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워싱턴을 선택했다. 더 나은 미래가 열릴 수도 있다고 기대했을까. 결국 나의 가치관, 꿈, 직관, 희망, 욕심 등 모든 마음들이 하나로 뭉쳐 내린 판단이었다. 적어도 미국의 대자연과 넘치는 문화 시설을 한껏 즐기며 잊지 못할 추억이라도 많이 만들면 되지 않겠냐고 자위했다. 그렇게 2020년 2월 워싱턴 D.C.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연히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도착하자마자 잔뜩 겁에 질려 응급실 에 누워 있게 될 줄이야.
---「프롤로그 - 낙상」중에서
노인은 방에서 나오며 그곳에 묵었던 유명한 사람들에 대해 말해주었는데, 그중 한 사람은 미국독립전쟁에 독립군으로 참전한 프랑스 정치인이자 군인이었던 라파예트였고, 다른 한 사람이 바로 ‘스트레인저Stranger’였다. “스트레인저요?”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낯선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는 마치 당시에 여인을 목격했던 사람의 것처럼 구체적이고 막힘이 없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꾸며낸 말인지 전혀 구별하지 못한 채, 한 편의 오디오북을 듣는 것처럼 그의 말에 한참 동안 귀를 기울였다.
---「스트레인저」중에서
고기를 굽고 있는 선배 옆에서 와인을 홀짝거리며 물었다. 혼자 사는 거 지낼 만하냐고, 여전히 결혼 생각은 없냐고. 멀쩡한 직장도 있고 이렇게 좋은 집도 있는데 옆에 누가 있으면 고기도 구워주고 편하지 않겠냐는, 시시한 질문이었다. 선배는 우리 엄마랑 똑같은 소리를 한다고 나를 놀리며 대답했다. 네 말대로 이렇게 집도 있고 차도 있고 혼자 다 할 수 있다 보니 남자가 꼭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지금이 편해. 틀린 말이 없으니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었다. 하긴, 그렇긴 하네요, 둘이 살면 가끔 피곤할 때도 있죠. 선배는 검붉게 익은 작은 고기 한 조각을 내 앞에 놓아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고기는 내가 구운 게 제일 맛있던데? 재빨리 고기를 입에 넣었다. 여전히 최고의 맛이다. 스테이크 굽는 데 남녀가 어디 있으랴. 역시 고기는 잘 굽는 사람이 구워야 제맛이다.
---「스테이크는 왜 남자가 구울까」중에서
지금은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여자아이와의 대화가 왜 밥 딜런 초상화 포스터 앞에서 떠올랐을까. ‘아이 러브 뉴욕(I♥NY)’ 로고 디자인으로 유명한 밀턴 글레이저가 그린 밥 딜런의 머리카락은 한없이 화려했고, 검은색 실루엣으로만 표현한 밥 딜런의 옆모습과 대비되어 흡사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사이키 조명처럼 형용할 수 없이 강렬했다. 달콤한 솜사탕을 먹은 것 같기도 했고, 아이셔 사탕을 깨문 것 같기도 했다. 포스터를 보고 있자니 머릿속 뇌세포들이 하나하나 오색 빛깔로 물이 들어 흐물흐물,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이었다. 혹시 그 소녀가 나에게 말을 걸었던 순간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 친구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서둘러 집으로 가는 길에 나 혼자 설레었을까? 그때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말하고 너는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물어봤다면 뭐가 달라졌을까? 두 남녀가 마주 보고 대화를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할까?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아무 이야기다.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지만 바람만은 답을 알고 있겠지.
---「초상화 갤러리에서 부르는 노래 - 스미소니언국립초상화박물관」중에서
우주를 꿈꾸던 사람들이 품었을 믿음을 상상하며 나의 불안을 한 겹 더 걷어냈다. 그들은 나보다 더 말도 안 되는 미래를 그리며 불확실한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보상과 증거를 붙잡고 어쩌면 훨씬 더 많이 불안했을지도 모른다. 남들의 기대와 격려, 걱정과 비난도 모두 견뎌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결국 계속 앞으로 나아갔고 결국 원하는 곳에 도착했다. 나도 그럴 수 있겠지. 나의 꿈은 기껏해야 지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들처럼 지구를 벗어날 정도로 환상적인 미래를 꿈꾸는 게 아니니까. 여기에서 멈추지만 않는다면 뭐든 할 수 있겠지.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하늘로 솟구치는 아폴로 11호 영상을 보면서 나 역시 나만의 달을 향해 날아오르는 날이 올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근거 없는 믿음 - 스미소니언국립항공우주박물관」중에서
“박물관에 사냥감을 전시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다. 이 질문을 어떻게 받아야 할까, 소신을 밝히고 서명을 거부해야 하나. 이 친구와 여기에서 논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름을 쓰기가 영 내키지 않아 결국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 설치된 전시품을 없앨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오늘 이 코끼리를 볼 수 있어서 좋았거든요.” “아, 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좋은 게 좋은 거니까요All is well that ends well.” “네? 뭐라고요?” 나는 그의 마지막 말을 알아듣지 못해 되물었지만 그는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설문지를 가져갔다. 나중에서야 그 말이 셰익스피어 희곡의 제목이자 ‘좋은 게 좋다’는 뜻의 관용구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비꼬는 말이었나 싶어 뒤늦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좋은 게 좋은 사람 - 스미소니언자연사박물관」중에서
조지타운을 향한 자그마한 변심의 형태가 워싱턴에서 지내는 나의 삶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휴직을 하고 미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는 나의 마음은 얼마나 달콤했었던가. 실제로 흩날리는 벚꽃을 맞으며 포토맥 강변을 달리고 스미소니언박물관을 무료로 관람하며 넘치는 여유를 만끽하던 봄은 정말 인생의 꿀 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코로나로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면서 이전과 다른 스트레스가 생기기 시작했다. 달콤하기만 한 삶은 존재할 수 없다는 당연한 진리를 몸소 느꼈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견디고 매일을 버티다 보니 삶 속에 숨겨진 보석 같은 순간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아내가 좋아하는 농담과 장난을 알게 되고, 다섯 살배기 딸과 깔깔대며 웃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 헬스장에 가지 않고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혼자만의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취미도 찾았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도 새로운 일상이 준 선물 중 하나이지 않은가. 덕분에 누구에게도 없는 나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달콤살벌 조지타운」중에서
포토맥강을 파타오메크라고 부르든 포토와맥이라고 부르든 우리가 그 단어가 가리키는 강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이름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세상에 있는 무언가와 짝지어진 라벨 같은 거니까 네 옆에 비슷한 이름의 사람이 있어서 헷갈리는 것만 아니라면 이름을 잘못 발음하는 정도로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다는 말이었다. 심지어 더 이상 파타오메크 부족이 강가에 살고 있지 않더라도 여전히 포토맥이라고 부르는 걸 생각해보라고. 철학적이다. 넌 교육이 아니라 철학을 전공해도 되겠어. 나는 그에게 감상을 전했다. 철학적이라고? 뭐가? 그는 웃는 듯 마는 듯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순간 그의 눈이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이름 부르기」중에서
동굴을 벗어나며 생각했다. 나는 왜 완벽이라는 말을 좇아 살고 있는가. 무엇이든 완벽한 것이 좋은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완벽한 학생, 완벽한 연인, 완벽한 부모. 전문가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이런 개념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일이 쉽지 않았다. 완벽한 상태란 도달하기 힘든 상태일 뿐 분명 누구에게나 보다 우월한 상태일 거라고 믿었다. 매일 밤 완벽한 어둠을 바라는 마음도 이런 믿음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그런 내게 동굴 속 어둠은 깜깜한 밤에 대한 환상을 깨트렸다. 완벽한 밤이 완벽한 잠을 이끌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쩌면 나는 애초부터 절대적 어둠 속에서는 편히 잠들 수 없는 사람이지 않았을까. 깊은 잠을 방해했던 건 빛 자체가 아닌 빛 없는 어둠을 찾으려는 나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곳은 땅속 동굴이 아니니까 어차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완벽한 어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없이 두꺼운 커튼을 치고 꼼꼼하게 스티커를 붙여도 빛은 분명 어디에선가 새어 들어올 거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 빛 알갱이 덕분에 잠이 깨더라도 꿈을 꾸고 있는 딸의 얼굴을 볼 수 있으니까. 그럼 된 거다. 이 정도면 충분히 깜깜한 밤이다.
---「깜깜한 밤」중에서
놀이기구에서 인생이 보인다는 건 이제 내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는 것이겠지. 어쩌면 인생이란 대관람차를 타는 것이 아닐까. 혼자든 둘이든 각자의 공간에 몸을 실은 채 하늘 높이 올라가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결국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탔던 자리에서 내려야만 한다. 우리가 저 높은 곳에 있었어, 하고 꼭대기만 추억할 뿐. 누군가 인생은 돌고 도는 회전목마라고 말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관람차가 더 어울린다.
---「페리스의 바퀴」중에서
집house을 집home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침대, 가족사진, 좋아하는 음식으로 채워진 냉장고, 갓 지은 음식 냄새, 익숙하고 오래된 물건? 나는 이런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내게 집은 유형의 제한된 공간 그 이상이었다. 추억이 쌓일 만한 시간이 필요했고 애정을 나눌 수 있는 이웃이 필요했다. 내게 집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시간들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함께 채워져 있는 장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집이란 장소가 아닌 사람들”이었다.
---「에필로그 - 오즈의 나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