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10년 동안 예수님의 역사적 삶을 학문적으로 연구했으며, 그 열매를 일반 청중과 나눌 시간이 있기를 줄곧 바랐다. 그저 또 하나의 강의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이른 결론이 옳다면, 그것은 예배하고 증언하는 교회 생활 속에서 한데 어우러져야 마땅하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생각을 집중하라고 요구한다. 이것은 엄청나게 크고 어려운 개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그 개념에 집중하면서도, 범위를 좁혀 특별히 한 곳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 다름 아니라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이른바 ‘주기도’다. 예수님이 불의와 굶주림과 적의와 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사셨듯이, 오늘 우리도 그런 세상에서 살아간다. 주기도는 정의와 빵과 용서와 해방을 부르짖는다. 혹시 이것이 오늘의 세상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신문을 읽으며 다시 생각해 보라.
나는 예수님이 처했던 역사적 상황 속에서 그분을 연구했고, 그럴수록 주기도야말로 어떻게 예수님이 시대의 표적을 읽어 내고 거기에 반응하셨는지를, 어떻게 그분이 자신의 소명과 사명을 이해하셨고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도 이 소명과 사명에 참여하라고 초대하셨는지를 매우 농축된 형태지만 완전하고 정확하게 요약한다는 것을 더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따라서 주기도는 예수님을 보게 하는, 그분이 어떤 분이셨는지 발견하게 하는 렌즈와도 같다. (머리말 중에서, pp. 9-10)
주기도를 사용하는 세 가지 실제적인 방식을 소개하겠다. 이를테면, 주기도를 사순절이나 대림절 같은 특별한 때에 사용할 뿐 아니라, 자신의 기도 생활을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첫째, 예부터 전해 오는 방식이 있는데, 주기도를 토대로 매일 기도하는 것이다. 주기도의 구절을 하나씩 선택해 생각하고 있다가 그 구절을 제목으로 삼고, 자신이 기도하려는 특별한 것들을 그 제목 아래 불러내면 된다. 예를 들면, “나라가 오게 하시며”라는 구절을 선택했다면,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몇몇 구체적 사례를 기도에 포함시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
둘째, 어떤 사람들은 정교회 교인들이 ‘예수 기도’(Jesus - prayer)를 사용하는 방식과 똑같이 주기도를 사용한다. 호흡에 맞춰 주기도를 천천히 반복하고 또 반복하라. 그러면 주기도는 두 번째 천성이 된다. 분주하여 스트레스를 잔뜩 받으며 사는 사람들은 이 훈련을 하기가 매우 어렵겠다.
셋째, 한동안 주기도의 구절을 하나씩 차례로 택해 ‘오늘의 기도’로 삼아도 좋겠다. 주일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월요일에는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화요일에는 “나라가 오게 하시며”, 수요일에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목요일에는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금요일에는 “악에서 구하소서”, 토요일에는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그날의 구절을 자신의 골방으로 삼아라. 언제라도 거기 들어가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하는 일을 위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그러면 ‘오늘의 기도’가 세상을 보는 렌즈가 된다.
---본문 중에서