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이럴까.
난 왜 이렇게까지 민서연을 만나고 싶어 하는 걸까.
민서연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그러나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보고 싶었다.
저 얼굴이, 저 눈빛이, 저렇게 앉아있는 자세가.
이 얼굴을 보자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어떤 식으로 포장해도 하고 싶은 말은 한가지 밖에 없다는 것을.
“내가 고민하던 게 있거든.”
마침내 침묵을 뚫고 건우가 입을 열었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차 안을 메웠다.
“그런데 아무리 고민해도 해결이 안나.”
“어떤 고민인데요?”
도울 수 있다면 돕겠다는 듯 진지하게 물어오는 서연을 보았다. 이 진지함이, 차분함이, 고요함이 좋다.
“네가 좋다, 민서연.”
“…….”
“만나보자.”
건우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연이 할 말을 잃은 얼굴로 건우를 보았다. 건우가 마음에 안든 듯 얼굴을 구겼다.
“형식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서 말해보라며. 그러면 성공률이 높아진다며. 방금 굉장히 마음을 담아 이야기 했는데 안 느껴져?”
건우의 말에 서연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여러 번 눈을 감았다 떴지만 눈앞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 그럼 다시 한 번 말할게. 잘 들어. 이번만이야. 세 번은 안 돼.”
“…….”
“네가 좋아. 이게 마지막이야.”
“…….”
경고했음에도 서연에게선 어떤 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건우는 입술을 고집스럽게 다문 채 서연을 바라보다가 못 견디겠다는 듯 소리쳤다.
“네가 좋다고!”
고백하는 와중에 도도하게 세 번은 안한다더니, 결국 그가 한 번 더 고백했다.
고고하다 못해 오만하다는 서건우가, 자신에게 고백하고 있었다. 그 것도 어쩔 줄 몰라하는 얼굴로.
“라디오, 들었어요?”
무겁게 내려앉은 분위기를 반전시킬 겸 시간을 벌어 볼 겸해서 서연이 물었다. 그러자 건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듣기도 했고.”
“…….”
“내가 그 남고생이야. 같은 반 여고생 좋아한다는 그 애.”
“…….”
“네가 그 여고생이라고.”
서연의 입술이 자그맣게 벌어졌다. 무의미하게 ‘아.’하는 목소리만 흘러나왔다. 서연이 인형처럼 눈을 깜빡거렸다. 머릿속이 멍했다. 서건우가 그 남고생, 자신이 그 여고생이라니.
“‘내가 서건우인데, 거기 앉아있는 민서연이라는 여자를 좋아합니다.’라고 사연을 쓸 순 없잖아? 내 나이를 밝히기도 애매하고. 그래서 첫사랑에 빠진 순수한 고등학생인 척 물어봤어. 물론 사연 작성은 우리 매니저가 했어. 우리 매니저가 짝사랑을 많이 해봤다고 하더라고.”
“…….”
“왜? 진심이 담은 고백이면 된다며? 그건 고딩한테만 통용되는 거야? 아니면 배 타러 갈까? 폭죽 좋아해? 무릎 꿇어? 뭘 원해. 아니면 촬영장에 사탕 바구니라도 들고 뛰어 들어갈까? 뭘 원해?”
건우는 툭툭 말을 뱉더니 이내 고개를 홱 돌렸다.
“뭐라고 대답 좀 해.”
민망한 듯, 곤란한 듯, 그가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느껴졌다. 얼굴을 볼 땐 몰랐는데, 그의 뒷모습을 보고야 알았다.
장난치는 게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을.
서건우가 자신에게 고백했다. 강이연이 목표로 하고 있다는 서건우가 자신에게…….
이토록 놀라운 순간에,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에 검은 줄기가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피어난 줄기가 마음을 돌돌 에워쌌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