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서 우리는 대화한다. 이 생기 가득한 대화에서는 어떤 언어 하나가 특권을 누리지 않는다. 모든 언어는 생명과 그것이 사람이든 아니든 관계를 맺을 힘을 가지고 있다. 정원에서의 교류는 모든 이의 언어로 이루어진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진정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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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면 한시도 지루해지지 않는다. 나는 만약 개구리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면 왜가리나 지나가던 뱀이 우리를 위해 상황을 정돈해줄 거라는 사실을 단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개인 정원이라는 나의 영역, 그리고 스스로를 즐거운 마음으로 스스럼없이 이 정원에 초대하는 야생의 불확실한 흐름 사이에 존재하는 이 경이로운 스며듦의 공간에서, 내가 차지하고 있는 관찰자이자 행동가로서의 자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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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정원은 간섭과 방임, 길들임과 야생, 통제욕과 통제 불가능성, 인공과 자연… 그 사이에 영원히 존재하는 숙제여야 한다. 발이 두 개든지, 여섯 개든지, 여덟 개 혹은 그 이상이든지 아니면 아예 없든지, 깃털이 있든지 없든지, 털로 덮였든지 안 덮였든지 모든 존재가 만나 조화를 이루는 이 정원에서 우리는 같은 것을 소망한다. 내 집 같은 공간에서 무탈히 지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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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다양성을 창조하고 싶다고 해서 신이나 부자나 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사실, 그저 손에 흙을 조금 묻히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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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을 구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구 위 작은 한구석에서, 삶은 괜찮게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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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어스름에 조용히 날개를 펼치는 매미를 발견하는 것, 보도블록 옆 민들레 한 송이를 알아채고 미소 짓는 것, 까치만큼이나 흔히 보이는 회갈색의 시끄러운 새가 직박구리였음을 배우고 뜨거운 길바닥에 나앉은 지렁이를 흙으로 돌려보내고 선물 받은 골칫덩어리 화분을 이번만큼은 제대로 키워보는 것. 이 모든 작은 기적의 순간들마다 우리는 이 세계가 생명으로 가득함을 깨닫는다. 이런 자그마한 우연이 차곡차곡 모여 필연이 될 때, 불신이 확신이 될 때, 우리가 사실 이 자그맣고 혼잡하며 더럽고 경이로운 지구라는 행성의 정원사임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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