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반 교실 밖,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안 봐도 비디오를 보듯 뻔했다. 체육 교사 ‘야만인’은 짐승 같은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차렷, 열중 쉬엇, 차렷, 이 좆만한 놈들이… 차렷, 열중 쉬엇, 차렷, 헤쳐 모엿! 야 이 좆만한 놈들아, 느네들 정말 그 따위로들 밖에 정신 못 차리겠어, 엉?”
훗날 박남철이라는 시인이 욕으로 시를 썼는데 위 구령이 바로 시였다.
“이 새끼들, 왜 이리 늦어? 엎드려.”
‘야만인’은 수업 1분 늦었다는 이유로 늦은 아이들의 엉덩이를 야구 방망이로 개패듯 두들겼다.
퍽퍽, 무식하게, 미친개처럼 거품을 물며 패면 아이들은 픽픽 나가 쓰러졌다. 서너 대 맞고 쓰러지자 기괴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내가 누군지 아나? 나는 대한민국 공수부대 출신이다. 개새끼들아, 일어나라 새끼들아.”
‘야만인’은 아이들을 커다란 발로 짓이겼다. 비명을 지르고 못 일어나는 아이, 비명도 못 지르고 온몸을 웅크리고 발길질을 피해보려고 안간 힘을 쓰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수라장, 지옥 같은 난장판이 바로 이곳이었다.
문학반 교실은 체육관 건물 4층에 있었다. 우리는 가을에 있을 ‘문학의 밤’ 연습을 위해 수업이 끝나면 ‘우주선’이라 불리우는 문학반교실로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연습한다는 핑계로 가끔은 수업을 빼먹는 것은 남들은 누리지 못하는 작은 기쁨이었다. 체계는 없었다. 되는대로 그 날 그 날 즉흥적으로 글도 쓰고 낭송도 하고 선배들도 보고.... 오후 4시, 수업이 끝나고 나는 습관처럼 문학반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분필가루가 묻어있는 칠판에 난데없이 못 보던 시가 깨알같은 글씨로 써 있었다.
시인학교.... 김종삼
공고 // 오늘 강사진 // 음악 부문 / 모리스 라벨 // 미술 부문 / 폴 세잔느
시 부문 / 에즈라 파운드 // 모두 / 결강.
김관식, 쌍놈의 새끼들이라고 소리 지름. 지참한 막걸리를 먹음.
교실 내에 쌓인 두터운 먼지가 다정스러움.
김소월 / 김수영 휴학계
전봉래 / 김종삼 한 귀퉁이에 서서 조심스럽게 소주를 나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5번을 기다리고 있음.
校舍. / 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에 있음.
글씨체가 철사를 꼬아 만든 것처럼 부드럽고 획이 삐침 없는 절제된 글씨체였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그 글씨체는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라는 소설을 쓴 소설가의 글씨체와 거의 흡사했다.
“이거 누가 써 놓은 거니?”
교실 안에는 1학년 여러 명과 2학년 7명이 있었다. 2학년은 모두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교주 구세준, 개그맨 남희봉, 에로틱 예로수, 센티멘탈 우수찬, 행동대장 장덕산, 낭만메뚜기 양철남, 반장 껄떡쇠 기회만. 그들은 뭔가를 끄적거리거나 책을 읽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모른다고 했다. 나는 그 시를 가만히 읽어 보았다.
“쌍놈의 새끼라고 소리 질러.”
아주 묘한 기분이 들었다. 반복해서 몇 번을 읽었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름들과 그들이 행하는 행동이 다정스러웠다. 먼지 쌓인 교실에, 강사들은 모두 결강이고, 학생들은 욕하고 술 마시고.... 부연 설명 없이 명사 위주로 쓴 시 뒤에 많은 것이 있고 상상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몇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같은 반인데 왜 술만 마실까. 무슨 이유 때문에 5명 중 2명이 휴학계를 내고 1명은 막걸리를 마시고 2명은 소주를 마실까.
왜 강사들은 모두 서양인이고 학생들은 모두 한국인일까.
왜 강사들은 모두 결강일까. 그야말로 대책 없는 학교다.
왜 시인학교에서 미술도 가르치고 음악도 가르칠까.
“재미있는 질문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자 아이들도 반응을 보이며 연구해 보겠다고 했다.
“교과서에 실린 교훈적이고 모범적인 시가 아닌 삐딱한 인생들을 보니 이상한 쾌감이 든다.”
“시에 욕을 쓰니까 새로워 보인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없고 왜 레바논에 있지?”
“그건 실제의 공간이 아니고 마음속의 공간이야.”
껄떡쇠 회만이 교과서적인 풀이를 했다.
“넌 항상 분석을 하드라, 느낌대로 읽자. 실제 레바논에 있을 수도 있잖아.”
나는 모범 답안 같은 말에 불만이 생겨 퉁명스럽게 말했다.
“분석도 필요한 거야.”
“시가 화학이냐 ? 성분 분석을 하게.”
나는 문학반을 정규 수업 시간에 배운 것과는 다른 별식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껄떡쇠 회만은 정규 수업의 연장선, 보충학습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껄떡쇠 회만이 부연설명을 했다.
“휴학계는 죽음을 말하는 거고 술은 그 시인들이 좋아하는 술이겠지. 강사가 서양인인 것은 서양인의 영향을 받은 거고 강사들이 결강인 이유는 서양에서 들어온 사상이 불완전하게 왜곡되었다고 것이고 시인이 음악이나 미술에 영향을 받은 거지.”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은 다 해 보았다. 하지만 다른 해석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마치 수학의 정답처럼 이것 외에는 없다는 듯이 말하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어디선가 들어는 봤지만 자세히는 모르는 이름들, 모리스 라벨, 폴 세잔느, 에즈라 파운드, 김관식, 김수영, 전봉래. 게다가 멀어서 아름다운 골짜기. 그 이름들을 가만히 불러보았다.
레바논 골짜기.
그곳은 정말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길래 시에서 이렇게 표현했을까. TV 뉴스나 신문에서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를 침공하여 처참하게 파괴된 도시의 사진과 기사들이 실렸다.
'나의 조국' 합창하며 투쟁다짐.
PLO 떠나던 날 '우리는 조국 땅에 다시 온다.'
팔레스타인 혁명군 최고사령관 아라파트의 사진이 자주 실려 그 얼굴이 친근해졌고 소년 병사가 소총을 들고 찍은 사진이 한국 전쟁 때 사진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여 낯설지는 않았다.
아름다운 곳에서는 전쟁이 많이 일어났던 것일까. 아니면 처참한 전쟁을 표현하는 반어법인가.
중동전쟁은 멀리서 일어난 전쟁이라 잘은 몰랐다. 열여덟 살의 내가 알 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루하루 등교하고 시험공부하고 도시락 까먹기도 바쁜 내가 멀리서 저들끼리 싸우는데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내 앞에 떨어진 내 일도 버거웠다. 가족과의 전쟁, 학교와의 전쟁, 아이들과의 전쟁, 나 자신과의 전쟁을 수습하느라 나는 바빴다.
단지 중동전쟁은 종교 전쟁이고 인종 전쟁으로만 알고 있을 뿐,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좋은 놈인지는 몰랐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나쁜 일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더 많이 죽인 놈이 나쁜 놈이라고 결론 내렸다.
라디오에서는 보니 엠의 ‘by the rivers of babylon'이 연일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어가 우리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다들 이불 개고 밥 먹어.‘
그래서 이 말이 바이러스처럼 유행어로 번지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영국의 승인을 받고 미국의 지원을 받아 수천 년 동안 살아왔던 팔레스타인에 나라를 세우고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며 레바논의 베이루트를 폭격하고 있을 때 우리는 교실에서 ‘짤짤이’라고 불리던 동전 따먹기가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