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된장과 간장 만드는 식품회사라니 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꼼꼼히 살펴보니 그때까지 익숙해 있던 일과는 동떨어진 딴 세상이었다. 양조장과 공장에서 매일 ‘미생물’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와 악전고투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미생물들에게 나를 맡김으로 깊은 맛을 지닌 음식물을 만들어간다. … 만드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미생물이다. 인간은 미생물들이 일하는 환경을 갖추어 주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들어가며」중에서
여름 끝자락 무렵부터 그 웅성거림이 속삭임으로 바뀌고, 숙성된 미생물들이 뭔가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이 숙성의 시기에, 그때까지 각기 멋대로 주장하던 맛과 향이 대화를 시작하여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기운 넘치던 각각의 것들이 힘을 모아가는 모습을 보이며 ‘사회적 존재’로 바뀌어 간다. 발효는 생성이다. 숙성은 조화다. 이 두 과정을 거쳐 비로소 깊이 있는 맛이 생겨난다.
---「1장 뿌리 깊은 미각의 원조―도카이東海 지방」중에서
양조장은 시간과 공간이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이색적인 곳이다. 현장에서 듣는 에피소드 또한 시공을 일그러뜨리는 스케일을 지닌다. …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양조장에 가득한 미생물 대부분은 인류가 태어나기 전, 말하자면 포유류보다 아득히 오랜 옛날에 태어난, 무시무시할 정도로 오랜 타임 스케일로 존재하는 것이다.
---「2장 시·공간을 벗어난 듯한 에어포켓―긴키近畿 지방」중에서
여행을 계속하면서, 스시를 쥐는 가쓰코 아주머니 손이 간간이 떠올랐다. 반 세기 넘게 줄곧 뜰의 감잎을 따서 밥알을 싸 온 동그스름한 손. 말수가 적은 아주머니의 입 대신 그 손은 나에게 그 고장의 기억을 웅변하듯 말해 주었다. 이 손으로 싼 스시는 고장의 기억을 전해주는 ‘언어 아닌 언어’인 것이다. 아주머니의 이야기 한 마디 한 마디를 음미하다 보니 새삼 울컥해진다.
---「3장 물고기와 식초가 지나가는 길―세토우치 일대」중에서
외딴 섬의 많은 곳은 식재료를 자유롭게 조달할 수 없다. 물을 얻기 어렵고, 만든 것을 상품으로 내다 팔기도 어렵다. 그래서 한정된 지역적인 소재를 철저히 활용하게 된다. 그 결과,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발효기술이 생겨난다. ‘왜 그렇게 된 걸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된 발상의 전환, 터무니없어 보일 정도의 엄청난 수고, 지속성을 갖추기 위한 온갖 궁리. 외딴 섬에는 일찍이 일본 열도 대부분 지방에서 서민이 생존을 위해 쌓아갔을 지혜의 결정체가 있다.
---「4장 미생물이 유혹하는 소리―도쿄도 외딴 섬」중에서
유키사라시는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수확한 뒤 소금물에 살짝 절여 부드럽게 한, 손바닥만 한 큼직한 고추를 눈 덮인 밭이랑에 툭 툭 던져서 깔듯이 한다.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눈 덮인 이랑에서 흑백의 푹신한 옷을 껴입은 여자들이 파란 바구니 속 빨간 고추를 훠이 훠이 뿌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온 세상이 하양, 검정, 파랑, 빨강만 존재하는 것 같다. 동화의 나라에서 소인들이 행하는 의식처럼 경건하고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5장 북국으로 향하는 은빛 여정―호쿠리쿠, 도호쿠에서 북쪽으로」중에서
과자에는 그 고장 사람들의 숨결과 일상의 기쁨이 듬뿍 묻어있다. 소박한 ‘즐거움’이 아로새겨져 있다. 생필품은 아니지만 없으면 왠지 허전하며 생기가 나지 않는 것을 ‘문화’라고 하는 게 아닐까. … 가공기술도 발효에서 비롯했다. 이것이 발전하여 구운 만주나 쿠즈모치처럼 일상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레시피로 승화해 간다. ‘살아가는 방책’에서 ‘즐기는 방책’이 되고, 즐거움을 찾아 모여드는 커뮤니티가 문화의 모체가 된다.
---「6장 지역의 명물이 된 발효 간식―간토關東 지방」중에서
역사의 축적이 깊은 만큼 다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 고장의 지역성을 잘 살리는 온고지신 문화로서 발효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그리고 그 개성은 로컬인 만큼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의 로컬과 이어져, 서로 깊이 이해되며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일본 각지에서 발효를 둘러싼 새로운 흐름이 일기 시작하는데, 이는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고 있는 움직임과 이어져 있다. 작은 것은 큰 것에 삼켜져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작은 채로 점점 커지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마치 미생물처럼.
---「7장 발효가 산업화를 이끌다―일본 근대화 여행」중에서
배낭 메고 세계 각지를 여행할 때, 여행이란 ‘자신의 세계를 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그런 ‘미지의 것에 대한 초조함’은 여행이 일의 일부가 된 수년 전부터 점점 빛이 바래져 갔다. 그 대신 ‘자신의 세계가 닫히는 순간’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기억의 어두운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전에는 자신에게 가까이 있었을 테지만 이제는 왠지 섬뜩하게 풍화되어 버린 세계. 여행은 미지의 문을 열고 마음의 빛을 비추는 것만은 아니다. 내내 닫힌 채로 있던 녹슨 문을 어둠 속에서 찾아내는 여행도 있다.
---「8장 바닷가 사람들의 지혜―큐슈 지방」중에서
삶 속 어둠을 응시하자. 과거부터 목숨을 이어온, 잊힌 존재의 잊힌 작은 소리, 작은 빛이 깜박인다. 귀 기울이며 생각해 내자. 과거와의 연결은 끊어지지 않았다. 과거와 이어져 있다는 것은 미래를 향한 길이 있다는 것이다. 위기의 종류가 달라지면 희망도 달라진다. 이것은 일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의 역사이며 이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갈까를 말해주는 미래다. 기억의 방주이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방주다.
---「9장 기억의 방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