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스만제국이 멸망하자 어떤 사람들은 발칸반도에서, 어떤 사람들은 캅카스에서, 또 어떤 사람들은 중동에서 왔어. 모두들 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야. 아홉 곳이나 되는 전선에서 싸웠던 사람들이지. 그래서 가족이나 가문이 뒤죽박죽이 된 거고.”
“맞아, 그래도 우리는 이 모든 사람을 튀르키예인이라고 부르잖아!”
“민족의 개념이 아니라, 튀르키예인이라는 단어는 학살에서 살아남아 아나톨리아반도로 피신해 온 사람들의 공동체를 말하는 거야. 새로운 인생, 새로운 국가, 새로운 국민. 중앙아시아에 정착한 튀르키예 민족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야.”
--- p.186
“모든 권력이 살인을 자행한단 말씀이신가요?”
“그럼요! 집권은 탄압이지요. 통제할 수 없는 권력이라면 더더욱.”
“좋습니다. 그럼 좋은 사람들이 집권을 하면요?”
“그런 일은 없어요!”
“왜요?”
그는 고통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좋은 사람들은 권력을 잡을 수 없어요. 권력을 잡았다고 해도 권력이 그 사람들을 물들게 하고, 잔인하게 만드니까요.”
--- p.285
몇 세대 이전, 이 땅에서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는지, 세상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겪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불과 지난주만 해도 전혀 알지 못했던 수많은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다. 60년 전에 일어난 일들이 이젠 남의 일이 아니었다.
--- p.317
당시 팔레스타인은 영국이 점령하고 있었고, 아랍인들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으로의 유대인 이주를 제한하던 상황이었다. 영국은 튀르키예 정부에 스트루마호가 계속 항해하지 못하게 하라는 엄청난 압력을 넣고 있었다. 튀르키예 정부는 승객들 중에 스파이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고 의심했고, 전시에 이 유대인들을 수용하면서 위험 부담을 안고 싶어 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국가 간 힘의 충돌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인간의 행복은 파워게임 사이에서 그저 가련한 하나의 이야깃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 p.392~393
그가 보스턴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마침내 편지가 그에게 전달되었다. 만약 의사들이 그 편지에 대해 사전에 알았더라면 편지가 전달되는 것을 틀림없이 막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편지를 읽고 난 뒤, 그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어두운 내면의 세계로 빠져버렸고, 그의 정신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눈이 창밖을 향해 있었고, 잠꼬대하듯 계속 중얼거렸다. “갈게!” 그가 말했다. “갈게 나디아, 갈게.” 그러고는 편지에 적힌 세레나데를 기억해내려고 했다. 하지만 뒤엉켜버린 기억의 심연에서 단 한 장의 악보도 꺼내지 못했다.
--- p.409~410
집단 학살이었다, 이 사고는. 영국, 루마니아, 독일, 튀르키예, 구소련 정부가 합작해서 769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게 했고, 이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기로 하고 덮어버린 사건이었다. 이래서 막시밀리안이 “어떤 정부도 무죄일 수 없다!”라고 했던 것이다.
--- p.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