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서구가 극히 예외적으로 자본주의정신과 친화력을 가진 이념적 특징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발흥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었음을 암시하는 동시에 인도나 중국은 두 가지 모두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였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실제로 가산제적 통일국가로 특징지어진 베버의 중국사회론은 유교가 가진 종교성만이 아니라 그것이 실현될 수 있는 조건, 즉 교권주의적 구조를 가진 자율적 교회의 부재, 시민층이 중심이 된 자율적 산업도시의 부재, 그리고 신분구조에 바탕한 봉건제도의 부재에 기초하고 있다.
---「제1장 · 마음의 동행에 대한 사회학의 오해」중에서
이로 미루어볼 때, 행위자의 외부에 존재하는 사회적 조건뿐만 아니라 행위자 자신의 이성, 정서나 감성, 의지, 상상력 등이 모두 마음의 의미소(意味素)로 작용함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마음이 내적 의미소들의 연기체(緣起體)임을 의미한다. 루만의 개념을 빌리면, 자기준거적 재생산을 하면서도 행위자 외부의 사회적 조건과 동행할 수 있는 수행능력을 가짐으로써 외적 연계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열린 체계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마음은 마음 내부의 의미소들 사이의 관계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정보를 대상에게 통보함으로써 대상에게도 모종의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특히 마음 문화가 발달한 동양사회의 경우 마음(혹은 마음 상태)은 행위자들 사이의 사회적 소통을 넘어서서 전체 사회의 질서와 관련되는 핵심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동양사회의 사람들은 연기체로서의 마음 개념을 가지고 사회질서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제2장 · 마음과 사회의 동행에 대한 이론적 정초」중에서
원효에 따르면 이러한 불성 상태, 즉 일심에 도달하면 행위자는 모든 것을 섭수하는 데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기 때문에 그 어떤 대상에게도 자유자재로 침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대상의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다. 한마디로 수행성을 갖는다. 이렇듯 마음이 수행성을 가지기 때문에 마음은 합심 가능성의 최종 기반이기도 하다. 그러나 루만에 따르면 심리체계는 결코 사회적 체계 내부로 들어갈 수 없다. 각각은 폐쇄체계로서 심리체계에게는 사회적 체계가 암흑상자(black box)인 반면,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원효와 루만은 결정적으로 갈라진다.
---「제4장 · 원효의 화쟁일심 사상과 불교적 합심성」중에서
게다가 이황은 마음 내부의 연도 그 의미소, 즉 이와 기의 결합방식에 따라 다양하게 현상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실제로 이황은, 인용문의 축약된 곳(…)에서 사단에도 이(理)와 기(氣)가 합쳐져 있고 칠정에도 이와 기가 합쳐져 있다고 논의한 다음,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에서 분명하게 언급하듯이 그 주된 바와 중한 바에 따라서 각각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사단은 이가 발하여 기가 따른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하여 이가 탄 것[四端理發而氣隨之, 七情氣發而理乘之]’이라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인데, 그것은 기본적으로 이와 기의 결합을 인정하는 가운데 그 우선성에 따라서 다양한 발현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제6장 · 이황의 심학과 성리학적 합심성」중에서
이익은 마음의 세 가지 총체성에 기초하여 한편으로는 순자의 심학적 측면을 수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맹자의 심학적 측면을 종합함으로써 자신의 고유한 심학을 완성한다. 실제로 이익의 심학에서 마음은 그 고유성의 기반이 윤리성에 있다기보다는 실질적 경험이나 활동에 놓여 있다. 이익에 따르면 마음은 생장을 위한 신체활동을 통해 외부의 대상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감각기관의 활동은 물론 그것을 통해 외부의 대상을 지각하고 기억하며 판단하며 나아가 백체를 주재한다.
---「제7장 · 이익의 심학과 약자와의 합심성」중에서
우리는 사회 세계와 일상생활의 제반 영역에서 이성과 감성으로 귀결되지 않는 영역이 있으며, 이 부분을 ‘마음’ 개념으로 귀인(歸因)시킬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중략) 이러한 문제의식을 풀어내기 위한 첫걸음은 ‘마음’이 동아시아의 고유한 사유 체계와 문화적 축적의 결과물이라는 점과 다양한 차원에서 그 마음을 합치시키는 ‘합심’이 동아시아 사회를 규정하는 고유한 작동 원리임을 밝히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이어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마음[心]의 용례를 추출하여 주요 어휘의 활용 실태를 분석하고, 유형화를 시도하였다. 이를 통해 마음이 매우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조선 사회의 문화적 토대로서 일상의 곳곳에 배태되어 있음을 경험적으로 확인하였다. 또한 ‘합심’의 용례 분석을 통해서 합심을 여섯 가지의 하위 유형으로 구분하고, 이들이 조선 사회를 작동시키는 주요한 원리임도 파악하였다.
---「제8장 · 조선시대의 공적 언행에 나타난 합심성」중에서
연(緣)의 유형에 대한 이론적 논의와 절연에 대한 사례 분석을 통해서 무연사회 현상이 가족이 해체되었거나 하층계급에 속하여 새로운 연을 형성할 수 있는 조건을 갖지 못한 계층에서 주로 발생한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었다. 물론 정상가족 혹은 중상위 사회계층에서 일시적 절연 및 무연사회 현상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이는 가족이나 새롭게 형성한 연에 의해 복원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고독사 같은 극단적 사례와 같이 사회문제로 비화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나 가족의 해체 상황에서 구체적 인간관계의 절연이나 무연 현상이 발생하는 경우이다.
---「제10장 · 연(緣)과 마음의 동행」중에서
안동의 무실마을에서는 격심한 흉년의 경우 양식이 떨어진 가정마다 그 마을 섬학소(贍學所)의 쌀을 나눠주곤 했는데, 그 쌀을 당사자가 직접 가져가도록 하기보다는 마을 청년들이 아무도 모르게 그 집에 갖다 주도록 하는 관행이 있었다. 이 관행에는 동족 마을의 공동체, 흉년에 의해 양식이 필요한 사람의 발생이라는 상황, 양식 제공 방법, 쌀을 제공받는 사람에 대한 배려 등이 모두 내포되어 있다. 또한 여기에는 두 가지 차원의 배려, 즉 명시적으로는 쌀을 배급하는 쪽에서 수급자를 배려하고 있지만 동시에 마을의 아동교육기금을 자신이 사용하는 것에 대한 수급자의 염려까지 배려하는 마음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제12장 · 배려, 세계사회와 마음 씀씀이」중에서
세계사회의 ‘다른 사람’ 자신의 태도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태도조차도 마음의 산물이란 점을 고려하면, 태도의 변화 이전에 세계사회의 ‘다른 사람’의 마음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비록 마음의 배려가 제도나 조직에는 미미한 영향 밖에 미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마치 화폐를 매개로 한 경제적 거래에서조차 상대방과의 관계에 따라 마음이 다소의 영향을 미치듯이 마음은 소통으로서의 사회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게다가 마음의 배려는 그 자체로 독자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 만약 제도적·조직적 배려가 동일하다는 조건 속에서 마음의 배려가 추가된다면, 세계사회의 ‘다른 사람’의 마음에 대한 배려의 크기는 그만큼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제12장 · 배려, 세계사회와 마음 씀씀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