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나는 매일매일, 세상에서 가장 추스리기 어려운 사람은 그 어떤 타인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고 다짐하듯 일기를 썼다. 그러고도 나는 나를 어쩌지 못했다. 하지만 괜찮다. 매번 소설이 어렵다고 하는 가깝고 먼 사람들이 나의 정체 모를 이 글을 보고 무언가, 잠시, 생각하게 한다면, 그래도 나는 꽤 괜찮게 살았다고, 그래서 지난 겨울과 봄을 이제 그만 내 서랍에 잘 개어 둘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괜찮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자신을 노래로 드러내는 사람. 그리고 노래로 자신을 보는 사람. 문득 아버지가 『인간의 대지』에서 인용한 대목이 생각난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인간은 장애물과 겨룰 때에만 비로소 자신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연장이 필요하다.」

생택쥐베리에게 인간에 대해, 그리고 이 세상의 보편적인 진리를 생각하게 한 연장이 바로 비행기이듯 나는 노래가 그녀의 연장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나는 그날 밤, 나를 드러낼 수 있고 나를 찾을 수 있는 연장이 과연 무엇인지 한참을 고민하게 됩니다.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어 밤잠을 설쳤어요. 혹시, 당신에게 물어보았더라면 아마 대답해 주었을까요. 어떤 때는 차라리 나보다 당신이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하여, 서울로 돌아가면 제일 먼저 당신에게 물어볼 작정이었습니다. 여기에 있는 동안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말이에요.

일본의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작가 미야자키 하야오가 생텍쥐페리를 흠모하였다는 사실은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들 알고 있다. 생텍쥐페리가 모험 비행을 소재로 다룬 작품들인 『인간의 대지』『야간 비행』『남방 우편기』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또한 양자의 작품에 흐르는 휴머니즘적 시각을 보면 두 사람의 운명적 인연을 짐작할 수 있다.<br/><br/>『아스피린』은 이런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을 모티프로 하여 출발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만남은 이기주의와 탐욕, 경박함이 체질화된 현대인에게 어떤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설적 상상력이 창착의 동인이 되었다. 물론 『아스피린』의 주인공 나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처받은 여인이고 사막여행에서 생텍쥐페리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자는 실루엣처럼 우리에게 비치지만 여인의 상처를 치유하는 묘약처럼 신비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러한 영혼의 치유는 이기적으로만 세상을 대하는 우리에게 넌지시 작은 가르침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