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가로등 때문이구나. 우리 등 뒤로 가로등 불빛이 말없이 쏟아지고 있었고, 그 불빛으로 인해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교각의 벽에 실루엣으로 비치고 있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내가 알지 못하는 ‘그들’이 아니라 내가 알고 싶고 이야기를 듣고 싶은 ‘너’로 바뀌는 듯했다. 설령 두 여자가 싸운다 해도 서로를 마주 보고 손짓을 다정하게 나누고 있는 듯 보이게 하는 가로등의 영사가 교각의 벽에 두 여자를 아름다운 실루엣으로 그려나가고 있었다.
사랑은 무표정한 삼인칭이 이인칭으로 바뀔 때 생기는 것일까. 도시라는 무표정한 삼인칭을 묵묵하게 너라는 이인칭으로 비춰주는, 아 가로등! 그리하여 운동이 산책으로 바뀌는 한밤중의 내밀함, 그리고 다정한 침묵. 그제야 강물에 떠 있는 밤 오리들의 울음이 비로소 들리기 시작한다.
_박형준, 〈가로등〉, p.20~22
냉장고는 문을 열 때마다 한 번도 어김없이 불을 켜준다. 이제는 드나들 일 많지 않지만 내가 오랜 가난의 문을 열 때마다 환했던 건 아버지 덕분이다. 냉장고 안의 존재들은 냉기에 붙들려 억지로 싱싱한 척 안간힘이다. 유예 중인 소멸들이다. 조금 더 머문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저것들도 나도 안다. 기다림을 오래 겪어본 사람이 냉장고 내부에 자동으로 켜지는 등을 달았을 것이다.
_전영관, 〈냉장고〉, p.71
귀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귀는 웅크리고 있는 토끼 같기도 하다. 책을 읽다가도 와 닿는 문장이 나타나면 귀가 간지럽다. 토끼가 마음껏 뛰는 풀밭이 펼쳐지는 것 같다. 언젠가 귀를 확대한 미술 작품을 보았을 때 웅크린 태아 같았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세상이 궁금한 태아가 얼굴 양옆에 붙어 있다면. 사실은 세상을 잘 모르는데 문득문득 안다고 착각할 때마다 그 귀를 내게 붙이고는 한다. 귀는 연하고 비릿해야 제맛. ‘잘 듣겠다’보다는 ‘연하게 열어두겠다’의 방향.
_이원, 〈이어폰〉, p.119
칼날이 지나갈 때마다 동그랗게 제 몸을 말면서 꽃잎처럼 떨어지는 나무 조각을 당신은 분명히 보게 될 것이다.
그때 당신의 마음이 아주 조금 설렐지도 모르겠다.
그 미세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신은 도무지 이 세상의 소리가 아닌 것 같은 아주 작은 소리를 듣게 된다.
사그락사그락.
귀를 조금 더 기울이고 들어보라.
그 소리는 마치 그곳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하지 않으냐는 듯 은밀하게 당신을 유혹할 것이다.
_여태천, 〈연필〉, p.138
깜빡 졸기라도 하면 아줌마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키득거렸다. 그 시절의 쪽가위는 실밥을 따는 도구였을 뿐 아니라 졸음을 쫓는 도구이기도 했던 셈인데, 쪽가위는 때때로 풀 죽은 마음을 불쑥 찌르고 들어와 나를 한사코 따끔거리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쪽가위는 내게 방세도 대주고 쌀도 대주고 막막하기만 하던 학비까지 대주었다. 무엇보다 삐딱삐딱 흔들리는 마음을 쿡쿡 찔러 번뜩, 정신을 차리게 해주었다.
_박성우, 〈가위〉, p.177~178
밥 뜸을 들이고 들어온 어머니는 밥상에서 벌레 먹은 콩을 골라냈다. 겨울에는 고무 다라이에 바지락을 담아와 윗목에서 깠다. 엄마가 시집왔을 때 산이란 산은 다 벌거숭이였지. 나무는 고사하고 솔걸(솔잎) 몇 개 줍기 위해 온 산을 뒤지고 다녔지. 이불이라도 제대로 있나 냉골에서 밤새 떨었지 뭐냐. 너는 한 번도 바닥에서 잔 적이 없을 겨. 할머니, 할아버지, 막내 고모가 너를 돌아가면서 품 안에 품고 잤으니께. 아버지, 엄마가 너를 빼앗긴 것 같아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를 겨. 네 아버지는 광산에 일하러 갈 때, 그리고 캄캄한 밤중에 돌아와 네 눈을 들여다봤다. 아버지에겐 네가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지. 네 눈이 아버지에게는 금광이었던 거지.
_이윤학, 〈간드레〉,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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