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신생아의 알몸을 슬쩍 한 번 본 것만으로, 펜을 놀려 아이의 일생을 계획해 버린다면? 만약 ‘생식기 추첨’의 결과가 우리의 운명이 되고, 생물학적 특징과 생리 기능이 우리의 심리를 결정짓는다면? 이러한 이야기는 디스토피아 과학 소설에나 나올 법한 사악한 흉계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매일, 관련 서식을 작성할 때마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우리는 태어날 때 정해진 정체성을 거의 같은 방식으로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소년 아니면 소녀, 남성 아니면 여성, 레이디 아니면 젠틀맨으로.
--- p.8
이 책을 계속 읽기 전에 가장 최근 공문서를 작성한 게 언제였는지 떠올려 보자. 공문서의 성별 또는 젠더 항목을 작성할 때는 전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 중에 선택할 수 있다.
“남성입니까? 여성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남성 또는 여성’ 외에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러한 공문서 양식에 변화가 생겼다. ‘기타’와 ‘밝히지 않는 것을 선호함’과 같은 다른 선택지가 추가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변화를 두고 ‘자연계의 질서’에 대한 공격이라고 비난하거나 ‘정치적 공정성이 도를 지나쳤다’라며 매도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왜 자신의 성을 밝히지 않기를 ‘선호’한다는 것일까? 남성과 여성 외에 무엇이 더 있을 수 있을까?
--- p.10~11
젠더를 둘러싼 논쟁은 예외 없이 젠더 역할의 ‘선천성’이라는 가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즉, 젠더 역할은 ‘타고난’ 것이고 생물학의 필연적 결과라는 가정이다. (…) 이와 대조적으로 『젠더 트러블(Gender Trouble)』의 저자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젠더를 실천하는 것, 우리가 행하는 것이라고 묘사한다. 젠더는 ‘반복에 의한 신체의 양식화, 매우 엄격히 규제된 틀 안에서 반복적인 일련의 행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굳어지며 자연적 존재에 대한 물질화가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젠더는 본질이기보다 행위에 가까운 것이며, ‘신체는 일종의 캔버스로 문화를 통해 이러한 신체 위에 젠더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 p.20~21
2장에서 모든 인터섹스의 증상을 완벽하게 살펴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생물학적 성이 절대적으로 두 가지밖에 없다는 믿음은 근거가 약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스펙트럼의 양쪽 끝에 두 개의 집단이 무리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 중간에는 생식선, 생식기 모양과 크기, 염색체, 그리고 호르몬 생리 작용으로 구성된 다양한 변이가 존재한다. 남성과 여성은 50 대 50으로 분리되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라는 명칭 사이에 서로 여러 가지 중첩되는 부분이 많이 있다. 물리학에서 ‘자연은 진공 상태를 싫어한다’는 주장이 있듯이, 자연은 (중간이 비어 있는) 이분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젠더를 바라보는 기본 토대가 되어야 한다.
--- p.40
생물학적 성은 문화와 관계없이 정해지지만, 지정 젠더는 사회적 해석에 의한 것이며 정교한 체계의 신호를 촉발해 평생 지속되는 기대의 사슬을 만들어낸다. 남성성이나 여성성이라는 개념에 뿌리를 둔 이러한 사슬은 소년이나 소녀, 남자나 여자가 어떤 의미인지를 우리에게 강요한다. 때때로 ‘성 역할(sex role)’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젠더 역할(gender role)’은 뚜렷한 행동 양상을 묘사하고 규정한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 적응하는 방식, 옷 입는 방식, 버릇, 목소리, 성 접촉, 장래 파트너, 경제적 번영, 그리고 심지어는 성격에 관한 틀까지도 제공한다. 젠더 역할은 언제나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같은 문화 내에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젠더 역할이 변할 수 있다.
--- p.41~42
종종 스키마에 따른 ‘가장 정확한 추측, 기본값’이 새로운 정보보다 우선하고 그 결과 새로운 정보는 재해석되거나 왜곡된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젠더 스키마가 많이 발달한 어린이는 전통적인 젠더 고정관념에 따라 행동하는 남자와 여자의 사진을 그렇지 않은 남자와 여자의 사진보다 훨씬 더 잘 기억한다. 사진을 다시 떠올릴 때도 기억은 고정관념에 맞춰 왜곡된다. 예를 들면, 다리미질하는 남자의 사진을 다리미질하는 여자의 사진으로 기억한다.
--- p.69
난자 생산은 때때로 ‘낭비적인’ 것으로 묘사되지만 정자가 과도하게 많이 생산된다는 사실은 종종 간과된다. 남자의 생물학적 과정은 활동적이고 주도적이고 강하고 효율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난자는 흘러버리거나 버려지거나 수동적으로 휩쓸리는 것처럼 묘사된다. (…) 1980년 후반이 되어서야 난자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인정되었으며 정자의 부족한 추진력을 보완하기 위해 난자가 공격적으로 정자를 붙드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난자와 정자는 동반자로서 둘의 만남은 다리를 놓는 과정이지 전투가 아니다. 그런데도 대중의 생각 속에서는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되는 과정이 지배와 복종의 모델처럼 그려진다. 젠더 관점을 통해 정자와 난자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불평등한 사회적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 p.80~81
뇌에 성/젠더 차이가 있다는 증거가 많이 있긴 하지만, 성적 이형화(二形花), 즉 ‘남자의 뇌’, ‘여자의 뇌’가 있다는 개념은 남녀의 뇌 기능 사이에 중첩되는 부분이 거의 없을 때와 이러한 뇌 기능들이 내부적으로 일관되게 나타날 때만 성립한다. 다시 말해 남자 뇌에만 있는 기능이 있고 여자 뇌에만 있는 기능이 있다면 성적 이형화 개념이 성립한다. 연구팀은 남성성-여성성의 스펙트럼에서 양극단에 위치한, 일관되게 나타나는 뇌의 특징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인간의 뇌는 남성 뇌와 여성 뇌의 뚜렷한 두 개의 범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 p.102
공연 예술가인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은 산업화된 국가의 젠더 임금 격차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남자가 1달러 벌 때 여자는 63센트를 번다. 자, 50년 전에는 62센트였다. 이렇게 계속 운이 좋으면 여자는 3888년이 되었을 때 1달러를 벌 수 있다.’ 전일제 정규직 남자와 여자의 중위소득을 비교해보면 전 세계적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18% 적게 번다. 하지만 젠더에 따라 일하는 방식이 주로 생산노동 또는 재생산노동으로 구분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격차는 더 커진다. 생산노동은 소득을 창출하는 노동으로 일반적으로 가정 밖에서 수행된다. 재생산노동은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으로, 음식 준비, 가사, 자녀양육 등 생존을 위한 조건을 재생산하는 것이다.
--- p.128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위험성이 크고 보상이 큰 자리에 여성보다 남성을 훨씬 더 많이 배치하는 경향이 있다. 남자에게 주는 메시지는, 남자임을 증명하고, 위험을 감수하고, 죽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그 결과 어떤 남성은 큰 보상을 얻지만, 어떤 남성은 삶을 망치거나 삶이 중단된다. 바우마이스터는 남성의 소모성을 보여주는 사례를 들기 위해 ‘여자와 어린이 먼저’라는 접근법을 채택한 타이타닉 호에서의 생존율을 검토했다. 그는 부유한 남성의 생존율(34%)이 가난한 여성의 생존율(46%)보다 낮았다고 지적했다. (…) 바우마이스터는 진화론적 측면에서 자궁이 음경보다 더 가치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문화에서는, 억압적이긴 하지만 여성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위험한 임무에 남성을 이용한다.’
--- p.131~132
(…) 문제는 성인의 이분법적 관점에서 어린아이의 행동을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남자아이가 인형을 가지고 놀 수도 있고 여자아이가 자동차를 가지고 놀 수도 있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모두 자라서 부모가 될 수도 있고 그중 한 아이만 부모가 될 수도 있다. 두 아이 모두 자라서 자동차를 운전할 수도 있고 그중 한 아이만 자동차를 운전할 수도 있다. 남자아이가 인형을 가지고 놀거나 여자아이가 자동차를 가지고 노는 것이 반드시 젠더 혼란의 징후는 아니다. 아이들은 그저 노는 것뿐이다.
--- p.164~165
이 책에서 제시된 내용은 누군가의 자아의식을 훼손하거나 세계의 근간을 흔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과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르면서, 서로 배타적인 두 개의 ‘비공개 회원제’ 클럽 중 한 곳에 가입되어 있다. 분명 이 책은 젠더 집단의 규정집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제시하고 상황을 쇄신하기 위한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반드시 논의해야 하는 문제들을 조명한다. 또한, 젠더가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 책이 어떤 이들에게는 반가운 초대장이 될 수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지나치게 앞서 나간 것이 될 수도 있다. 변화는 필연적이지만, 재미는 필수가 아니다.
--- p.186
젠더는 되는 것이자 속하는 것이다. 젠더는 개인의 정체성이면서 사회와의 관계이다. 따라서 젠더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우리는 사회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재평가하고 재협상하고 재천명해야 하며,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같은 작업을 해야 한다. 우리의 젠더는 영향력이 있다. 새로운 젠더 패러다임은 흑과 백, 옳고 그름, 승자와 패자의 구분을 넘어선다. 새로운 젠더 심리학은 우리가 태어난 순간 우리나 다른 사람이 예측할 수 없는 모호한 영역에 존재한다. 이러한 젠더 심리학은 역동적이고 협동적인 이해 형성 과정이다. (…) 계속해서 질문하고, 계속해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계속해서 귀를 기울여라.
--- p.188~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