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알고 있겠지만, 말은 마음이 갖고 있는 본연의 모습과 일치한다.
예를 들어 '다녀오세요'나 '다녀오겠습니다'를 분석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다녀오세요'에는 '갔다가 돌아오세요. 나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다녀오겠습니다'라면 '갔다가 돌아오겠습니다. 기다려 주십시오'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두 인사말 모두 단시간의 일시적인 이별에 사용되는 말이다.
혹시 당신이 이제 영원히 그곳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거나 또는 돌아온다고 해도 언제가 될지 모르는 이별을 하는 경우라면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는 당신을 배웅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그럼...'이라고 말하는게 일반적인데 '....' 속에는 말로 표현하지 않은 생각이 가득 들어 있다.
사람이란 그 정도로 미묘한 의미까지 생각한 후, 상황에 가장 적합한 말을 사용하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말을 지나치게 신경 써서 하기란 더욱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신경 써서 말을 한다 해도 마음은 반드시 말의 뉘앙스로 표현되어 버릴 테니까.
따라서 말은 일부러 신경 써서 하기보다 습관처럼 할 수밖에 없다. 항상 기분 좋은 쪽,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쪽으로 분위기를 유도하는 말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말의 습관을 바꿀 필요가 있다. 긍정적인 말을 습관화함으로써 마음도 긍정적인 쪽으로 바꾸어 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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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즐거움은 뒷전으로 밀려나야 하는가?' '오늘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에게 내일의 행복이란 없다.' 이런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다수의 사람들이 이렇게 믿고 있다. 반면에 다음과 같은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오늘의 즐거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내일의 행복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과거는 물론 현재에도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상반된 이 두 가지의 생각은 각각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오늘을 즐기는 생활이 우리의 삶이며, 현재를 즐기는 하루하루가 계속 되다 보면 이것이 바로 내일의 행복을 가꾸는 원동력이 된다.' '오늘을 즐기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고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내일의 행복을 위한 밑거름이 마련된다.' 나는 전자의 생각에 찬성하는 입장이며, 그런 생각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후자의 생각을 완전히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삶에 대한 방식도 좋고, 실제로 그런 방식을 일관한 끝에 여유와 행복을 얻게 된다면 그 역시 참으로 멋지고 성실한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후자의 생각에는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오늘을 즐기고 싶은 욕망을 참으며 열심히 노력하면 내일의 행복을 위한 밑거름이 마련된다고 믿었어.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행복은커녕 여유조차 찾아오지 않는 거야. 나는 인생에 배반당했어. 내 인생은 불운과 불행의 연속일 뿐이야.'
여유나 행복이 노력에 꼭 비례하지 않는 만큼, 이런 수렁에 빠져 삶을 비관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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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극복하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한다면, 인간은 반드시 행복과 여유라는 대가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이말이 사실이라면 여유롭고 행복한 인생을 실현하는 방법은 너무나 간단하다. 결과가 분명한 상황아래에서 고통을 견디는 일이라면 인간은 의외로 잘 버틸수 있다. 결과가 분명하고 언제 까지 어느정도 노력하면 되는지 알 수 있으므로 노력을 하면서도 그다지 큰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통을 극복하고 노력해서 약속된 시간에 반드시 멋진 대가를 얻을수 있다면 세상에 그렇게 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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