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글우글한 십대 소녀소년들과 지내 보니, 그들의 삶이 생방송 리얼리티 프로그램처럼 여과 없이 시야에 들어왔다. 책 창고에 숨어서 키스하고 있는 두 연놈, 출입문 쪽 소파에 뒤엉킨 채 자빠져 있는 세 연놈, 집에다 거짓말하고 몰래 단체 외박을 했는데 머 어찌어찌했다는 등등 오색찬란한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무릇 연애라는 게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 맺는 일이니, 인간 존재에 대한 심오한 고찰을 요하는, 쉬울 리 없는 작업이긴 하다. 내 염장을 무수히 질러 대던 그 소녀와 소년들 역시 이런 연애질을 마냥 즐겁게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연애를 고민해 보게 되었고, 그렇게 ‘먼저 놀아 본 언니의 「연애 인문학」 수업’이 시작되었다.
이 책은 우리의 십대 소녀소년들을 위한 연애 안내서다. 또 십대 때 좀처럼 놀아 보지 못한, 연애 경험이 전무한 이십대를 위한 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 아이만은 혼전 순결을 지켜야 마땅하다고 부르짖다 뒤통수 맞을 부모들, 혹은 진보적인 방식으로 아이의 성(性)장을 지지하고 이해하고 돕고 싶은 부모들 모두 이 책을 읽어 주길 바란다.
--- ‘머리말’ 중에서
연애 관계의 진짜 실력은 밀고 당기기의 잔기술을 많이 외운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진지하게 나의 진심을 털어 놓고,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여 주는 무수한 조율을 거치는 가운데 생긴다. 조율을 잘하려면 나와 상대, 그리고 각자가 속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가 필요하다. 사랑의 열정이 앎에 대한 의지로 뻗어 갈 때 나의 지식과 지혜는 사랑의 기술로 승화될 터이니.
--- p.56
스물두 살의 언니가 남자친구랑 100일 기념으로 단둘이 여행을 갔단다. (그런데 언니의 남자친구가) 난데없이 자기를 “지켜 주겠다.”고 해서 손만 잡고 잤다는 평범한 연애 미담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언니는 지켜 주겠다는 말이 달갑지 않았고, 왠지 기분도 좀 별로였다는 거다. “아니, 내가 문화유산도 아니고 뭘 지켜 주겠다는 건가?” 친밀한 사이에서 스킨십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럼 자기가 밝히는 거냐는 의문이 그 언니 고민의 요지였다.
사연 설명이 끝나자마자 주변에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지켜 주는 게 순결을 지켜 준다는 건가?”
“그치. 손만 잡고 잤다니까.”
“뭐로부터 뭘 지킨다는 거야?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자기 아냐?”
“그러게, 자기로부터 지켜 준다는 건가?”
“그건 자기가 위협적인 인물이라는 뜻의 다른 표현이야?”
“지켜 준다는 거, 보호해 준다는 게 좀 일방적인 거 같아.”
“저 남자는 순수한 의도인 거 같긴 한데, 좀 촌스럽다.”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스킨십을 강요하지 않는 건 좋아 보여. 근데 지켜 준다는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약한 인간으로 취급받는 것 같아.”
“지켜 준다는 건 거꾸로 언제든 그 지위와 힘을 이용해 관리 지배할 수 있기도 한 거니까. 완전 음모론이군.”
“평등한 관계라면 스킨십의 선들을 잘 합의해 가면 되지 않아? 그리고 그 약속을 잘 지키고. 지켜 주는 게 아니라!”
“응, 동감. 누가 누구를 지켜 줄 필요는 없는 거니까.”
“지켜 주겠다는 말 함부로 하면 안 되겠다.”
모든 여자가 지켜 준다는 말을 반긴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함부로 “지켜 줄게.”란 말을 날리지 말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자. 또 지레짐작으로 센스 없는 배려는 삼가자.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소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1979년에 발행한 미국의 1달러 동전에 들어가 있는 여성운동가 수전 앤서니의 말이 떠오른다.
“여성은 남성의 보호가 필요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반드시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p.92~94
콘돔을 쓸 때는 먼저 자르르 쭉쭉 펼쳐 놓고 씌우는 거라 여겼던 소녀와, 정액이 나오는 끝부분만 씌우면 되는 거 아니냐고 되묻던 소녀가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뒤의 소녀는 콘돔의 생김새를 친구들로부터 전해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콘돔을 반만 씌우면 되는 거라고 혼자 상상했단다. 얼핏 설핏 오가면서 주워들은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은 참 이렇듯 매콤하게 작용하는 듯싶다.
--- p.116
통계에 따르면 부모가 정확한 성지식을 알려줄 때 자녀가 성행위에 노출되는 경우가 더 적다고 한다. 자신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알고 서로를 존중하며 정확한 피임법을 숙지할 때 긍정의 성을 경험할 확률이 높아진다. 성적 자극을 끊임없이 제공하면서도 제대로 된 성교육은 없는 이 잔혹사가 이제 그만 막을 내렸으면 좋겠다.
--- p.169
자, 기억하자. 이별의 감정을 인정하고 충분히 애도하되, 애도의 감정이 집착으로 흘러가지 않아야 한다. 충분히 슬퍼하는 애도의 과정을 보내라는 게 감정을 확대 재생산하라는 뜻은 아니니까. 우리에겐 슬픔을 느끼는 나도 있지만, 뚜렷한 직관과 이성, 건강한 방향성으로 나아가려는 나도 있다. 그 의지를 믿고 이별의 좌표로 삼으며 이별을 완성하는 거다. 그렇게 할 수 있어야 건강한 사랑이며 이별이다. 그래야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되었을 때 주저하지 않을 수 있다.
자,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p.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