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마찬가지다. 평범해 보이지만, 안팎으로 부딪히는 힘에 의해 삶은 늘 위태로움을 가르며 항해하는 배와 같다. 삶이 한쪽으로 기운다 해도 다시 평행을 잡는 무게추가 없다면 인생은 삶의 드넓은 대양 어딘가에서 한순간 침몰할지 모른다.
--- p.16
같은 파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파도는 바다의 감정이다. 바람의 장식이다. 인생도 그렇다. 같은 파도를 만날 수 없는 것처럼 삶도 불완전의 연속이다.
--- p.20
파도는 쉼 없이 몰아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세 낯빛을 바꿔 잔잔히 부서지는 물결로 나를 반긴다. 인생이란 게 그렇다. 파도가 친다고 두려워할 일도 없고, 잔잔하다 해서 늘어질 일도 아니다.
--- p.21
바다는 조금 전까지 압도적인 두려움으로 삶을 뒤흔들던 존재였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바다의 일부이며, 거역할 수 없는 존재 앞에서 인간은 순응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삶이 그렇다. 순종하고 순응하는 것. 그 안에서 나를 잃지 않으면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할 테니까.
--- p.23
해상 순찰을 하다가 새로운 바닷길을 항해할 때는 늘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가보지 않은 길이어서 해도를 보고 물때를 가늠해야 한다. 지금 시간에 통과할 수 있는지도 들여다봐야 한다. 가본 적 없는 길은 볼 수 없는 어둠이 존재하니까. 그 바다를 통과할 때 안도의 한숨과 함께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기쁨이 교차한다. 그래서 우리 삶의 좌표는 두려움과 설렘 사이에 있을 때 가장 역동적이다.
--- p.27
익숙함은 소중한 것을 잊게 만든다. 부모님과 가족들조차 말이다. 이럴 때 떨어져 있게 되면 그제야 내 일상과 주변 존재들에 대한 소중함을 각성하게 되는 것이다. 풍경이 아름다운 이유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인 것처럼, 때때로 삶에서 거리를 두고 멀어져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삶이 먼 풍경이 될 때 가까이 존재하는 것들의 진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거니까.
--- p.29
‘내가 지치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도 들어서 다시 힘을 내보기로 다짐했다. 일련의 상황들이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내면의 진가가 드러나는 법이니까. 나는 이 상황을 빌어 나를 조금 더 깊고 넓은 사람으로 키워보자고 다짐했다.
--- p.47
해양경찰은 맘 놓고 쉴 수가 없다. 바다에서는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오늘은 유독 길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오늘 가족과 보낸 날이 벌써 아득하다.
--- p.52
선배와 후배, 경험의 전승. 이것이 해양경찰이 단단해지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바다는 선배와 후배를 통합한다. 말 그대로 배와 생명을 건 운명을 같이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합심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바다 위에서 경험을 독점하려는 이기심은 있을 수 없다. 자신의 경험을 전승하고 실력 있는 후배를 양성하는 것이 모두의 안위와 행복을 위한 기본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 p.55
월선 선박 차단훈련을 마치고 문득 ‘바다의 보이지 않는 경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서로 생각과 관념,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 바다에서 서로 왕래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 p.59
선장과 연락이 두절되었을 때 눈앞이 캄캄했다. 내 판단으로 그분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인생에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고 산다. 내 일은 자칫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내 목숨만이 아니라 타인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일이다.
--- p.63
한 번씩 검문검색을 하거나 순찰을 하면서 마주하는 나이가 지긋한 어부의 거북이 등껍질 같은 손을 바라보면 그가 지금껏 지나온 삶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나도 그들과 다를 바가 없다. 나도 그들과 닮아가고 있구나, 이것이 일그러진 모습이 아니라, 그들의 삶으로 내가 녹아들고 있구나, 같은 사람, 같은 피를 나눈 사람으로 바다에서 삶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내가 동화되고 있음을 느낀다.
--- pp.64~65
바다에서 배운 것이 종종 세상 사는 데 쓰임이 있다. 삶이 혹독할수록 힘을 빼고 유연해져야 한다. 그런 다음 기다려야 한다.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에 의해 살 수 있다는 믿음이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 p.74
함정에서 내가 하는 것은 없다. 11명의 우리 함정직원들의 힘을 나 역시 빌려 쓰는 사람이란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책임이라는 무게감만 견뎌내면 된다. 빌려 쓰는 사람! 오늘 내게 좋은 의미를 주는 아주 귀한 문구였다.
--- p.81
해양경찰은 돈을 많이 버는 직업도 아니다. 많이 알려진 직업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뜨거운 자긍심을 느끼고 있다. 이렇게 오늘도 바다에서 우리는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항해하고 있다.
--- p.86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바다를 떠나지 않고 한자리에서 지켜보면 알게 된다. 서해가 아름다운 건 몰려오는 바다와 쓸려가는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란 걸 말이다. 인생도 그렇지 않나. 좋기만 한 인생은 없고, 나쁘기만 한 인생도 없으니까. 롤러코스터를 타듯 휘청거리는 삶이 아찔할지언정 그래서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거겠지.
--- pp.101~102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며 보낸 세월 동안, 아내의 등대는 굳건해졌고, 그 힘으로 나는 십수 명 젊은 청춘의 목숨을 책임질 힘을 얻었다. 아내, 가족이라는 등대가 있어서, 나는 오늘도 바다로 나간다.
--- p.104
그렇다. 인생의 의미는 찾는 것이 아니라 부여하는 것이다. 의미를 부여할 줄 알 때, 머리 위로 쏟아지는 거대한 시간은 실시간 삶의 가치가 된다. 우리는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 p.110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 질문의 답을 우리는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 해양경찰이다. 나는 나의 일이 자랑스럽다.
--- p.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