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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2월 1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32쪽 | 174g | 116*183*10mm
ISBN13 9788954448062
ISBN10 8954448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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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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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주는 대수롭지 않은 듯 옆에서 웃음을 터뜨렸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어쨌든 그가 왜 이러는 건지 이유를 알 수 없었고, 알 수 없다는 것은 때때로 내게 두려움을 주었다.
희주가 비혼식을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처음 느꼈던 감정도 두려움이었다. 남자친구가 있는데 비혼식을 하겠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 무섭고 끔찍하기까지 했다.
--- p.11 「일인칭 컷」 중에서

“저건 야자나무게, 팜나무게?”
택시 창밖으로 막 쓰러진 나무를 가리키며 희주 가 물었다. 내가 대답하지 못하자 예상했다는 듯 실망하며 야자나무라고 정답을 알려주었다. 그런가 싶어 다시 한번 쳐다봐도 딱히 야자나무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내게는 전부 엇비슷한 모양의 열대 나무일 뿐이었다.
--- p.14 「일인칭 컷」 중에서

그렇게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최 팀장이 이번 일로 많은 것을 깨달았고 더욱 언행을 조심하겠다고 하자 주변에 있던 직원들이 앞으로 두고 보겠다며 장난스럽게 으름장을 놓았다. 그렇게 사건이 일 단락되었다고 믿었다.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적어도 희주에게는 그랬다.
“왜 네가 나 대신 그 사람을 용서했어?”
낮에 믈라카의 구도심을 돌아볼 때 희주가 내게 물었다.
--- p.27 「일인칭 컷」 중에서

배에 탄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현영은 맥주를 놓고 보티와 씨름했다. 서로 맥주 캔을 붙잡고 뺏거나 빼앗기지 않으려고 잡아당겼다. 그럴 때마다 맥주 거품이 바닥에 조금씩 쏟아졌다. 보티는 전력을 다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다 결국 맥주를 빼앗았고 현영은 진심으로 언성을 높이며 돌려달라고 화를 냈다. 불쾌한 기색에도 보티는 주저하지 않고 맥주를 전부 바다에 쏟아버렸다. 그러고는 나를 노려보며 쏘아붙였다. 왜 말리지 않느냐고. 어떻게 보고만 있을 수 있느냐고.
--- p.45~46 「완벽한 밀 플랜」 중에서

결혼식을 하루 앞둔 날 나의 상태는 예민한 수준을 넘어 거의 신경쇠약에 이르렀다. 결혼식 현수막의 글자가 조금 번진 채로 인쇄된 일이나 예식장에 전시할 웨딩사진 배송이 조금 늦어지는 일이 마치 불길한 복선인 듯 과민하게 굴었다. 그래서 현영이 수면제를 삼켜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는 차라리 마음이 놓였다.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 것 같았고, 다행히 우려했던 것 중에 가장 나쁜 일은 아니라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 p.55 「완벽한 밀 플랜」 중에서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내일이 결혼식인데 꼭 이래야만 하느냐고. 날 사랑한다면서 그 약을 삼킬 때 내 생각은 조금도 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아무 말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예전에는 나를 사랑한다면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수면제를 이렇게까지 삼키는 건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현영이 가끔 술에 취해 이런 일을 벌이는 건 나를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 p.56 「완벽한 밀 플랜」 중에서

비록 이혼이 창업의 계기는 아니어도 꽃집 운영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었다. 백현준은 이 혼 후 지독한 불면에 시달렸다. 밤마다 자려고 눈을 감으면 가정법 과거완료 형태의 문장이 끊이지 않고 머릿속에 떠올랐다. 결혼하지 않았으면 이혼도 하지 않았을 텐데 같은 조건 부사절 형식의 후회는 스스로 용법을 변형시키면서 무수히 늘어났다. 빈 화분에서도 잡초가 자라듯, 그런 잡념은 아무리 뽑아내도 어느 순간 무성히 피어나 새벽마다 잠을 깨웠다.
--- p.68~69 「러브 플랜트」 중에서

헤어진 아내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낼 때면 백현준은 최대한 아무 감정도 싣지 않고 잘 훈련된 AI가 적시된 사실을 구술하듯 무덤덤하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매번 그게 제대로 성공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소송을 시작할 때만 해도 가정이 파탄 난 이유가 상대방의 나쁜 술버릇 때문이라는 걸 판결문에 반드시 명시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고작 그런 몇 마디 문장으로는 관계라는 것을 정의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까 유책이라는 말은 누구에게 더 책임이 있다는 의미일 뿐이 고 이혼소송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가리는 재판이 아니었다.
--- p.89~90 「러브 플랜트」 중에서

돌이켜보면 아내는 단 한 번도 백현준과의 관계에 있어서 명확한 태도를 보인 적이 없었다. 물론 백현준이 머리에 총을 들이대면서 협박했던 것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이 억지로 밀어붙인다고 마냥 끌려갔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적어도 사귈 때든 결혼을 결정할 때든 언제나 유보적이거나 불안해하며 망설였던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럴 때마다 결정을 강요한 사람은 백현준이었다.
--- p.92 「러브 플랜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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