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남자의 손을 치다〉
원경왕후 민씨의 몸종이었다가 태종의 승은을 입었던 효빈 김씨에 관한 에피소드이다. 솔직히 말해서 자신의 몸종이 남편이랑 눈이 맞았다는데, 어떤 여인이 마음이 편하겠는가? 효빈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민씨는 분노했을 것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다고 해야 할까? 당장 옛날 집 행랑방으로 내쫓았고, 해산달이 가까워지자 방앗간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이도 모자라 애를 낳자 이불도 빼앗은 다음 오두막에 내팽개치고, 그래도 분이 안 풀려 삭풍이 몰아치는 12월에 소를 태워 교하로 보냈다. 이 모든 상황을 알게 된 태종으로서는 분노했을 것이다. 그 분노는 다음과 같은 발언만 보더라도 확인할 수 있다.
〈내명부를 잘 다스렸던 불행한 왕비〉
심씨는 애초에 중전이 될 생각도 없었으나 양녕대군이 폐세자가 되고, 그 자리를 남편인 충녕대군이 잇게 되자 일약 세자빈으로 뛰어오르게 된다. 남들이 보기에는 행복의 시작으로 보였으나, 심씨는불안하기만 했다. 이미 시아버지인 태종이 시어머니의 가문을 쑥대밭으로 만든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불안은 곧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왕권에 대한 집착으로 외척 발호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태종은 세종의 장인이 되는 심온에게 누명을 씌워 죽인다. 이 일로 심온의 가문은 몰락하게 되고, 소헌왕후의 친정어머니는 관노비로 전락하고 만다.
〈희대의 왕실 동성애 사건〉
현대의 관점으로 보자면, 일정 정도 봉씨에게 동정표를 보낼 수도 있다. 남편과 성격도 맞지 않는데, 남편은 밤마다 외면하고, 한 발 더 나아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그 결과 애까지 덜컥 임신시켰다면 그 기분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봉씨가 살던 시절은 조선시대였다. 그것도 왕실에 시집을 간 것이 아닌가? 지금의 기준으로도 남편이 외면한다고 동성애 행각을 벌인다면, 이해를 구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물며 조선시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는 뻔했다. 누가 봐도 세자빈으로서는 부적합하다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자, 이 대목에서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것이 문종이 왜 이렇게 여자를 멀리했느냐는 대목이다.
〈두 여인에 대한 착각들〉
숙종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깼으니, 이제는 인현왕후와 장희빈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꿀 차례다. 하나씩 살펴보자. 우선 인현왕후다. 드라마 상에서 나오는 인현왕후를 보면, 전형적인 현모양처의 모습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들을 살펴보면 인현왕후도 나름 여자였고,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장옥정이 숙종의 승은을 입고 한참 끗발을 올리며 숙원이 된 그때 인현왕후가 견제구를 던지는 모습이다. 장옥정을 잡아다 종아리를 때리기도 하고, 숙종에게 장희빈은 석녀이니 관계를 맺어도 자식이 없을 것이라는 발언도 하게 된다. 드라마 속 인현왕후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전생에 숙종이 쏘아 죽인 짐승이라는 대목에서는 인현왕후도 어쩔 수 없는 여자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하긴 어느 여자가 자기 남자의 사랑을 빼앗아가는 여자를 좋게 보겠는가?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