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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3월 27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320g | 137*195*17mm
ISBN13 9791190630306
ISBN10 119063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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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향하는 것은 틈.
시간에도, 공간에도, 인간관계에도 틈을 만들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생각 없이 살다 보면 물건은 계속 늘어나니 의식해서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필요 없는 물건은 손에 넣지 않는다, 집에 들이지 않는다, 인생에 덧붙이지 않는다, 이런 의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죽을 때는 주방에 냄비 하나, 여행 가방 한 개 정도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 pp.25-26

참고로 유리네의 간식은 수제 당근 비스킷. 쌀가루와 전립분에 당근을 갈아서 섞은 다음 오븐에 구운 것이다. 소금만 넣으면 사람이 먹어도 맛있다. 이걸 유리네는 바삭바삭바삭, 정말로 듣기 좋은 소리를 내며 먹는다. 그 소리를 듣고 싶어서 자꾸 비스킷을 주고 만다.
며칠 전 목욕탕 가는 길에 보니, 전봇대에 붙어 있던 벽보가 없어져서 안도했다.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는 벽보였다. 어떤 돌발 사고로 애견이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모양이었다. 강아지 사진 외에도 성격과 특징, 연락처 등이 자세히 쓰여 있었다. 주인의 심정을 상상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런 벽보가 종종 보이는 걸 보면 드문 일이 아닌 게다.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만약에 유리네가 없어진다면? 상상만 해도 오싹해진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는 틀림없이 밤새 울면서 찾아다니겠지. “간식 먹을래? 간식 먹을래?” 하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유리네가 좋아하는 당근 비스킷을 들고. 수상한 사람이라고 내 쪽이 잡힐지도 모르겠다.
--- pp.47-48

지금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결단을 내려야 할 일과 마주하고 있다. 평소에는 피해서 지나온 ‘뜻대로 되지 않는 일’. 판단을 잘못하면 앞으로 인생이 장기간에 걸쳐 괴로워질 것 같다. 솔직히 지금도 사라지고 싶을 정도로 괴롭지만. 그러나 이럴 때 가야 할 길의 지표가 되어준 것이 라트비아 십계명과 무히카 씨의 말이다.
어쨌든 나는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싶다. 아무리 진흙탕에 발을 담그고 있어도 태양을 향해 나아가는 인생을 살고 싶다.
--- p.57

유리네를 데리고 다니다 보면 많은 만남이 있다. 보행기를 잡고 열심히 걷기 연습을 하는 여자아이가 있다. 휠체어를 탄 할아버지는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꽃 사진을 찍고 있다. 맑게 갠 날 좁은 베란다에서 이불을 널고 열심히 두드리는 여성도 있다. 공원 한 모퉁이 오래된 민가에 사는 고령의 여성은 언제나 정원의 꽃나무를 손질하고 있다. 이런 만남은 전부 유리네가 가져다준 것. 유리네에게 받은 멋진 선물이다.
--- pp.61-62

유리네, 펭귄과 버스를 기다렸다. 그때, 실버카를 끌고 다니는 할머니가 다가왔다. 할머니가 뭐라고 독일어로 말을 걸었다. 그러나 도통 무슨 말인지. 버스가 언제 올지 묻는 거라고 멋대로 해석하고 펭귄이 필사적으로 ‘3분’을 몸짓, 발짓으로 전하려 애썼지만 잘 전달되지 않는 듯했다. 할머니는 다시 독일어로 말을 건넸다.
그때, 아기를 안은 가족이 지나갔다. 할머니가 이번에는 그 가족 중 아빠에게 말을 건넸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남자가 우리한테 영어로 말했다.
“오늘은 사이클링 경주가 있어서 버스가 오지 않는대요.”
그랬다. 할머니는 같이 버스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우리한테 버스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전하려고 한 것이다.
--- p.96

지금 독일에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정의감을 실감한다. 바로 앞에 곤란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가 조금 희생하더라도 어떻게든 도우려 하는 등 기본적인 정의감이 강하다. 난민 문제에 관해서도 그렇고, 더 사소한 부분, 이를테면 내가 전철 환승을 할 줄 몰라 난감해하고 있으면 바로 누군가가 가르쳐준다. 독일인에게는 그것이 나치독일을 지지했던 것을 반성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반성하는 마음’이 사람들 마음속 깊이까지 스며들어 있는 걸 느낀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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