

밟히는 단풍이
안타까워서 그랬을 것이다
---「부소산길 6」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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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동생 안 들어왔다/ 잠그지 말고 지그려 놓아라”. 늦은 밤에 들어오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대문을 잠그지 말고 ‘지그려’ 놓으라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이은택 시인은 이 말을 시를 쓰는 태도로 가슴에 새겼을 것이다. 한글 모양을 보고 버스를 타는 익환이. 생일날 미역국을 끓이는 아내, 종아리가 이불 밖으로 나온 듯 추워 보이는 부소산길. 이 모두를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은 지그려 놓은 대문을 닮아 있다. 그래서 시를 읽을수록 비어 있는 마음은 채워지고, 외로움은 사라지고, 굳어있던 얼굴은 슬그머니 펴진다. 더구나 그는 두서없는 시를 여기서 줄이겠다며 고백하는, 성찰하는 시인이다.
- 최교진 (세종특별자치시 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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