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는 작은 것을 참지 못하면 큰일을 그르친다(小不忍則亂大謀, 소불인칙란대모)는 말이 있는데, 참는다(忍, 인)는 것은 훌륭한 인재가 되기 위한 일종의 수양이다. 중국의 가정은 규모가 크고 관계가 아주 복잡해서 참지 않으면 큰 혼란이 일어나기 쉽다. 집안의 여자는 남자에게 참아야 하고,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참아야 하고, 노비는 주인에게 참아야 했다. 또한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참아야 했으며, 각 구성원들 간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참는 것은 모든 관계의 기본이었다.
중국인은 자신들이 사는 땅은 중국(中國)이며, 자신들의 천제(天帝)는 중앙(中央)에 있으며, 군자는 중화(中和)의 길을 가야 하고, 중용(中庸)을 행해야 한다고 믿었다. 중용지도(中庸之道)의 핵심도 화합을 귀한 것(和爲貴, 화위귀)으로 여기므로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서로 친하게 지내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천하 대세는 합한 것이 오래 되면 반드시 분열되고, 분열이 오래 되면 반드시 합해진다(天下大勢, 合久必分, 分久必合. 천하대세 합구필분 분구필합)”하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여기서 합(合)은 역사 발전의 추세를 의미하는데 사물과 사물간의 합, 일과 일 사이의 합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화(和)라고 함으로써 결국 중국인들이 화합(和合)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물과 인정이 모두 화목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중국인들의 응집력을 대변하며 중국인들로 하여금 극단에 흐르지 않고 무슨 일이든지 당신이 반, 내가 반이라는 사고방식을 갖게 하는 근본 원인이 된 것이다.
화위귀(和爲貴)는 일종의 미덕으로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가 정감을 통하며, 서로가 도울 수 있는 장점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화(和)의 기초에서 어떤 원칙을 정립한다는 것은 최고 수양의 경지로 일반 사람들이 도달하기엔 부족했다. 그것 때문에 결국 화(和)는 백성들 사이에서 단순히 순종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중국인들은 중용지도(中庸之道)를 설명할 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립을 유지하는 것은 천하의 정도이며, 평범한 것은 천하의 진리(中者天下之正道, 庸者天下之定理. 중자천하지정도 용자천하지정리)라고 말한다. 공자도 일찍이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過猶不及, 과유불급)"고 갈파했는데 이는 왼쪽(左)이 지나친 것도 반대하지만, 오른쪽(右)에 못 미치는 것도 반대한다는 뜻이다. 중용은 오랫동안 중국 통치자들의 정책으로 이용돼 왔으며, 중국 전통 문화 중 가장 독특한 것 중 하나로 꼽힌다.
중용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고대 중국에서는 권력이 고도로 집중된 전제 군주와 무수히 흩어져 있는 소농(小農)들 사이에서 이를 조정할 수단이 필요했는데 중용(中庸) 정책은 통치자들의 구미에 꼭 맞는 개념이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강하지도 말고 유하지도 말며(不剛不柔, 불강불유), 활 시위를 조였다 늦췄다 하는 것처럼(一張一馳, 일장일치), 사람이나 물건을 적당히 부리고 적당히 놀게 하며 너그러움과 엄격함을 잘 조화시켜 행(寬猛相濟, 관맹상제)하는 것을 중용의 미덕으로 삼았다. 둘째, 중국은 농업 국가여서 날이 맑거나 비가 오는 것도 적당해야 하며, 음양의 조화도 이루어야 하므로 이러한 사고방식이 일반 사회에도 영향을 미쳐 중용 사상이 중국 사회 각 계층의 공동 목표가 되었던 것이다. 셋째, 중용은 중국의 분산적이며 보루(堡壘)와 같은 가정 사회에서 가장 알맞은 인간관계의 준칙이 됐다. 이것이 발전되어 예로써 민중을 다스리는 (禮以制衆, 예이제중) 것이 중국 사회 제도의 기본적인 틀이 되었다.
공자로부터 출발한 중용지도로 인해 중국 사회에 새로운 의식을 창출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고 중국인들은 법률에 속박되는 데 익숙하지 않게 되었다. 중국인들은 법에 의해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기피하게 됐고 체면이 손상되거나 이론을 앞세워 남과 논쟁하는 것도 싫어하게 됐다. 후에 이러한 성향은 중국인들의 고질적인 병폐가 되었다. 항상 정리에 맞는지(合乎情理, 합호정리)를 먼저 생각하며, 만일 네가 나를 도와주면 나도 너를 도와준다는 인정(人情)을 중시한다. 어느 누가 출세를 하여 도움을 청해도 도와주지 않으면 인정이 통하지 않는다(不通人情, 불통인정)거나 정리도 모른다(不?情理, 불동정리)고 비난한다. 이와 같이 인(忍)을 미덕으로 삼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을 싫어하고, 사회 전체가 인(忍)을 강조하다 보니 모든 것을 그저 좋게만 해결하려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한편 공자의 사상에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無可無不可, 무가무불가)는 관념이 짙게 배어 있다. 사회적인 병폐가 있어도 이를 그냥 지나쳐 보내는 기질, 항상 조화를 찾고 다투지 않으려는 심리, 항상 자연에 순응하려는 의식, 무슨 일이든지 관여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문화 등은 모두 무가무불가(無可無不可) 개념에 의한 결과이다. 이 때문에 중국인은 무슨 일을 할 때 항상 특별나게 행동할 필요가 없고,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논리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사회 전체가 인내를 강조하고, 군주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시시비비를 분명히 가리지 않는 것은 일정 부분 봉건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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