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무엇이 나고 자랄 수 있겠는가?
젊을 때부터 늙어서까지 노래했으나
전쟁의 세월을 지난 어린 시절은 잡초와 같아라
그대 뜨거운 태양 아래 노래하고
칠흑 같은 밤 고단한 중에도 노래하니
나무가 그의 노래에 어김없이 화답한다
화약 냄새 짙어
짙게 배여 온 세기에
초연이 자욱한 것만 같다 어찌 이리 자욱한가?
하늘은 길고 짧은 잘린 사지로 변하고 있다
하늘은 크고 작은 낡은 신발로 변하고 있다
지뢰가 또 거센 불길 뿜으며 터진다
이 땅에 무엇이 나고 자랄 수 있겠는가?
이 땅에 무엇이 나고 또 자랄 수 있겠는가?
이 땅에 무엇이 나고 또 자랄 수 있겠는가?
●창밖 빨래 장대는 팔을 축 늘어뜨린 채
온 가족의 묵직한 옷을
저 혼자 지고 있다
옮겨 가는 빛줄기를 향해 필사적으로 팔을 뻗어
조금씩 조금씩 저 다스한 태양을 따라가다 보면
하늘색 광목은 마를수록 허약해진다
오후의 바람이 불어 들자, 옷들은 세차게 펄럭이며
중학생마냥, 왁자지껄 몸을 뒤치다
상도인 장대를 벗어나고 만다. 보아라, 과격한 버둥질이
황혼을 짓찧어, 노을의 깃털이 분분히 흩날리는 풍경을
온 땅 가득 울긋불긋한 것은, 서리 맞은 단풍일까 술에 취한 한낮일까?
어쩌다 고개 들면, 조심조심 길 가던 중년이
살짝 미소 짓는다. 그렇게 출근길에 올라
붐비는 전철 좁디좁은 공간에서
5위안 주고 산 신문을 읽으며, 세상이 내다보이는 좁은 창틈을 밀어젖히면
아이가 썩 똑똑지 못해도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단 것과
땅은 자그마해도 아시안게임 금메달 몇 개는 거머쥘 수 있음을 알게 된다
피곤할 때면 컬러풀한 섹션은 대충 넘기다, 차가 덜컹일라치면
잠시나마 의지가 되는 손잡이를 움켜쥔 채, 설핏 잠이 든다
고속으로 달리던 열차에서 내린 후엔,
귀갓길을 늘여 잠깐 걷거나,
제 집 아래서 걸음 멈추고, 고개 들어
아이들 러닝셔츠의 익숙한 춤사위를 볼 수도 있겠다
갓 마른 옷
그 상쾌한 내음을 떠올리며, 햇빛에 닿으려는 장대의 자세에 연민을 느낄지도
그러다 끝내, 가벼운 탄식을 내쉬며
저 작달막한 누런 장대를 통해
생명의 장구함을 느끼게 되리라
●만약 이 도시가 이미 늙었다면
우리의 젊음은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오늘 밤 자정을 넘기면
또 다른 시대가 시작된다고 한다
길가엔 술병이 나뒹굴고
깨진 유리는 어슴푸레한 빛을 굴절시킨다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 돌려
올 때의 풍경을 찾아본다
돌아가 앉을 곳 없는 머리칼에 텅 빈 바람이 불어 든다
네 곁에 바싹 다가가
춥고 어둑한 골목에 흩어지는 술 취한 사람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골목의 또 다른 구석에서 흥겨움이 울려 난다
우리는 이 세기라는 노정을 어떻게 지나가야 할 것인가?
●빅토리아 항의 안개가 흩어졌다는 말은 유언비어에 가깝다
불황이 반복된다지만, 여전히 배는 오가지 않는가
바지선, 증기선, 호화 유람선, 거룻배, 고기잡이배
모두 해저에 잠든 진흙 대왕이 토해 낸 쉼표
안개는 파랑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해면을 기어가
파트너를 바꿔 가며 나풀나풀 춤추며, 미소 짓는다
미소 짓더니 다시 축축이 젖은 골든바우히니아광장을 무심히 기어오른다
혀는 여행객의 입 속으로 뻗어 들고, 손은 바지춤을 더듬는다
안개는 방파제를 따라 중국은행 타워(Bank of China Tower), 홍콩국제금융센터 등을 그러안는다
그의 얼굴은 홍콩의 겹겹의 검은 막, 짙은 다갈색 유리를 쓸고서
매혹적인 눈을 하나하나 깜빡이더니
완자이 운동장을 훌쩍 넘어
한 바퀴 한 바퀴 돈다 거대한 침묵이 그를 막아섰다
나는 실연당한 그의 울음소리를 들은 것만 같다
사람들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도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싼홍께이센터 33층 텅 빈 사무실에서 그를 부른다
이리 와, 이리 오렴, 내 마음은 이 독기 서린 안개를 받아들일 수 있다
그 모든 절망에 빠진 이들이 이처럼 불러 대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