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해 줄리에트를 다시 만났다. 알리사의 죽음을 알려주었던 그녀의 마지막 편지를 받은 지 1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 내가 방문한다는 사실을 미리 편지로 알리기는 했지만 막상 그 집의 문을 들어설 때는 적잖게 가슴이 설레었다. …… 열두세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 둘이 계단에서 놀고 있었다. 줄리에트는 아이들을 불러 나에게 인사를 시켰다. 맏딸인 리즈는 아버지를 따라 애그비브에 갔고, 열 살짜리 아들은 산책에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알리사의 죽음을 알린 편지에서 곧 낳게 되리라던 아이가 바로 이 아이였던 것이다. 이 마지막 출산은 난산이었으며 그 후유증으로 줄리에트는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마음을 돌이킨 듯 딸을 또 낳았는데, 줄리에트가 말하는 걸 들어보면 그녀는 다른 아이보다 이 딸아이를 특히 더 귀여워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 본문 중에서
“제롬, 감히 편지로는 부탁할 용기가 나지 않았는데…… 이 아이의 대부(代父)가 되어주지 않겠어요?” “네가 좋다면, 그렇게 하지.” 나는 약간은 놀란 표정으로 요람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래, 이름은 뭐지?” “알리사…….” 줄리에트는 나지막한 소리로 대답했다. “언니를 좀 닮은 것 같지 않아요?” 나는 아무 말 없이 줄리에트의 손을 꼭 쥐었다. 그 작은 알리사는 어머니가 안아 일으키자 눈을 반짝 떴다. 나는 아이를 품속에 받아 안았다. --- 본문 중에서
땅거미가 잿빛 밀물처럼 방 안으로 밀려와 물건들을 하나하나 덮어버리자, 어둠 속에서 되살아난 물건들은 저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지난날의 추억을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나는 알리사의 방을 다시 보는 듯했다. 줄리에트가 그 모든 가구들을 이 방으로 옮겨다 놓은 것이었다. 줄리에트는 다시 나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하지만 이미 얼굴의 윤곽을 구별할 수 없었고, 그녀가 눈을 감고 있었는지 어쩐지는 알 수가 없었다. 줄리에트는 몹시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자!” 마침내 줄리에트가 입을 열었다. “이제는 잠에서 깨어나야 해요…….” 나는 줄리에트가 일어서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는 한 걸음 내 딛더니 맥이 빠진 듯 옆에 있는 의자에 다시 털석 주저앉았다. 줄리에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울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