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13년은 교구 목사로, 다음 16년은 신학교 교수로, 그 이후 12년은 세속 대학교의 종교학 교수로 지냈던 40년 이상의 세월 동안 나의 지속적인 관심은 기독교 전통을 가장 설득력 있는 모습으로 근대의 세속세계(secular world)와 연관시키는 데 있었다. --- pp. 4-5
아브라함이 믿음 하나만으로 그의 우상들을 뒤에 버려 둔 채 믿음의 길로 나아갔다고 말해지는 데 비해, 교회들은 (역설적으로) 신앙의 부족을 노출하면서 “오류 없는 성경”이란 주장과 이제는 낡아버린 세계관 속에서 만들어진 일련의 소위 불변의 교리들을 계속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p. 9
한탄스러운 것은 많은 기독교회들이 현존하는 문제들을 거부함으로 인해 부끄러운 시간 지체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는 갈릴레오, 다윈, 프로이트의 세계로부터 배웠고 또한 현대 신학자들과 성서학자들로부터 종교에 대해 배웠다. 하지만 여전히 교회들은 고대인들의 삼층적 우주 이해와 그것이 말하는 사랑의 아버지이면서도 이따금 대량학살을 옹호하기도 하는, 저 세상적이며 부재하는 창조자(otherworldly absentee Creator), 그리고 이처럼 분열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유일한 참된 아들인 부활한 구세주를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p. 13
두 번째 차축시대는 1400년에서 1900년 사이에 기독교적 서구 사회에서 발생했으며, 계몽주의의 도래와 함께 결코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경계선이 만들어졌습니다. 중세 전성기에 가장 아름답게 꽃 핀 기독교적인 신앙의 길은 근대적, 전 지구적 그리고 세속적 세계(secular world)를 유발시킨 철저한 질문을 던지는 두 번째 시기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 p. 23
두 번째 차축시대 이후 세속사회 속의 우리는 첫 번째 차축시대의 사람들과 달리, 각자의 신앙의 길의 축적되는 전통은 인간이 만든 것임을 인지할 수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실상 인간의 모든 언어들, 모든 철학과 교리들, 신들이나 하나님 같은 모든 종교 개념들은 인간의 고안물입니다. 천상의 세계는 전적으로 인간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 p. 32
오늘날 우리들은 신적 섭리가 나타나 우리들을 불행에서 구원해주기를 기대하지 않는데, 이는 신학자 존 매쿼리(John Macquarrie)가 말한 것처럼 “전 세계에 걸쳐 교육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전통적인 종류의 하나님 이야기가 사실상 소멸되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여기에 그 불연속성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과거에는 자신들을 초자연적인 신의 피조물로 여겼지만, 오늘날은 이런 중요한 신 관념들을 만든 것은 사실상 언어를 만드는 존재인 우리 자신임을 발견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카렌 암스트롱(Karen Armstrong)처럼, 하나님이란 용어가 무엇을 의미해 왔는지에 대한 역사, 곧 『신의 역사』(A History of God, 1994, 배국원 역)에 대해서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 pp. 63-64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유대-기독교 전통이 갈림길에 서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서구문화는 양극화되어 있습니다. 한 쪽 극단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충성스럽게 근시안적으로 옹호하는 기독교 교리들과 충돌하는 모든 근대적 사고를 그냥 거부합니다. 기독교뿐 아니라 이슬람의 근본주의자 역시 다가오고 있는 인간중심적이며 세속적인 세계를 사탄의 영역이 확장되는 것, 즉 맞서 싸워야 하는 대적으로 여깁니다. 심지어 주류교회들 역시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 투쟁하는 가운데 이 세속적 세계의 기원과 본질에 대해 동일하게 피상적인 판단을 내리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 p. 64
아무튼 이런 가장 표면에 해당되는 두 지층에서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신적 아들로서 역사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창조한 분이 바로 이 분이며 한참 뒤에야 예수로 알려진 역사적 인물 속에 성육신했다고 듣는데, 이 두 가지 마지막 층들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보다 이전의 층들은 순서가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곧 여기에서는 예수가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혹은 다른 말로 바꾸어 한 사람이 하나님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 p. 76
그럼 정통적인 기독교 교리는 기독교 신앙의 근거로서 경배되어 온 남자의 가르침을 얼마나 많이 반영하고 있을까요? 16세기의 개신교 종교개혁의 지도자들은 교회의 삶과 가르침을 그들이 성경에서 발견한 것의 빛에 비추어서 비판하고자 했는데, 그 후 50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들은 성서 연구의 혁명의 결과로 원래의 예수의 가르침의 빛에서 기독교의 신조들을 비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pp. 10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