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은 지리산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을 가르쳤다. 세상의 고통에 대해 침묵하지 말 것을, 모든 문제가 어느 하나 나와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고, 내가 원인이 아닌 것이 없음을.
--- 「수지행(당시 지리산살리기·댐백지화 추진 범뷸교연대 홍보국장)의 글」 중에서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선택한 것은 ‘불의 투쟁’이 아니라 먼저 ‘물의 순례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것도 지리산의 맑은 물이 아니라 먼저 낙동강의 썩은 물이 되어 1,300리를 흘러보는 것이었다.
--- 「이원규(시인, 당시 지리산살리기 국민행동 사무처장)의 글」 중에서
생태계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가장 큰 군집을 이루는 것이 지리산입니다. 그래서 지리산은 그냥 하나의 산이 아니라 한반도 남한 전체의 영성과 정신과 생명 가치, 앞으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세계관까지도 제시해주는 산이라고 생각합니다.
--- 「양재성(당시 함양제일교회 목사, 지리산을 사랑하는 열린 연대 운영위원장)의 글」 중에서
안동댐이나 하굿둑처럼 흐름을 가로막는 장벽이 생기고 곳곳에서 골재 채취를 하는 등 인간의 착취가 계속되고 있지만, 굽이굽이 흐름을 잃지 않는 강의 생명력은 눈물겹도록 눈부신 것이었다.
--- 「허욱(당시 녹색연합 간사, 낙동강 1,300리 도보순례 총괄진행)의 글」 중에서
세상의 변혁과 자신의 깨어남이 함께하는 것이어야 했다. 나와 세상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니라 세상은 나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 「이병철(당시 지리산공부모임 운영, 생명평화결사 운영위원장)의 글」 중에서
돌아보면 지금까지도 여전히 길 찾는 몸짓으로 이 자리에 서 있다. 굳이 말하자면, 좀 더 인간다운 길을 가고자 하는 소박한 마음으로 멈춤 없이 최선을 다해 보고 배우며 여기까지 온 셈이다.
--- 「도법(당시 실상사 주지, 생명평화탁발순례단장)의 글」 중에서
‘고향땅에 살다가 고향땅에 묻히게 해달라’던 어르신들의 바람, ‘어릴 적 추억이 담긴 아름다운 고향을 지키고 싶다’는 나의 바람은 같은 이야기이고, 그저 소박한 바람일 뿐이다. 수십억 수십조를 쏟아부어 행복해지겠다는 바람이 아니라 정말 소박한 바람[…].
--- 「선시영(당시 지리산댐백지화마천면대책위 위원장)의 글」 중에서
지리산은 제게 무심히 고개를 돌리면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 건강 챙길 겸 올라가야지 생각하는 앞산, 일상처럼 너무나 익숙하고 편하여 기대어 사는 줄도 가끔 잊게 되는 삶의 터전입니다. […] 2011년 겨울 당시 저는 10대 청소년이었습니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지리산댐을 두고 돈과 권력을 이용하여 벌이는 이권 다툼 속에서 저는 지리산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 「이정훈(당시 실상사작은학교 학생)의 글」 중에서
사실 나는 남 앞에 나서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내 차례가 되어 목에 피켓을 걸고 용유담에서 지나가는 사람과 차량을 마주하는 것이 엄청난 부담이었습니다. […] 다행히도 어떤 사람은 도보 여행 중에 피켓 시위를 하는 나를 보고 자기가 출판할 책에 싣겠다며 사진을 찍어가기도 했고, 또 어떤 스님은 도보순례 중이었는데 시위 끝나는 시간까지 계속 옆에 서서 말동무가 되어주었습니다.
--- 「유진국(함양군 휴천면 운서마을 주민)의 글」 중에서
당시 환경운동에 대해 잘 몰랐지만, 오염된 낙동강 살리기에 힘쓰지 않고 지리산에 댐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 가톨릭 신자로서 ‘예!’라고 해야 할 때 ‘예!’라고 말하고, ‘아니오!’라고 해야 할 때 당당하게 ‘아니오!’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임병택(함양시민연대 상임대표)의 글」 중에서
지리산댐 백지화 활동과 관련해서 뭔가를 이야기하라면 오도재에서 올려다보던 별들이 함께 생각난다. 마천에 있는 선시영 이장 댁에서 회의하느라 오도재를 넘어 다녔던 그 무수한 밤들에 별을 보면서 골짜기마다 깃들여 사는 수많은 민초들, 생명들의 꿈을 생각하곤 했다. […] 우리는 지리산댐만이 아니라 지역의 많은 난개발사업에 대응하면서 지역에 생명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단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 「전성기(당시 지리산댐백지화함양대책위 위원장)의 글」 중에서
2012년 6월 25일 바쁜 농사철임에도 불구하고 남원 동부권 주민들이 모든 일손을 놓고 수자원공사와 문화재청을 찾아가 주민궐기대회를 가졌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하나 되어 지리산댐 백지화, 용유담 명승지정을 목놓아 외치며 질서 있게 행사를 치렀던 그날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 「김종관(당시 남원시의원, 지리산댐백지화남원대책위 공동위원장)의 글」 중에서
말 한마디 섞어선 안 될 것처럼 여기던 상대가, 사실은 수천 마디 말을 주고받지 않으면 어느 한쪽도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대였음을, 사회적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동안의 시민운동이 가지고 있었던 한계, 확장성에 대한 고민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절대악을 상정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절대악은 없다’는 전제로 이후 활동을 해나가면서, 더 많은 고민과 더 깊은 생각으로 머리 아팠지만 그만큼 자유로웠다. 바로 그 점이, 후련했다.
--- 「김휘근(당시 지리산생명연대 팀장)의 글」 중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좋을까? 지역의 자연생태, 역사, 문화, 공동체의 가치를 가꾸고 지켜나가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들이 모여 머리를 맞댔습니다. […] 모임의 이름은 ‘용유담아 친구하자’로 정하고서 용유담의 자연, 생태, 역사, 문화적 가치에 대해 우리들이 먼저 공부하고 알아가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 「정상은(산내면 주민, 당시 자연놀이터 그래 대표)의 글」 중에서
조정가로서 그동안의 경험으로서 볼 때 대부분의 갈등은 대화판 자체가 성사되지 않아서 실패하지, 당사자가 대화에만 응하게 된다면 시간이 얼마나 소요되냐가 문제일 뿐 거의 해결된다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도법 스님을 믿고 과거의 관행을 뛰어넘어 사회적 대화에 기꺼이 응해준 국토교통부와 댐백지화대책위원회의 용기가 평화로운 문제해결을 가능케 한 시작이었다고 본다.
--- 「조형일(당시 조계종 화쟁위원, 한국갈등조정연구소 대표)
초기의 불신과 오해 등 난관을 거치면서도 2년 이상 사회적 대화를 지속함으로써 당사자 간 신뢰의 토대를 구축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자 성과였다. 첫째, 이해당사자의 신뢰 회복, 둘째, 지리산 홍수피해 대책, 셋째, 협의회 참여조건과 대안이라는 의제에 합의하여 논의하였고, 협의회와의 양해하에 공정한 운영 방안과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규칙 마련 등을 검토하기에 이르는 등 지리산생명연대를 주축으로 한 댐백지위와 국토부 사이에 상호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평가된다.
--- 「홍준형(당시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댐사전검토협의회 위원장)
이제는 더 이상 소수의견이 아닌, 세상을 바꾼 주체가 되었다. 이 주체들에게 마지막 남은 과제 한 가지는, 다소 역설적이다. 그것은 바로 스스로를 치유하는 일이다. 오랜 세월 국가에 맞서오면서 원하던 변화를 얻어내는 동안, 주민들의 공동체는 분열과 갈등, 배제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 「서울시NPO지원센터의 글」 중에서
생명평화와 인류세가 한국과 서양에서 동시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인류세가 새로운 시대를 규정하는 과학적 용어라고 한다면, 생명평화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태도를 제시한 윤리적 개념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생명평화사상을 하나의 ‘학’으로, 즉 ‘생명평화학’으로 정립하는 시도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 「조성환(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의 글」 중에서
제3세대 지리산운동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새세대 지리산운동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 운동은 지난 활동의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기본방향으로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사회 안에서 지리산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사회적 상을 도출하고 이를 실현해나가는 것을 두 번째 활동 목표와 방향으로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세 번째로 우리 사회를 포함한 인류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활동을 적극 펼치는 것을 목표로 하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 「이환문(당시 지리산댐백지화대책위 집행위원장)의 글」 중에서
이제 ‘한생명 발전방안’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먼저 우리 인식을 좀 바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즉 ‘지리산은 한몸’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다. […] 1,300고지를 13회 이상 오르내리는 세계적인 종주 길이 바로 지리산 종주 길이다. […] 더군다나 지리산은 인간의 삶, 다양한 역사문화를 간직한 곳이면서 코스상품 구성, 교통연계가 충분히 가능한 지역이다. 3개 도, 5개 시군의 단절된 행정, 개별적 분산투자, 그것 때문에 가치와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다. 이것을 상생발전을 위한 협력적 거버넌스로 끌어낼 필요가 있다.
--- 「박태갑(선비문화연구원 사무처장)의 글」 중에서
지금 이 지구상의 어디인가에 이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과 도반으로 연대하며 길을 걸어갑니다. ‘된다, 안 된다’를 생각하지 않고, ‘우리의 길이 옳은가, 아닌가’를 생각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가고자 합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세상으로 이어진 길로 우리는 걸어갑니다. 사람 위에 오직 하늘만 있고, 사람 밑에 오직 땅만이 있는 세상과 만나는 길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아니하고, 우리 안에 있는 온갖 편견과 증오와 만나고 우리들의 꿈과 절망을 함께 볼 것입니다. 모심과 살림, 섬김과 나눔으로써 생명평화의 새날을 함께 열 것입니다.
--- 「2004년 지리산 노고단에서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하늘에 아뢰는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