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은, 마치 그물을 던지는 일과 비슷합니다. 한번 왔다가 언제 어디로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마음속 생각들을 채집해 종이 위에 가두어두는 일이지요. 천성적으로 생각이 많은 나에게 이런 글 쓰는 취미는 여러 면에서 유익을 주었습니다.
한 장의 음반을 채울 곡이 지어지는 동안 가붓하게나마 책 한 권으로 엮을 수 있는 사유와 글들을 모아보자 마음먹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그 검붉은 예수님과의 대화, 그 십자가를 지고 오르시다 주저앉아 다시 한번 결심하고 자신을 언덕 위로 밀어 올리시는 주님의 마음. … 덥디 덥던 그날, 훌쩍 저기 하늘나라로 떠나버리신 아버지. … 늘 한계를 만나고 그 속에 머무르며 그저 그런 달콤함에 취해 있으려 하는 나 자신. … 바로 곁에 나란히 길을 걸으며 사람 냄새를 풍기시던 주님에 대한 기억. …
그 모든 이야기가 만나는 하나의 지점이자 진액 같은 것이 바로 ‘은혜’였습니다. 지난 몇 년을 그 은혜로 숨 쉬며, 그 은혜 안에 잠겨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들이 한 편 한 편 길고 짧은 글로 남았습니다. 지금의 나와 수년간의 나를 말해주는 결정적인 증거들입니다. 그것은 나의 고민이기도 했고 실패와 성취이기도 했으며 또 나의 한계요, 나의 가능성이기도 했습니다.
--- '저자의 말' 중에서
일상(日常)이 모이면
그게 일생(一生)인 거야.
그러니 일생을 살리려거든
일상을 구해내야 하지.
--- p.'일상이 모이면'20면
시린 어려움이 차곡차곡 산 같아도
작은 감동이 그 산들을 흩어내더라.
흩어낸 자리에 작은 길, 살길 만들더라.
사람은 그렇더라.
--- p.26, '그렇더라'
지식은 거의 더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고
지혜는 거의 빼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더라.
그래서 지식은 덧셈이요
지혜는 뺄셈이라지.
생각할수록 그 말 참 맞는 말이야.
당장 내 주변만 살펴봐도
사람이 불행해지는 것은
실상 덧셈에 실패해서라기보다
뺄셈에 실패해서인 듯하더라.
--- p.38, '덧셈과 뺄셈'
할 수 있는 한
기꺼이 들판으로 나가거라.
마침내 그 들판이
네게 밀려들기 전에.
--- p.99, '들판으로'
아이가 자라나니
아이가 만나는 절망도 자라나고
자라나는 아이의 절망은
아빠에게까지 번진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절망을 겪었다는 일이기도 하겠다.
얼핏 무겁고 어두운 일이겠으나
생각해보니 마냥 그럴 일도 아니다.
아이의 등 뒤를 지나듯 바라보니
은근히 기대도 된단 말이다.
어떻게 넘어설지
어디쯤에서 견뎌 설지
무엇을 담아낼지.
--- p.124, '아버지도 그러셨겠지'
기쁜 날이 따로 있는 것이냐.
아니면 기쁨을 향해 마음을 먹는 것이냐.
“둘 다 같습니다.”
네 말이 맞다.
그런데 묘한 것은
사람은 실은 기쁜 날
슬퍼하기로 마음먹을 수도 있고
실은 슬픈 날
기뻐하기로 마음먹을 수도 있더구나.
--- p.237, '기뻐하기로 하다'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이 하나 있어.
사람은 사람이어서 자기 살기 위해 남 죽일 궁리를 하지만,
또 사람은 사람이어서 남 살리기 위해 자기 죽일 궁리도 한다.
이 말 참 맞는 것 같아.
더불어 산다는 일 말이야.
이렇듯 수없이 껄끄럽다가도
순간 마음 어딘가가 울컥해오고는 하잖아?
쓰디 쓴 단어들만 많은 것 같다가도
마중, 배웅, 엄마, 동정, 감동, 위로, 함께, 용서…
그리고… 사랑.
이런 말들을 만들어낸 것을 보면,
그런 걸 보면,
사람 안에는
그 안에는
무지 고운 무언가가 있는 거야.
--- p.248, '사람 안에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