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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토박이는 제주가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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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3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330g | 130*188*15mm
ISBN13 9791196927905
ISBN10 119692790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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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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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나고 자랐고, 서울에서 6년째 살고 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두 곳 다 집이 아닌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지구에 잘못 착륙한 것 같은 기분인데(우주선을 타본 적도 없으면서), 처음에는 슬펐으나 스물다섯이 되니 깨달았다. 제주든, 부산이든, 서울이든, 강원도든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 곳이 고향이라는 걸. 슬픔을 숨기고 살 필요는 없지만, 기쁨을 숨길 필요도 없다는 걸. 괜찮다고 억지로 토닥일 필요도 없지만, 구태여 괜찮지 않은 이유를 만들 필요도 없다. 부정이 오면 부정대로, 긍정이 오면 긍정대로.
--- 「Prologue」 중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는 제 글을 도와줄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애초에 엄마로 성공적인 인터뷰를 꾸리겠다는 제 욕심이 잘못일 수도 있어요. 맞아요, 질문 하나만 해도 최소 열 문장은 나오리라고 확신한 제 잘못이 큽니다. 한때 〈제주신문〉에 시를 실은 엄마는, 이제 짧은 에세이 한 편조차 읽기 힘들어 책을 내려놓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40년 동안 제주 살이를 한 엄마의 생애를 모두 실으려 했지만,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결국 이 글은 평소 엄마가 혼잣말하듯 읊조리는 얘기를 하나하나 모아 기억을 조합한 얘기입니다. 엄마는 인터뷰하려고 분위기를 잡을 때마다 “별거 없는데, 그냥 너희 아빠랑 제주도에서 만나 결혼한 게 다야”라고 일축하기 때문입니다…….
--- 「서울 엄마의 제주 살이」 중에서

고대하던 졸업식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도 펴고 컨실러도 바르며 온갖 단장을 했다. 비밀이지만 수상 소감까지 준비했다. 깜짝 놀란 표정과 더불어 겸손으로 점철된 일종의 연기였는데, 모두 쓸모없었다. 장학금 수혜자 명단이 불리는 동안 단 한 번도 발을 떼지 않았다. 단장부터 소감까지 아무것도 쓸 일이 없었다. 서프라이즈로 맨 마지막에 불러주려나 싶었지만 확실하지 않았다. 확실한 건 옆에 앉은 단짝이 내 눈치를 보는 중이라는 것. 그 확신은 아주 통쾌하게 맞아떨어졌다.
눈물이 고였다. 복도를 지나다가 갑자기 내게 졸업식을 기대하라고 귀띔한 선생님의 말을 믿은 것도, 현수막을 보며 한껏 기대한 것도 바보 같았다. 줄줄이 불리는 장학금 수혜자
는 모두 학교 소재지 주민이었다.
--- 「교문에 현수막은 걸렸지만」 중에서

대학 생활을 대부분 함께한 남자 친구는 서울 사람으로, 나보다 한 살 많았다. 우리는 가난했으며 원대한 목표를 꿈꿨으므로 언뜻 보면 발전적인 관계였다. 자연스레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이 일자 내숭을 버렸다. 평생 나를 숨기고 사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다정하고 배려심 가득한 연인으로 비치기 위한 욕심도 내려놨다. 그가 바빠서 못 보겠다고 말할 때면
밉다고 했다. 엄마나 아빠에게 오는 전화를 억지로 피하는 이유도 밝혔다. 세상에 서고 싶을 때보다 세상을 뜨고 싶을 때가 많다는 말도 오래 했다. 가족 중 누구를 싫어하고 어릴 때 큰 사랑을 받지 못했으니, 너는 평생 옆에 있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수면제를 한 움큼 삼키고 무섭다며 지금 와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 「‘애정결핍 불시착자’의 연애」 중에서

의사가 인자한 얼굴로 턱 이곳저곳을 만졌다. “여기는 어떤가요? 여기도 아픈가요?” 입은커녕 턱만 만지작거려서 치과를 잘못 골랐나 싶었지만, 의사는 이내 알겠다는 듯 명쾌한 표정을 지었다.
“스트레스 많이 받으세요?” 턱관절 장애라고 했다.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이를 꽉 물어서 근육이 굳었다는 말이었다. 20년을 함께 살던 치아가 사표를 낸 것 같았다. 의사는 운동선수들이 사용할 법한 스프레이를 볼에 잔뜩 뿌렸다. 간호사들과 함께 내 입을 잡고 최대치로 벌리기도 했다. 통증이 심해 눈물이 줄줄 흘렀다. 사실은 내가 지금 입을 벌리지도 못할 만큼 스트레스를 참았다는 서러움에 울었다.
--- 「스트레스 ‘만렙’ 상태, 도망쳐!」 중에서

나는 ‘하루의 나’를 다스리는 게 아니라, 하루에 ‘나의 인생’을 다스리려 했으니 애당초 말도 안 되는 설정 값이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으로 번아웃을 맞닥뜨린 때보다 다음, 열 번째로 만난 번아웃에서 헤어나기 어려웠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첫 번아웃은 누워서 아이스크림 두 통 먹으면 해결됐건만, 열 번 넘게 반복된 번아웃에서는 도무지 홀로 해결할 방법이 없어 중앙자살예방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그마저 전부 통화 중이라는 메시지만 들리는 걸 보고 세상 사람들, 모두 힘든 와중에도 열심히 산다며 상담을 포기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편의점으로 달려가 젤리나 한 움큼 삼켰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생각을 했는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 「야호, 드디어 나도 번아웃」 중에서

내 집은 제주도일까, 서울일까?
한 달에 한 번은 이런 일기를 썼다. 주민등록증 앞면은 제주도지만, 뒷면에는 서울 주소가 적힌 종이가 테이프로 붙어 있어서다. 손톱으로 몇 번 긁으면 금세 떨어질 듯 아슬아슬한
종이에서 2년마다 집을 옮기는 민달팽이의 삶이 겹쳤다.
한 지역을 우리 동네라고 말하면서 동네의 장점을 줄줄이 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우주시 구름구 안개동에 사는 떠돌이 인생 같았다. 한곳에 정착하지도, 심지어 의자에 가만히 앉
기도 어려운 상황에 좌절감이 들었다.
--- 「구름구 안개동 73-5번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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